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어디서 살 것인가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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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30

페이지

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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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할 때 , 인생이 재미 없을 때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 고민이 있을 때 , 힐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상세 정보

베스트셀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건축과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했던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신작.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방향성에 맞추어 스스로 살 곳을 변화시켜 갈 수 있도록 건축과 공간을 읽는 방법을 소개하고 다양한 삶의 결이 깃든 좋은 터전을 제안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 어떤 평수로 이사할 것이냐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도시와 우리의 모습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저자는 이 책에서 “어디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도시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어디서’는 ‘어떤 공간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자문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냐가 아닌, 어떤 공간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며 서로의 색깔을 나눌 수 있는 곳,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부합하는 도시로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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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sejinyiwc

어디서 살 것인가 -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이어 공간과 도시를 사유하는 유현준 교수의 책이다. 이 책에는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다 말하지 못한 건축과 도시에 비친 우리의 모습과, 건축가로서 실제로 우리를 둘러싼 공간들을 디자인하면서 알게 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매 페이지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책이다. 인간과 건축과 공간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인문학적 시선을 가질 수 있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총12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나와는 동떨어진 물질로만 건축물을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는 건축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같은 집이지만 사용자에 따라 다른 집이 된다. 건축물의 의미는 사용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그 건축물을 이해하거나 평가하기는 어렵다. 사람과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다. 건축과 사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의미를 규정한다.

1994년 놀라운 발견이 하나 있었다. '괴베클리 테페'라는 터키 남동부 샤늘르우르파 외렌직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이다.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이 건축물은 기원전 1만~8천 년경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스톤헨지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6천 년 이상이나 앞서 지어졌다.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이 그려진 것은 기원전 3만 5천 년부터 기원전 1만 1천 년 사이의 구석기 시대다. 그러니 괴베클리 테페는 구석기 때 인류가 동굴에 살다가 동굴 밖에 나오면서 짓기 시작한 최초의 건축물이다.

기후와 연결해서 살펴보면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지어진 것이다. 형태를 살펴보면 T 자형으로 생긴 돌기둥들이 가운데 서 있고 그 주변을 돌로 쌓아서 만든 벽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고고학자들은 이 건축물이 집이 아니라 장례식을 치렀던 신전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돌 하나의 무게가 자그마치 15톤 정도라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불을 사용하긴 했지만 바퀴는 없었고 짐을 운반할 가축도 없었다는 점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온전히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지어진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건축물이 기원전 7천 년경에 시작된 농업혁명 이전에 지어졌다는 점이다. 도시 발생에 관한 기존의 정설은 수렵 채집의 시기가 지나고 농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한곳에 머물러 살게 되어 도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괴베클리 테페의 발견으로 이 순서가 뒤바뀌게 되었다. 괴베클리 테페는 농업혁명이 시작된 시점보다 수천년 먼저 지어졌다.

이 건축물을 지으려면 60~70명의 사람이 6개월에서 1년 동안 매달려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건축물을 지으면서 한곳에서 생활하려면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원시적인 형태의 농업이 시작됐다는 가설이다. 농업으로 건축이 시작된 게 아니라, 건축을 하기 위해 농업을 시작한 것으로 시각이 바뀌었다.

