기획된 가족

조주은 지음 | 서해문집 펴냄

기획된 가족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은 어떻게 중산층을 기획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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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

페이지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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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맞벌이여성 #워킹맘 #직장맘

상세 정보

인생을 사는게 아니라 견디는 이들에게
맞벌이 직장맘들의 정신없는 일상

중산층, 화이트칼라, 맞벌이 직장맘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가족을 파헤친다. 가족조차도 이제 ‘기획’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무한경쟁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가족은 더 이상 부부간의 ‘사랑’으로 맺어진 낭만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글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제적 동맹체로 거듭나면서 그 의미마저 변화하고 있다.

이 책은 중산층 맞벌이 여성들의 ‘지독한 바쁨(압축적 시간경험)’을 인터뷰 관찰로 추적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가족의 ‘기획’으로 이어지는지를 파헤친다. 맞벌이 직장맘들의 일상은 “참을 수 없는 긴장”을 낳는 시간의 연속이다. 일터에서의 성공과 가족의 성공을 둘 다 이뤄내기 위해,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한 시간을 다른 사람의 세 시간처럼 압축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2004년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전작 <현대가족 이야기>가 생산직 노동자 가족에서 여성(전업주부)의 일상과 '가정중심성'에 관한 고찰이었다면, 이 책 <기획된 가족>은 중산층 맞벌이 가족에서 이 가정중심성이 어떻게 유지되고 또 해체되고 있는지를 '바쁨'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가족의 기획자'로서 여성의 일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꼼꼼한 인터뷰와 촘촘한 시선으로 깊이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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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goldstarsky

인종적으로도 어느 정도 균일성이 유지되고, 공교육과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막대한 한국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제 주변을 기준으로 주류와 비주류, 바람직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보이는 이들에 대한 무시와 혐오가 쉽게 자리를 잡는다. 조선족이나 저소득층, 노인과 장애인에 대해 쏟아지는 차별적 언어들이 온라인상에서 큰 호응을 얻곤 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다.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 역시 한국과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음을 내보인다. 저자인 J.D. 밴스는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시작한 유망한 백인 젊은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으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그가 러스트벨트라 불리는 미국의 구 공업지대 출신이란 점이다. 힐빌리는 러스트벨트 지역에서 나고 자란 백인들을 칭하는 말로,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문제점들이 이 책의 주제라고 할 만하다.

책에 따르면 러스트벨트는 미국 공업의 부흥과 함께 일어난 도시들을 묶어 칭하는 말이다.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미국 동북부로 길게 이어지는 이 도시들은 지난 수십년간 쇠락을 면치 못했다. 일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정책적으로 제조업을 포기하고, 공장들을 아시아나 중남미로 이주하도록 한 영향이다. 결과적으로 이 지역 주민 상당수는 일자리를 잃어버렸고 복지정책에 기대어 살아가는 하층민으로 전락했다.

밴스는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자신의 세대에 이르는 가족의 역사를 통해 힐빌리와 미국이 마주한 문제를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법보다 총이, 돈보다 명예가 귀했던 초기 이민자들의 문화가 실제 삶에서 어떤 문화를 만들었는지를 내보이고 그 문제들을 서술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또래들과 어울려 밖으로 나다녔고 많은 여자들과 문제를 일으켰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용납하지 못했고 매일같이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그 불안한 환경 속에서 밴스의 어머니는 불안한 정서를 가진 아이로 자라났다. 희망 없는 삶 속에서 밴스의 어머니는 많은 남자들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가정생활을 이어갔고 마약에까지 중독되는 등 불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밴스는 이러한 일들이 개인이나 특정 가정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고 주장한다. 수많은 힐빌리들이 비슷한 과정을 일상적으로 겪는다는 여러 연구를 통해 그는 그 사실을 증명해간다.

특히 흥미로운 건 힐빌리 아이들이 대학교에 거의 진학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꿈꾸지 못하고 학비가 싼 주립대 역시 언감생심으로 여기기 일쑤다. 그렇다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저소득의 편한 일에 만족하거나 복지정책에 기대는 것 말이다.

