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때, 달달한 로맨스가 필요할 때, 떠나고 싶을 때, 고민이 있을 때, 힐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분량얇은 책
장르동유럽소설
출간일2018-05-09
페이지128쪽
10%11,000원
9,900원
분량얇은 책
장르동유럽소설
출간일2018-05-09
페이지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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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동유럽소설
출간일2018-05-09
페이지128쪽
요약
독서 가이드
1. 이 책은 30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2.행복할 때일 때 읽으면 도움이 돼요.
3.한 번 자리에 앉아 끝까지 읽어내려가기 좋은 분량이에요.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
(저자)
백수린
(역자)
상세 정보
인간사회의 불확실성과 부조리함을 지독히 담담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그려냄으로써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소설가 김연수, 은희경, 정이현, 작가 이동진을 비롯한 수많은 명사들의 존경을 받는 헝가리 출신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언어적 정체성을 다룬 자전적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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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문맹 (자전적 이야기) 내용 요약
‘문맹’은 헝가리 출신 프랑스어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의 자전적 에세이로, 원제 ‘L’Analphabète’(2004)가 2018년 5월 9일 한겨레출판에서 백수린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 ISBN 9791160401608. 약 127쪽의 얇은 분량으로, 현대 프랑스어권 문학의 고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1986~1991)의 작가가 자신의 삶과 언어적 정체성을 담담히 기록한 작품이다. 크리스토프는 1935년 헝가리 치크반드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과 19
시대와 환경으로 인해
모국어를 누구보다 잘 읽고, 잘 썼던 저자가
난민이 되어 모국어를 잃고
생소한 언어로 읽어야 하고 써야 했던
고통스러운 과정을 자전적으로 쓴 이야기이다.
오랜 영어 공부를 했음에도 영어를 마스터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 어려운 환경에서 외국어를 배우고, 이야기를 쓸 수준까지 배울 수 있었을까.
독일과 러시아에 의해 고생했던 헝가리 국민들에 대해 알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다른 작품과 헝가리에 대해서도 알고싶어졌다.
문맹이라는 단어가 주는 서사란 글을 알지 못했던 시절에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삶으로 전환되는 이야기일거라고 유추했다.
'문맹'은 타고난 문학적인 소녀가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모국어를 상실한 채, 새로운 언어들을 배우고 그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된 이야기이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기본으로 영어를 배우다가 제2외국어를 배울때도, 모국어는 태어남과 동시에 익히고 배운 까닭에 공기 같았기에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무척이나 고단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개인에 따라 새로운 언어의 익힘과 쓰임이 다르게 작동하지만, 모국어로조차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는 일은 어려운 일인데, 생존을 위해 배웠던 타국의 언어로 읽고 쓰고 생각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는 저자의 삶에 숙연해진다.
저자는 1935년생이다.세계대전의 소용돌이가 헝가리라는 나라가 독일에 침공 당하고, 이어 소련에 침공당하는 이중의 침공의 역사 속에서 생존을 위해 스위스로 난민이 되어 떠나야 했던 삶이 된다. 독일이 침공했을 때는 독일어를, 다시 소련이 침공했을 때는 러시아어를, 그리고 다시 스위스로 옮겨와서는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다는 세 번의 언어의 변화는 읽는 것만으로도 알아 듣지 못하는 언어의 소리가 가득 울리는 공간에 떨어진 공포감이 느껴진다.
⁑
그렇게 해서 스물한 살의 나이로 스위스에, 그중에서도 전적으로 우연히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 내 평생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 모국어와 적어 중에서
작가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프랑스어로 생활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언어가 자신의 모국어를 죽인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삶이라 느끼는 예민함과 모국어를 상실해 가는 고통을 표현한다.
⁑
없었다. '지진'은 36년 후에나 일어났고, 그것은 자연의 응답이 아니라 민중의 응답이었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확실히 죽기까지는, 우리의 '빛나는 등대'가, 바라건대, 영원토록 꺼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이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1956년에 3만 명이 죽었다. 우리가 영원토록 가늠해볼 수 없는 것은 독재가 동유럽 국가들의 철학, 미술, 문학에 얼마나 해로운 역할을 했는지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면서 소련은 이 나라들의 경제 발전만 저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민족 정체성까지 말살시키려고 했다.