괴베클리 테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아직도 우리 인류의 문명 형성 과정을 정확히 모른다. 지금껏 우리는 농사를 짓게 되면서 건축과 문명이 시작된 줄로 알았다. 농업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괴베클리 테페의 발굴로 인해 우리는 그 당시 종교성이 우선이었고,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라는 자의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교육하고 힘을 합치기 위해서 힘든 석조 건축을 시작하고, 그로 인해 농업혁명이 일어났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언제 또 어떤 유물이 발견되어 이 가설이 뒤집어질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건축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자신을 알아 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대의 유적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건축을 관심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개천에서 용나기
한국에서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자면 두 가지가 있다. 학교와 교도소다. 둘 다 담을 넘으면 큰일 난다. 학교와 교도소 둘 다 운동장 하나에 4~5층짜리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 크기를 빼고는 공간 구성상의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교도소 혹은 연병장과 막사의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12년 동안 생활한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교실로 구성된 대형 교사에서 12년 동안 키워지는 아이들을 보면 닭장 안에 갇혀 지내는 양계장 닭이 떠오른다. 남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실에서 자라난 사람은 똑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학교의 전체주의적인 성향은 최근 들어 더 심화되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똑같은 교복을 입고 다닌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식판에 똑같은 밥을 배급받아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식판에 똑같은 밥을 배급받아 먹는 곳은 교도소와 군대와 학교밖에 없다. 학교는 점점 교도소와 비슷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군대는 2년이면 제대하지만 학교는 12년을 다녀야 한다. 공간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는 12년 동안 아이들을 수감 상태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고등학교 졸업생에게 꽃다발을 주기보다는 두부를 먹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양계장 같은 학교에서 12년 동안 커 온 아이들에게 졸업한 다음에 창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교실의 낮은 천장고도 문제다.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조운 메이어스 - 레비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3미터 이상 높이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고 한다. 2.4미터, 2.7미터, 3미터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3미터 천장고에서 시험을 친 학생이 낮은 천정고의 학생에 비해 창의적 문제를 2배나 더 많이 풀었다는 연구 결과다. 이처럼 높은 천장이 있는 공간은 창의력을 향상시킨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교실 높이는 교육부에서 지정한 2.6미터로 동일하다. 우리의 학교에는 3미터가 넘는 경사 지붕의 교실도 있어야 하고 둥그런 천장의 교실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다양한 모양의 천장이 있는 교실에서 공부하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1인 가구가 사는 도시
아파트의 경우에도 10년 전에는 4인 가구가 주류였고, 중산층은 30평형대 아파트에 사는 것이 기준이었다. 이 경우 한 사람은 자신의 방과 더불어 거실 / 부엌 공간을 사용하게 된다. 일인당 약 20평가량의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1인 가구는 원룸에 살게 되면서 8평 이하의 공간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인당 사용 공간이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과거에는 자기 방을 열고 나가면 거실이라는 공공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 즉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1인 가구는 여유 공간을 찾을 수 없는 원룸에 갇혀 살고, SNS를 이용해 사람을 만난다. 사용하는 공간보다 더 작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살게 된 것이다.

부모와 살면 친구를 집에 초대할 수 없고, 원룸에 살면 공간이 작아 초대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디 편하게 앉아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한 끼 식사비 정도로 비싼 커피 값을 지불하고 카페에 앉아야 한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변화에 맞는 우리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공간들로 채워 갈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무료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들이 다양하게 많아져야 한다.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의 부족은 청소년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학생들은 왜 편의점을 찾는가? 요즘 학생들은 항시 감시를 받으면서 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선생님과 학부모가 많아야 일 년에 한두 번 만났다. 학교와 가정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자녀 세대의 자유와 독립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원에 5분만 늦어도 학부모에게 문자가 도착한다. 학원은 고객인 학부모들과 공조하여 전방위로 학생을 감시한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아이들은 공간적으로 부모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1990년대에 삐삐가 보급되면서 직장인들이 상사에게 더 시달리게 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핵가족 형태도 청소년에게는 불리한 구조다. 청소년에게는 감시에서 벗어난 사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학생이 스타벅스에 가듯 10대들은 편의점에 간다. 천 원에 과자 한 봉지를 사면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편의점은 점원과 CCTV 덕분에 안전하다. 중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자신들만의 안전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바로 편의점이다. PC방도 이들의 용돈 내에서 빌릴 수 있는 공간이다. 1,500원가량이면 한 시간 동안 PC방을 전세 낼 수 있다. 학원과 집에서 그들만의 사적 공간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은 PC방이나 편의점에 삼삼오오 모여 부모의 감시를 벗어난 자신들만의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쇼핑몰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 이유
대형 쇼핑몰에는 변화하는 자연이 없다 보니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쇼핑몰은 몇 년에 한 번씩 대대적인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한다. 그리고 더 잦은 변화를 위해 수시로 변화하는 콘텐츠인 멀티플렉스 극장을 도입한다. 계절이 바뀌는 대신 상영하는 영화를 바꿔 주는 것이다.