<힐빌리의 노래>를 읽다보면 힐빌리들이 처한 희망 없음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밴슨은 부모의 자리를 대신 채워준 조부모의 지지, 해병대 입대를 통해 예외적인 힐빌리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일대 입학 이후 겪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오히려 힐빌리가 겪고 있는 고질적인 문화적 열등함을 확인한다. 그는 제가 성공한 엘리트로 신분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수많은 우연들이 도운 결과였단 걸 스스로 인정한다. 그것이 그가 이 책을 쓴 이유이며, 이 책이 미국 내에서 커다란 자극을 준 이유다.

한국에서도 이 책에 나온 수많은 갈등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경제적, 문화적 자산이 열등한 이들은 점차 중앙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가고 자립하는데 실패한다. 더욱이 급등하는 자산가치로 노동의 가치까지 추락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 성공을 거두는 사례보다는 일확천금을 기대하거나 일찌감치 포기하는 삶이 훨씬 더 많이 보이는 오늘이다. 벌어진 계층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반목하고 분노하며 혐오한다. 힐빌리에서 노랫소리가 끊어졌듯이 한국의 지방도시에서도 몰락의 징후들이 읽힌다.

미국이 <힐빌리의 노래>에 응답했듯이 한국 역시 우리의 힐빌리들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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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화이트칼라, 맞벌이 직장맘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가족을 파헤친다. 가족조차도 이제 ‘기획’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무한경쟁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가족은 더 이상 부부간의 ‘사랑’으로 맺어진 낭만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글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제적 동맹체로 거듭나면서 그 의미마저 변화하고 있다.

이 책은 중산층 맞벌이 여성들의 ‘지독한 바쁨(압축적 시간경험)’을 인터뷰 관찰로 추적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가족의 ‘기획’으로 이어지는지를 파헤친다. 맞벌이 직장맘들의 일상은 “참을 수 없는 긴장”을 낳는 시간의 연속이다. 일터에서의 성공과 가족의 성공을 둘 다 이뤄내기 위해,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한 시간을 다른 사람의 세 시간처럼 압축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2004년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전작 <현대가족 이야기>가 생산직 노동자 가족에서 여성(전업주부)의 일상과 '가정중심성'에 관한 고찰이었다면, 이 책 <기획된 가족>은 중산층 맞벌이 가족에서 이 가정중심성이 어떻게 유지되고 또 해체되고 있는지를 '바쁨'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가족의 기획자'로서 여성의 일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꼼꼼한 인터뷰와 촘촘한 시선으로 깊이 천착하고 있다.


출판사 책 소개

중산층. 화이트칼라. 맞벌이 직장맘
-그녀들은 가족을 어떻게 기획하고 관리하는가-


가족조차도 이제 ‘기획’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무한경쟁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가족은 더 이상 부부간의 ‘사랑’으로 맺어진 낭만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글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제적 동맹체로 거듭나면서 그 의미마저 변화하고 있다. 이 책은 중산층 맞벌이 여성들의 ‘지독한 바쁨(압축적 시간경험)’을 인터뷰 관찰로 추적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가족의 ‘기획’으로 이어지는지를 파헤친다. 직장에서의 성공과 중산층 가족으로서의 성공, 둘의 양립을 위해 그녀들은 어떻게 가족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관리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계급 재생산으로 이어지는가?

“이 책은 ‘바쁨’이라는 여성들의 압축적 시간경험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 부부관계와 가족의 특성을 잘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기획된 가족’이라고 부른다. 가족이 그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니, 거꾸로 말하면 기획되지 않은 가족은 해체된다. 그렇다면 어떤 기획을 해야 하며, 그 기획이 여성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책의 의의는 바로 이것을 질문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 엄기호(《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저자)

“이 책은 경쟁의 전투단위로서 기획ㆍ관리되는 가족 속에서, 존재를 위무하거나 구원할 방안을 모색한다. 그것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으로부터 날아올라 ‘대한민국 여성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실천적 의지로 피어오른 것이다.” - 천정환(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 물음은 시간이야말로 자본주의 시대 마지막 식민지라는 주장과 맞닿아 있는, 이 시대에 가장 뜨거운 주제임은 물론이다. (…) 덕분에 우리는 《기획된 가족》을 읽으며 “이건 바로 내 이야기야!” 무릎을 칠 수 있는 짜릿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네 일상의 시간을 최대한 압축하여 최대 이윤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본의 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은 물론, 그 힘이 부부, 부모-자녀, 심지어 친정-시댁까지 가족관계에 속속 스며들어 있음을 예리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 함인희(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시간'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마지막 식민지 - '압축적 시간경험'으로 구성되는 여성의 일상

