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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보통인 책
출간일
2025.9.25
페이지
248쪽
상세 정보
어느 날, 이화열 작가는 시어머니 아를레트가 스위스 조력사망기관에 조력사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요한 결심》은 조력사 결정부터 시어머니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하기까지, 작별을 준비하면서 보낸 세 달의 시간, 죽음이 일깨운 삶의 감각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는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고자 했던 한 존재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삶의 주체성을 조금씩 잠식해 가는 노화의 과정과 그 안에서 지켜내야 할 존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음과 죽음을 일상의 언어로 기록했다. 삶이 다르듯,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모두 다르다. 어떤 이에게 삶은 ‘죽지 않으려는 욕망’이지만 또 어떤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문장’이 되기도 한다. 젊을 때는 죽음이 나와 상관없는 일 같아 관심이 없고, 나이 들어서는 두려움 때문에 외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작가는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은 더 또렷해진다고 이야기한다. 또 준비된 죽음이든 아니든, 결국 우리는 살아온 대로 죽는다고도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게, 단호한 사람은 단호하게. 죽음이 평온한지, 고통스러운지 살아있는 동안 알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삶에 녹아있는 철학’을 담백하고 위트 있게 글로 옮기는 작가 이화열은 그녀의 일곱 번째 에세이 《고요한 결심》에서 ‘어떻게 나이 들고 죽을 것인가’, ‘의존하지 않고 존엄을 지키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이 삶이 내가 원한 삶인가. 어떻게 사랑하며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이별을 준비할 것인가. 잘 떠나는 삶은 어떤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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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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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화열 작가는 시어머니 아를레트가 스위스 조력사망기관에 조력사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요한 결심》은 조력사 결정부터 시어머니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하기까지, 작별을 준비하면서 보낸 세 달의 시간, 죽음이 일깨운 삶의 감각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는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고자 했던 한 존재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삶의 주체성을 조금씩 잠식해 가는 노화의 과정과 그 안에서 지켜내야 할 존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음과 죽음을 일상의 언어로 기록했다. 삶이 다르듯,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모두 다르다. 어떤 이에게 삶은 ‘죽지 않으려는 욕망’이지만 또 어떤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문장’이 되기도 한다. 젊을 때는 죽음이 나와 상관없는 일 같아 관심이 없고, 나이 들어서는 두려움 때문에 외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작가는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은 더 또렷해진다고 이야기한다. 또 준비된 죽음이든 아니든, 결국 우리는 살아온 대로 죽는다고도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게, 단호한 사람은 단호하게. 죽음이 평온한지, 고통스러운지 살아있는 동안 알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삶에 녹아있는 철학’을 담백하고 위트 있게 글로 옮기는 작가 이화열은 그녀의 일곱 번째 에세이 《고요한 결심》에서 ‘어떻게 나이 들고 죽을 것인가’, ‘의존하지 않고 존엄을 지키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이 삶이 내가 원한 삶인가. 어떻게 사랑하며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이별을 준비할 것인가. 잘 떠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출판사 책 소개
《지지 않는 하루》, 《서재 이혼 시키기》 작가 이화열 신작!
“내 삶의 언어로 존엄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몽테뉴는 ‘철학이란 곧 죽음을 배우는 일’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우리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 마지막 걸음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어느 날, 이화열 작가는 시어머니 아를레트가 스위스 조력사망기관에 조력사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요한 결심》은 조력사 결정부터 시어머니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하기까지, 작별을 준비하면서 보낸 세 달의 시간, 죽음이 일깨운 삶의 감각을 기록한 책이다.
“일 년 전, 시어머니가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선택하셨다. 말기암도 중증질환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결정은 큰 충격이었다. (…) 그녀는 ‘인간다움’이라는 품위를 지키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본능을 내려놓았다. 체념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으로 남고자 한 신념이었다.” _여는 글에서
작가는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고자 했던 한 존재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삶의 주체성을 조금씩 잠식해 가는 노화의 과정과 그 안에서 지켜내야 할 존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음과 죽음을 일상의 언어로 기록했다. 삶이 다르듯,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모두 다르다. 어떤 이에게 삶은 ‘죽지 않으려는 욕망’이지만 또 어떤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문장’이 되기도 한다. 젊을 때는 죽음이 나와 상관없는 일 같아 관심이 없고, 나이 들어서는 두려움 때문에 외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작가는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은 더 또렷해진다고 이야기한다. 또 준비된 죽음이든 아니든, 결국 우리는 살아온 대로 죽는다고도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게, 단호한 사람은 단호하게. 죽음이 평온한지, 고통스러운지 살아있는 동안 알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삶에 녹아있는 철학’을 담백하고 위트 있게 글로 옮기는 작가 이화열은 그녀의 일곱 번째 에세이 《고요한 결심》에서 ‘어떻게 나이 들고 죽을 것인가’, ‘의존하지 않고 존엄을 지키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이 삶이 내가 원한 삶인가. 어떻게 사랑하며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이별을 준비할 것인가. 잘 떠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저마다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
작가는 시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조력사 결정을 마침내 존중한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와 이별해야 하는 슬픔과 두려움은 무척 컸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거주하는 프랑스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안락사(의사의 손을 빌려 죽음에 이르는 것)나 조력사(의사의 도움을 받지만 스스로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것)가 모두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승인 받는 일’과 ‘국경을 넘는 일’을 함께 준비하며 자신이 죽음에 조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죄책감도 고스란히 느낀다.
“정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까?”
“이건 삶이 아니야. 너도 알잖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직 정신이 또렷할 때 이 고통을 끝내는 일이야.”
낯설고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인 세 달 동안, 시어머니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무척 사랑하고, 무임승차를 하거나 빨간불 한번 무시한 적 없던 그녀가 법을 어기는 일조차 감수하며 국경을 넘어 자기 자신으로 남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결심한 것을 보며, 작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요한 결심》은 조력사나 안락사에 대한 찬반을 묻는 책이 아니다. ‘어떤 선택이 옳은가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며 끝까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철학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자기 삶의 언어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어떻게 나이 들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살아있는 내내, 우린 ‘과거’ 혹은 ‘젊음’을 기준으로 비교한다. (…) 육체적 문제들이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다는 전지적 환상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늙음을 이해하게 된다. 만약 ‘미래’, 그리고 ‘늙음’을 기준으로 산다면, 매일 조금씩 쇠락하는 느낌을 더 잘 견딜 수 있을까.” _ 본문에서
앞서 말한 것처럼 살아온 대로 죽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작가는 노년을 맞이하는 다양한 삶의 태도를 지켜보며, ‘늙음도 저마다 다른 문을 가진다’고 말한다. 삶에 부드럽게 조응하는 문, 들어가기 위해 비밀번호가 필요한 문, 단단히 잠긴 문. 어떻게 하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 더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골몰하지만, 우리는 나이 드는 삶, 이른바 노년에는 관심이 없다. 때문에 똑같은 삶이 없듯, 똑같은 늙음도 없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그러나 누구나 노년에 ‘존엄’과 ‘자유’를 어디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고독사를 걱정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늙음이 닥치기 전에 타인에게 어떻게 의존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결국 이 질문은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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