로마는 천 년 이상 지속됐는데 몽골제국은 150년 만에 망한 까닭은?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몽골제국이 빨리 망한 것은 건축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물은 제국이 정복지를 통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집트는 피라미드, 로마는 콜로세움, 중국은 만리장성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했다. 그런데 몽골인은 유목 민족이다. 유목민은 목초지를 따라 계속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텐트에서 지냈고, 무거운 건물을 짓지 않았다. 반면 로마인들은 정복지마다 콜로세움 같은 원형경기장을 지었다. 그렇다면 무거운 건축물을 남기는 것이 왜 제국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까?

무거운 돌을 이용한 거석문화는 권력의 상징이다. 더 무거운 건축물일수록 더 큰 권력을 나타낸다. 영국의 스톤헨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도 모두 같은 이유에서 건축된 것이다. 만리장성의 총길이는 9천 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전체 만리장성에서 한 군데만 뚫리면 8,999킬로미터의 만리장성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럼에도 그 거대하고 긴 장성을 건축한 것은 실질적인 방어보다는 ‘안팎으로’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주변 민족을 위협하고, 안으로는 반란을 꿈꾸는 세력을 잠재우기 위해서 말이다.

책의 마무리에서 저자가 바라는 점은 이렇다. 앞으로는 시에서 공원을 만든다면 어디에 들어서는 것이 좋은지 우리들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아파트가 재개발될 때 대형 상가가 들어오는 게 좋은지, 아니면 연도형 가게가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게 좋은지 생각해 보고 주민 회의에서 의견을 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 스스로가 자신이 살 곳을 더 화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도시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 힐링이 필요할 때 추천!
2022년 9월 19일
0
꽃순이언니님의 프로필 이미지

꽃순이언니

@kkotsoonyieon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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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 에너지가 방전됐을 때 추천!
2021년 3월 22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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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다류

@saradaryu

그냥 물리적 공간으로만 바라보던 건축물을 이제는 관점을 갖고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 클래식을 공부한 사람이 좀 더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듯이 말이다. 이제 건축물을 바라보면서 건축을 맛보고 느껴봐야겠다.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1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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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건축과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했던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신작.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방향성에 맞추어 스스로 살 곳을 변화시켜 갈 수 있도록 건축과 공간을 읽는 방법을 소개하고 다양한 삶의 결이 깃든 좋은 터전을 제안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 어떤 평수로 이사할 것이냐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도시와 우리의 모습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저자는 이 책에서 “어디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도시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어디서’는 ‘어떤 공간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자문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냐가 아닌, 어떤 공간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며 서로의 색깔을 나눌 수 있는 곳,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부합하는 도시로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출판사 책 소개

우리는 과연 이 도시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 <알쓸신잡2>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신작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도시와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하고 <알쓸신잡2>에서 쉽고 재밌게 건축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건축가 유현준이 우리가 매일같이 할 법한 고민을 제목으로 한 신작을 펴냈다. “어디서 살 것인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내 집 하나 마련하는 것이 먼 일이 되고 있는 요즘,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고민은 우리를 힘겹게 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서 살 것인가』는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 어떤 평수로 이사할 것이냐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도시와 우리의 모습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저자는 이 책에서 “어디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도시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어디서’는 ‘어떤 공간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자문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냐가 아닌, 어떤 공간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차를 선택할 때 외관 디자인이나 브랜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그 자동차를 누구와 함께 타고 어디에 가느냐이듯이 우리가 사는 곳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며 서로의 색깔을 나눌 수 있는 곳,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부합하는 도시로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변화는 당연히 어렵고 시간도 걸리는 일이지만 우리가 살 곳을 스스로 만들어 가자고 말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
우리의 ‘생활’과 ‘건축’과 ‘도시’를 종횡무진하는 독특한 시각과 통찰