맞벌이 직장맘들의 일상은 “참을 수 없는 긴장”을 낳는 시간의 연속이다. 일터에서의 성공과 가족의 성공을 둘 다 이뤄내기 위해,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한 시간을 다른 사람의 세 시간처럼 압축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예컨대, 아침이 가장 바쁘다고 말하는 어느 여성의, 출근 전 한 시간 동안의 활동 공간을 따라가 보자(본문 55쪽).

욕실(세수하고 머리 감기) → 부엌(아침식사 재료 꺼내놓고 준비 시작) → 자녀들 방(자녀들 깨우기) → 안방(간단하게 치우고 양말 신기) → 부엌과 식탁 왕복(식탁 차리기) → 자녀들 방(자녀들에게 아침식사 하라고 말하기) → 식탁(아침식사) → 거실(딸 머리 묶어주기) → 부엌(식탁 치우기) → 현관(남편 배웅하기) → 부엌(설거지 및 부엌 마무리) → 욕실(양치질) → 안방(옷 입고 화장 등 출근 준비) → 자녀들 방(자녀들 상태 확인) → 온 집안 상태 확인 후 현관(출근)으로 이동.

이렇게 한 시간 동안 열 가지가 훨씬 넘는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이런 활동의 중심에는 “아침 안 먹으면 큰일 나는” 남편의 습관을 존중해 한정식으로 준비되는 아침식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오랜 훈련 끝에) 이미 “습관”이 형성되어 있다.
이 책의 인터뷰 참여자들 대부분은 이렇듯 밥과 국이 기본인 아침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을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이는 일은 하루 종일 자녀들과 떨어져 일하는 어머니로서의 ‘보람’이자 ‘역할’로 인식되고 있다. 자녀의 등교시간과 부모의 출근시간은 비슷하다. 따라서 출근 전 수시로 시계를 확인하면서 다양한 과제들을 조율하고 자녀들에게 “습관”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은 ‘괜찮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익힌 숙련(skill)이기도 하다.
그러면 퇴근 후 시간은 어떨까? 어떤 여성들은 저녁시간이 가장 바쁘다고 말하는데, 자신의 퇴근시간과 아이들의 방과후 시간을 맞추고 자녀들의 취침시간을 일정 시간에 맞춰야 하는 시간규범,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주거나 숙제를 도와주거나 하는 ‘집중적 어머니 역할’, (자녀들 취침 후) 직장인으로서의 자기계발 시간 등이 충돌하면서 ‘바쁜 저녁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상에서 규칙성과 정확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중산층 직장여성들에게 자녀들을 늦지 않게 일정한 시간에 재우는 일은, 다음날 자녀의 학교 시간표와 부모의 직장생활 시간표를 일치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서, 또 여성들이 자기만의 저녁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 된다.

낮의 연장으로서 “바쁜 저녁시간”의 특징은 가정의 요새화와 연결되어 있다. (…) 이 책의 주요 참여자들은 저녁시간에 TV 시청이나 인터넷 접속 등 “시간낭비” 행동을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다. 참여자 대부분은 저녁시간에 자녀의 과제를 도와주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아동문학이 탄생한 빅토리아 시대의 발명품인 ‘어린이’를 동화로 감싸는 행위는 아이들이 저녁시간을 가장 유익하게 보내는 방법이라 믿고 있다. 자녀의 교육과 교양, 정서적 관계 맺기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중산층 직장여성이 자녀한테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교양인이라는 중간계급의 규범을 전수하는 행위이자 다양한 의미가 접합된 행위이다. 어린 자녀를 둔 일하는 어머니가 하루 중 마지막으로 수행하는 엄마 역할인 것이다.
(본문 66쪽, '바쁜 그녀 2' 중에서)