- 스탈린의 죽음 중에서
우리 역시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문화탄압을을 받았던 서사가 있던 민족이기에, 이 대목에서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들었던 문화정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당시 수업시간에 들었던 맥락은 무력으로 식민지를 지배하던 시기에서 문화적으로 회유하면서 지배하던 시기로 접어들면서 이런 용어로 구분했던 기억이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봐도 알 수 있는 문화의 말살 통치는 후유증이 꽤나 깊다. 그 시대에 유년을 살았던 세대가 어른이 되어서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단어와 말들, 의식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세뇌화가 된다는 것의 폐해를 책에서 말하고 있다. 통치가 끝나도 무의식에 남아 있는 정체성의 혼란은 오랜 시간 의식해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식 한자 표현이나, 용어가 여전히 법조계나 전문직의 현장 용어로 쓰이고 현실이 보여준다. 좋고 나쁨의 의미를 벗어나 문화 통치의 증거라고나 할까.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은 정신을, 사유를 말살하려는 것이고 그것은 고유의 정체성의 상실을 가리킨다. 작가는 정체성이 상실에 대해서 경제적 발전의 저해보다 더 크게 느껴기에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날, 1956년 11월 말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민족 집단에 속해있던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 기억 중에서
⁑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리라는 사실이다.
- 제자리에 있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모국어를 상실한 채 새롭게 자리잡은 나라에서 작가로서 성공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체성과 모국어의 상실이라는 고통을 말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글을 쓰는 이가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과 자의식으로 지금 이런 글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고통 속에서도 글 쓰는 이로서의 자아 정체성이 작가를 지켜주지 않았을까?
⁑
사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 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 사라지고 침묵과 공백, 우리가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
그의 아름다운 나라가 우리 난민들에게 사막, 사람들이 '통합'이라든지 '동화'라고 부르는 것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가 건너야만 하는 사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어떤 이들은 끝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사막 중에서
이 장에서 함께 탈출했던 이들 중 죽은 이가 있다는 걸 서술하고 있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그 중 한 명이 18살이었고 지젤이라고 쓰여있다. 먹먹함이 전해져왔다. 불과 스물도 되지 않은 젊음이 살고자 탈출했는데, 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까닭은, 현실은 무엇인가?
⁑
어떤 때는 내가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리고 또 어떤 때는 나의 말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해서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문맹 중에서
아이가 어릴 때 언제 처음 글자를 가르쳐야 할까 고민한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니면 미리 글을 떼어야 하는 걸까 하는 여러 생각들이 든다. 모국어이기에 아이에게 글을 깨우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작가는 자신이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또는 자신의 말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린다. 이중 언어의 상태에 놓인 양육자의 경우 무력감과 두려움이 함께 든다. 아이가 언어를 알아들지 못할까봐 두렵고 자신이 알아들지 못하는 언어의 진공 상태가 곧 문맹이라고 말하고 잇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머물지 않고 문맹의 도전이라고 말하는 말과 글에 대한 사랑과 힘에 경의를 표한다.
이런 의식과 실행력이 있었기에 저자는 작가로서의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면서 살았던 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맹에 대한 다른 밀도와 깊이를 볼 수 있는 자전 에세이다.
개인의 눈으로 보기.
자서전 읽기.
낡은 주제를 더 지혜롭고, 더 날카롭게 읽기.
(73) 흥미로운 것은 내가 그날 밤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꿈 속에서 혹은 다른 생에서 일어난 일 같다. 마치 내 기억이 내 삶의 커다란 부분을 잃어버린 그 순간을 떠올리기를 거부하는 것 같기도 하다. (...)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날, 1956년 11월 말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민족 집단에 속해 있던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82)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
(89) 공장에서는 모두들 우리를 친절히 대한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웃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 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 사라지고 침묵과 공백, 우리가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
(91) 어떻게 그에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짧은 프랑스어로, 그의 아름다운 나라가 우리 난민들에게는 사막, 사람들이 ‘통합’이라든지 ‘동화’라고 부르는 것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가 건너야만 하는 사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어떤 이들은 끝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92) 다른 네 명은 더 멀리, 우리가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가장 높은 경계선 너머까지 갔다.
그리고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을 생각한다. 그것도 뒤늦게 배운 외국어로.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말만을 골라서 쓸 것이다. 말은 가난해진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상은 단순해진다. 이 단순한 세상의 여백에 인간의 사랑과 고통과 삶과 죽음의 말들이 하얀색으로 들어차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세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단순함은 치명적이다. 난민의 언어인데 집 안에 앉은 내 가슴을 저격한다는 점에서. 나는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그녀의 문장을 따라 써본다. ‘우리는 숲을 걷는다’라고. ‘오랫동안, 너무나 오랫동안’이라고. 이 가난한 언어의 집은 한없이 투명하고 명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