이 책에서 보여 주는 건축가 유현준의 통찰은 자유로운 공간을 닮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이 “그의 이야기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고, 첨단 과학과 전통이 맞물려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는 다채로운 시공간을 넘나들며 우리 모습을 예리하게 들여다본다. 우리는 저자가 이끄는 대로 고대 종교 건축물의 효시인 괴베클리 테페의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새 현대 한국의 도시로 이동하고 다시 SNS 같은 사이버 공간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눈 깜짝할 새 또 우리 집 앞 골목길로 돌아와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다. 여러 명의 MC가 쉴 새 없이 말을 주고받는 <라디오 스타>처럼 중심도 없고 경계도 모호한 특성을 보여 주는 현대 건축들,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듯이 동료들끼리 활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사옥의 형태인 ‘밥상머리 사옥’, 대형 쇼핑몰에는 항상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 이유, 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것과 사적 공간에 대한 갈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대형화와 고층화가 대세인 도시에서 사람 중심의 공간인 골목길을 지킨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그리고 숨 가쁜 도심에서 벗어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대교 아래 공간 이야기까지.
건축물을 둘러보듯이 책의 구석구석을 유영하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올 것이다. “과연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어떤 곳일까?” 이 책을 통해 그 기준이 바뀔 수도 있고 혹은 더 단단해질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건축은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건축이 만드는 사회, 사회가 만드는 건축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 이 책은 단연 건축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문을 여는 주제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 12년 동안 생활하는 학교 이야기다(1장). 몇 십 년 동안 한결같이 상자 모양의 4~5층짜리 건물과 대형 운동장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학교의 건축은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의 아이들이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획일적이고 거대하다. 한국에서 이런 구조로 된 대표적인 건축물은 교도소와 학교 둘뿐이다. 둘 다 운동장 하나에 4~5층짜리 건물과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 크기를 빼고는 공간 구성상의 차이를 찾기 힘들다.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올 수 없듯이 교도소 같은 건물에서 획일적인 교육 아래 12년 동안 커 온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대형 학교 건물 안의 똑같은 교실, 숫자만 다른 3학년 4반에서 커 온 아이들은 대형 아파트의 304호에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통계를 보면 지난 40년간 학생 1인당 사용하는 실내 면적은 7배 늘었는데, 학생들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각종 특별활동실, 체육관, 식당, 강당, 도서관 같은 내부 시설은 늘어났지만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이들의 다양한 취향과 결이 사라지지 않고 창의성이 빛날 수 있도록 학교 건물은 더 작은 규모로 나누어져야 하며, 그 앞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놀 수 있는 갖가지 모양의 작은 마당과 외부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건이 안 되면 테라스라도 만들고, 다양한 형태와 높이의 천장과 다양한 모양의 교실도 필요하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학교 이야기에서 더 절실하게 와 닿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크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건축물 괴베클리 테페부터 미래 도시의 지하 농장과 도로 발전소까지,
익선동의 골목길부터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까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직조해 나가는 도시의 얼굴


파라오와 진시황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우리가 역사를 가정할 수는 없지만 건축과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릴 수 있다. 파라오와 진시황제는 권력의 과시와 생존을 위해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라는 거대한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들이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거대한 무게를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공식으로 환산해 보면 둘의 힘의 차이가 드러난다(6장).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건축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일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왜 SNS를 많이 할까? 1인 가구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점점 좁아지는 주거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SNS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여유 공간은 없어지고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을 지을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시선의 집중을 받는 사람이 권력을 갖듯이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자원 삼아 권력을 조금씩 수집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이 그리스 민주 사회에 끼친 영향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관객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어 있는 이 같은 원형극장이 있었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 배우가 되면 시선 집중을 받을 수 있는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 말은 국민 누구나 권력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권력자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시선의 집중을 받았다면 관객이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어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그 위치가 바뀐다. 왕이나 제사장이 아니라 일반 국민도 언제든지 시선 집중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평등한 권력의 공간 구조를 제공하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그리스 민주주의 사회를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공간 구조를 참조해 21세기형 원형극장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7장).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그 건축 공간들로 인해 우리 삶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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