“시간은 쪼개면 쪼갤수록 생겨요”라는 말은 자신이 수행해야 할 과제와 가족의 요구와의 협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기자의 일상이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과제들에 대한 기획’이라는 압축적 시간경험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와 인터뷰하면서 “시간낭비”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기자의 일상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의 행동에 들어가는 시간의 양을 분석하고 비교하는, 시간에 대한 철저한 기획이 들어 있다. 개인의 삶 속에 역사화되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녀가 택한 방법은 자녀들을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는 자율적인 근대 주체’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기자는 자녀들이 아침에 정확하게 일어나 식탁에 앉아서 스스로 밥을 먹고 머리를 스스로 묶으며 간단한 요리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고, 화장실 청소를 포함한 집안일을 자녀한테도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할당하고 있다. 집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청결이나 세련된 인테리어에 대한 기대 수준을 대폭 낮추고, ‘밤 시간의 가족적 요새화’ 속에서 저녁시간에도 “청소기, 세탁기를 다 돌리”면서 시간을 꼼꼼하게 채워나가고 있다.
(본문 81쪽, '그녀들이 바쁜 이유' 중에서)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다! - 무너지는 노동시간의 경계

지금까지 맞벌이 직장여성들의 ‘바쁨’과 관련해서는 ‘(남편과 아내 중) 누가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하는가’ 하는, ‘시간의 양’적 측면에서만 질문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의 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특히 인터넷,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가속화되면서 맞벌이 직장여성들의 ‘압축적 시간경험’은 노동시간의 경계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예컨대, 업무시간 틈틈이 아이들의 학교 및 학원 일정을 체크하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인터넷뱅킹으로 송금을 하는 행위는 노동시간일까 가족관리시간(돌봄노동)일까, 또 아이들을 데리고 친교 모임에 나가는 것은 여가시간일까 돌봄시간일까. 한편 출퇴근시간을 줄이기 위해 주거지를 여성의 직장 근처로 이주하는 일은 여성에 대한 배려일까, 아니면 시간을 조정하고 기획하는 과제를 여성들이 떠맡고 있다는 반증일까.

사람들은 교사라고 하면 가장 먼저 경제적 안정과 시간적 여유를 떠올리곤 한다. (…) 그러한 근무조건과 맞물려 여교사는 결혼 시장에서 신붓감 1위의 자리를 고수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남성들의 여교사에 대한 이런 기대에는 매달 고정된 수입이 보장되면서도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퇴근시간이 일정해 가족관계에서 요구되는 노동들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여교사들이 이중노동을 수월하게 해나갈 것이라는 가부장적 편견이 배어 있다. (…) 여교사들의 일상에는 이중노동, 그것을 둘러싼 시간갈등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중노동은 주거지를 여교사의 학교 주변으로 옮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 도시에 거주하는 취업주부들의 일상 활동의 시·공간적 특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통근시간이 짧다. 맞벌이 가구의 출퇴근 거리는 수도권 전체적으로 볼 때 남편의 출근 거리가 부인의 출근 거리보다 약 1.8배 긴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의 복잡한 도로 사정을 고려해 출퇴근 시간을 줄이려고 여성 직장 근처로 이주하는 일은, 여성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자녀들의 학교시간표에 자신의 직장 근무시간표를 맞추며 시간을 조정하는 과제를 여성들이 떠맡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문 96쪽, '쫓기는 그녀 2' 중에서)

제3교대제, 감정노동 - 친정 · 시댁 가리지 않고 친족자원을 활용한다

집중적 어머니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이 책의 참여자들 대부분은 친정·시댁 가리지 않고 친족들의 자원을 활용하면서 가사노동 및 돌봄노동을 외주화하는 데 적극적이다. 특히 상품으로 구매할 수 없는 자녀들의 정서 · 감정 등의 문제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친족자원에 대한 의존이 심화된다. 물론 이로 인해 친정어머니/시어머니 등 친족 여성들에 대한 관리노동 · 감정노동까지 수행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과제가 생겨남은 필연적이다.
감정노동은 이른바 여성들의 제3교대제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이다. 자녀들과의 정서적인 관계는 압축적 시간경험에 대한 저항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으며, 시간을 빨리빨리 보내려는 압축적 시간경험과 그것에 대한 반발로서 자녀와의 정서적인 관계에 대한 추구는 가족 안에서 충돌한다.

