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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년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작품의 무대이기도 했던 칩사이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윌리엄 미들턴은 런던 시민의 상위 10퍼센트에 들 만큼 유복한 벽돌공 출신 런던 신사였으나 미들턴이 6세 때 사망했고, 여성에게 재산권이 없던 시절에 어머니 앤은 재혼 전에 미들턴 남매에게 재산의 3분의 2를 기탁함으로써 자식들의 유산을 보호하는 법적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새아버지 토머스 하비는 그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아내인 앤과 오랜 법적 싸움을 벌였고, 이런 배경은 미들턴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들턴은 18세가 되던 1598년에 옥스퍼드의 퀸스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거듭되는 가정사 등으로 1601년에 학위를 받지 않은 채 옥스퍼드를 떠났다.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미들턴은 신분으로는 신사였지만 토지나 재산, 직업이나 기술도 없는 처지였다. 당시 미들턴처럼 돈 없는 작가들이 기댈 수 있는 수입원은 후원자나 극장, 그리고 출판이었는데 이미 후원제가 시들해진 근대 초기 영국에서 미들턴은 극본을 써서 팔거나 팸플릿 등의 저작을 출판업자에게 판매함으로써 생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극작가가 된 미들턴은 어느 한 극단에 속하지 않은 프리랜서로 일했고,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토머스 데커, 윌리엄 셰익스피어, 윌리엄 로울리 등과 함께 집필하며 수많은 작품들을 써냈다. 미들턴은 드라마 외에 팸플릿 출판, 왕실과 런던시, 길드 들을 위한 찬양극(pageant) 집필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혔으며 일부는 크게 성공하기도 했으나, 1624년 대표작 《체스 게임(A Game at Chess)》이 정치적 이유로 탄압되고 판금되면서 이후 1627년 사망할 때까지 투옥 혹은 피신으로 어떤 작품도 쓰지 못했다. 생전에 여러 면에서 셰익스피어에 필적할 만한 뛰어난 작가였던 미들턴은 사후에 자신의 명성과 유작을 지켜 줄 가족이나 동료, 재산이 없었기에 그의 유작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그의 전집이 2007년이 되어서야 출판될 정도로 영문학계나 국내외 출판계에서 대접받지 못했으나, 최근에 그에 대한 재조명이 각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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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말로 외 8명 지음
지만지드라마 펴냄

토머스 미들턴 외 1명 지음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