중간계급 가족에게 ‘정서’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 더군다나 가족의 유지나 자녀교육과 관련된 구매력, 즉 경제적 자원을 소유하고 있는 중간계급은 정서와 감정을 상품으로 구입하기 힘들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 책의 참여자들이 친족관계에 기초한 육아 지원체계를 활용하는 것은, 친족 여성만이 자신의 자녀들과 정서적 안정, 감정적 교류를 나눌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 그러나 친족관계를 활용하는 여성들은 보살핌 노동에서 면제되는 대신, 남성들은 하지 않는 친족관리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은행원 조성희는 친정어머니와 같은 아파트의 같은 라인으로까지 이사했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조성희는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사람 구하기, 가격과 노동조건 협상하기, 친정어머니와 협상하기, 새벽에 자녀를 데려다주고 저녁에 데려오는 일, 친정어머니와 같은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한 전략 세우기(집 알아보기 등), 이사와 관련된 준비 등의 일뿐 아니라 연로하신 친정어머니의 상태를 수시로 돌봐야 하고 남편과 장모와의 관계까지 중재하는 등 보이지 않는 감정노동까지 수행한다.
(본문 124쪽, '친정어머니-시어머니도 관리 대상' 중에서)

평일/주말의 분리, 가족주의의 부활

맞벌이 가족이 늘어나고 속도를 내면화한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정이 확대되면서 최근 가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이에 더해 주5일제 시행은 가족의 시간을 평일과 주말, 두 영역으로 분리하면서 '주말의 가족화(여가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평일에는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기의 영역에서 활동했다면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여가시간(마트 장보기 및 외식, 야외 나들이, 여행 · 캠핑 등)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주말의 가족시간은 대개 소비를 매개로 이루어지고 그 소비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평일의 장시간 노동은 가족을 불안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말의 가족시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이른바 '가족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비정규직의 확산 속에서 정규직은 하나의 특권층과도 같다. (…) 정규직으로 일하는 맞벌이 부부에게 평일의 장시간 노동은 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책임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책임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 다국적 기업의 컨설턴트인 선우명선은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남편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새벽 3~4시경에 집에 들어와 한두 시간 눈을 붙인 뒤 샤워하고 다시 새벽에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서 “토할 것 같다”, “저러다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 늘 걱정이 된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정규직 맞벌이 부부에게 장시간 노동은 늘 일정한 급여수준으로 보상이 되는 경제적인 것이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부부의 친밀감을 높여주는 가족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본문 138쪽, '어머니 노동자의 평일' 중에서)

이 책의 참여자들은 대부분의 가사노동을 다른 여성에게 위탁하고 있기 때문에 막상 주말에 여섯 끼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리면 난감해진다. 이들은 마트를 가거나 외식을 하는 것으로 그러한 난감함을 줄여나가고 있다. 이들은 주말에 시집, 친정 등으로 가서 식사를 하거나, 도움을 받는 여성노인과 함께 외식을 한다. 또한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가서 ‘가족여가’로 의미되는 활동을 하고 간단한 외식을 한다. 평일에는 직장 중심의 일상이고 주말에는 가족 중심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말은 소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들이 주말에 승용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남편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본문 159쪽, '어머니 노동자의 주말' 중에서)


남편을 훈련시키고, 임신?출산마저 시테크로 기획한다

이 책의 참여자들은 압축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면서 노동시간과 가족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과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그 안에는 친족자원을 알뜰하게 활용하는 관리노동/감정노동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 부재하는 "바쁜 남편"에게서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이끌어내기 위해 남편들을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임신?출산마저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촘촘하게 기획하는 시테크도 포함되어 있다.

남편과 비슷한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며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들은 남편을 최소한의 가사노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갈등하고 필요한 전략을 세우며 ‘맹훈련’ 혹은 ‘가르치는’ 시간을 사용했다. (…) 그것은 여성들의 지난한, 보이지 않는 시간 사용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그 효과는 남성들의 가사노동 수행 형태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주로 특식요리, 아이들과 놀기, 청소 등에 한정해 주말에 집중적으로 수행한다. 그것들은 여성의 도움과 지도 아래 수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여성들은 평일에도 남성이 부재할 때 혼자서 가사노동을 수행하지만,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훈련”받고 “가르침”을 도움 받을 수 있는 여성들이 존재할 때 한다는 점에서 성별화되어 있고, 그러한 점에서 미래의 갈등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본문 255쪽, '계획하고 관리해도 피할 수 없는 젠더갈등' 중에서)

방학 기간으로 출산 시기를 맞추려는 비정규직(강의전담 교수)의 사례와는 반대로,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여교사들은 방학 기간을 피해 출산하기 위한 시테크를 시도하기도 한다.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정규직 여교사들은 근무시간으로 인정되는 방학이 끝날 무렵을 전후한 시기에 출산 시기를 맞춰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려고 하는 시간관리를 시도하는 것이다. 중간계급 취업여성들의 임신·출산 시테크는 “잘리지 않고” 직장 경력을 이어나가기 위해, 혹은 권리로 주어지는 시간제도를 활용해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더불어 회사의 시간제도를 잘 활용해 유리한 조건으로 복직하기 위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본문 202쪽, '임신·출산을 위한 시테크' 중에서)


왜 '기획된 가족'인가? - 경제적 동맹자로서의 부부, 계급을 재생산하다

이 책의 참여자들은 대개 서울에 거주하면서 맞벌이를 하고 19세 미만의 자녀를 둔, 정규직으로 전문직?사무직에 종사하는 30~40대의 여성이다. 압축적 시간경험을 하고 있는 그들은 가족의 총괄 '기획자'로서 계급 안정성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인 기획'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은 없는 것일까?
그들이 친족 여성들에게 비용을 지불하면서 가사노동 및 돌봄노동을 외주화하는 행위는 노인복지와 아동복지를 철저하게 '사적(私的)'으로 해결하면서 공공복지를 확대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될 위험이 크다. 또한 평일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부부 사이의 친밀감을 확인할 시간마저 부족한 상황이 오히려 부부관계를 안정시키는 역설이 발생하는데, 이는 젠더갈등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불륜마저도 이혼 사유가 되지 않는 씁쓸한 풍경이 연출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높은 집값, 교육비, 노후준비 등을 위해 맞벌이를 지속할 것이다. 더군다나 승진이 보장되는 정규직 신분, 상대적 고임금은 그들이 직장생활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강한 유인책이 될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중간계급 맞벌이 가족의 전략, 즉 결과로서의 ‘기획된 가족’, ‘경제적 동맹자로서의 부부관계’는 지속될 전망이다. 그들은 활용 가능한 자원들로 젠더갈등을 잠재우면서 표면적으로 매우 ‘안정된’ 부부관계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친밀감과 유대 수준이 낮다고만은 말하기 어렵다. 경제력에 우선적인 가치와 특권이 부여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동맹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들 부부의 결속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들의 가계 운영 방식은 불안정한 노동 시장, 높은 물가, 빈약한 사회안전망을 가진 우리 사회에서 비롯된다. (…) 주택 구입, 친족관계에 지불되는 돌봄 비용과 각종 미래에 대비한 ‘안전한’ 금융상품으로 구성되는 가계 운영 방식은 장래의 노인복지, 아동복지 등을 가족 주체가 철저하게 사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사회적 약자의 강력한 요구가 사회 변화를 가져온 역사를 돌이켜볼 때 참여자들의 가계 운영 방식은, 의도와는 달리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열린 복지사회의 방향에는 역행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225쪽, '미래에 저당 잡힌 살림' 중에서)

참여자들에게 젠더갈등을 일으킬 만한 (가사노동 등의) 영역은 외주화되고, 남편과 언쟁하는 것은 시간낭비, 더 나아가 비생산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이들은 휴대전화 기능을 활용해 일상적인 다정함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양육 문제(아이들을 위해서 누가 갈 것인가?)를 두고서 짧게 동선을 확인(“어디야?” “오늘 몇 시에 와?”)하며 협상한다. 이들은 ‘문자메시지 부부’답게, 자녀양육을 둘러싸고 짧은 통화를 통한 문자 협상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본문 273쪽, '경제적 동맹자로 거듭나는 부부' 중에서)

즉 노동과 가족(친밀성)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장시간 유급노동 그 자체가 친밀한 관계의 기초이자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직장과 집에서 일하느라 부부끼리 마주앉아 대화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 오히려 부부관계를 안정시키는 역설이 발생한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기 때문에 노동시간의 구조를 서로 공유하는, 매달 일정한 소득을 각자 관리하면서도 공유하는 현실이 화이트칼라 정규직 노동자 부부에게 친밀감을 가져다준다. 불안한 사회에 맞서기 위해 부부관계에서 정서적 상호소통과 친밀함보다는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한 혼인안정성이 중요하게 등장함에 따라 남편과 부인 간의 권력관계는 계속 은폐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 부부들에게는 부부관계 해체의 주요 원인으로 등장하는 성격 차이를 확인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리고 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활용 가능한 자원들이 있다. 이것이 표면적으로는 매우 ‘안정된’ 부부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본문 275쪽, '경제적 동맹자로 거듭나는 부부' 중에서)

왜 그들은 이혼하지 않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 우리나라의 높은 자녀양육비와 부동산 가격을 고려할 때 이혼은 매우 비경제적인 선택이 된다. 배우자와 동거하지 않고 별도의 공간에서 각자의 경제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경제적 비용과 기회비용, 시간 손실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퇴조이다.
조기 퇴직과 해고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에서 ‘경제력’은 특권적인 가치로 자리 잡았다. (…) 현재의 배우자와 살아가는 것보다 애인과 살아가는 것이 이혼 과정에서 소요되는 기회비용과 경제적 비용을 만회하고도 남을 큰 실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합리적 계산 후에야 배우자와 이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사랑의 도구화, 부부관계를 비롯한 인간관계의 도구화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본문 39쪽, '프롤로그' 중에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때

“기획된 가족, 경제적 동맹자로서의 가족? 너무 비인간적인 거 아니야? 가족이, 부부관계가 그러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역시 가족에 대한 애잔한 향수를 갖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가족은 여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늘 많은 노동과 갈등, 때로는 폭력을 감수해야 했던 비인간적인 곳이었다.
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도, 자신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가족·직장의 가치나 규범과는 다른 욕구를 갖고 있다. 인간 의식의 밑바닥에는 통제되거나 관리되고 싶지 않은 욕망, 본능을 발산하고픈 욕망, 때로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흐트러지고 싶은 욕망, 동맹에서 탈퇴하여 자유롭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시기이다. 공룡처럼 거대한 신자유주의의 속도경제, 자본의 무한 번식을 누그러뜨릴 방법은 없는 듯 보이지만, 다행히도 그것들이 강요하는 무한경쟁이라는 열차에서 내려오려는 사람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런 행동까지도, 다양한 정보를 활용한 치밀한 기획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본문 296쪽, 에필로그 중에서)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에 앞장섰던 여성?가족학자 조주은,
생산직 노동자 가족에 이어 중산층 맞벌이 가족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일상을 추적해온 10년

2004년 어머니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카페를 만들어 엄마들의 강제 동원을 폐지시킨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저자 조주은은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여성?가족 업무를 담당하는 입법 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4년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전작 《현대가족 이야기》가 생산직 노동자 가족에서 여성(전업주부)의 일상과 '가정중심성'에 관한 고찰이었다면, 이 책 《기획된 가족》은 중산층 맞벌이 가족에서 이 가정중심성이 어떻게 유지되고 또 해체되고 있는지를 '바쁨'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가족의 기획자'로서 여성의 일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꼼꼼한 인터뷰와 촘촘한 시선으로 깊이 천착하고 있다.
저자는 가장 객관적인 여성정책은 여성들의 일상에 대한 천착 속에서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여성들이 있는 곳이 정책 현장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연구자로서 노안이 오기 전의 꿈은,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주간연속 2교대제가 적용된 이후에, 10년 전 인터뷰했던 여성들을 다시 만나 변화된 가족생활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더 여력이 된다면, 나이트클럽이라는 과잉 성애화된(hyper-sexualized) 공간과 가정이라는 공간을 넘나드는 기혼 여성들의 가족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변화하고 있는 한국 가족의 일부를 진단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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