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왜 이 책을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늘 옳은 선택을 해.. 분량이 꽤 길지만 집중해서 즐겁게 읽었다.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 즉 여성관이 낡았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어쩐지 여성 작가가 썼다고 하면 다 시대적 고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책의 절반 이상을 읽고 나서 바쁜 일이 많아 한참 뒤에 나머지를 읽었다. 그럼에도 내 머릿속 곳곳에 책 앞부분의 기억이 남아있어 어렵지 않게 이어서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대부분은 편지, 혹은 일기로 이루어져있다. 큰 줄기는 니나 부슈만의 인생이지만 그는 자기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타인이 그의 행동을 보고 해석하는 정도라서 마치 내가 니나의 주변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니나의 언니가 되어 함께 일기를 보는 것 같다. 니나는 너무나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 누구보다 고생하고 고뇌한 사람이기도 하다. 자유, 살아있는 생, 그런 추상적 가치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 어떤 설명을 붙여도 와닿지가 않아서, 그저 책을 읽으며 노트에 필사한 몇 문장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번역이다. 원서를 본 게 아니라서 뭐라 확언할 순 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문장의 도치가 심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통역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언어로 다시 쓰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번역기는 절대 책을 번역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부분에서 한국어에는 없는 문법을 단순 통역한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이건 뭐 내가 전문가도 뭣도 아니기 때문에..
p. 72 끔찍한 일이야. 여기에는 법칙이 있고 저기에는 생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인 거 같은 것은. 우리가 생을 극복하면 더 높은 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일까?
p. 80 사람은 몸을 굽히고 자기 자신 속을 들여다보면 몇 백 개의 나를 볼 수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도 참 자기가 아니야. 아마 그 몇 백 개를 다 합치면 정말 자기일지도 모르지.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적어도 믿고있어. 그렇지만 우리는 이 수많은 자기 중에서 다만 하나만, 미리 정해진 특징의 하나만을 택할 수 있을 뿐이야. 그래, 라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선택을 잘못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지. 어떤 때, 아주 혼자 있을 때, 고독할 때 우리는 자신의 다른 모습이 어둠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는 슬픔에 가득 찬 마음으로 손짓을 하고 말하는거야. 너무 늦었다고.
p. 330 내가 의식을 잃기 시작한 순간처럼 생을 미친듯이 강렬하게 느낀 일은 없어요. 그처럼 집중돼 있고 끔찍하고도 아름답게 느낀 일은.
p. 361 그러면 나보고 사는 것을 그만두라는 말이세요? 내가 여태까지 살아보았던가요? 나는 살고 싶어요. 생의 전부를 사랑해요. 그렇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당신은 이해 못하실 거예요. 당신은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생을 피해 갔어요. 당신은 한번도 위험을 무릎쓴 일이 없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잃기만 했어요. 니나는 극도로 흥분해 있었다. 당신이 그럼 행복하시나요? 당신은 행복하지 않아요.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세요. 그러나 나는 알아요. 그리고 나는 당신이 내 생을 당신 것과 꼭 같은 것으로,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딱딱하고 힘든 숙제 같은 걸로 만드는 것을 용서하지 않겠어요. 나를 얼마든지 경박하다고 생각하세요. 생에 대한 당신의 공포가 어쩌면 생을 사랑하는 나의 태도보다도 경박할지 몰라요.
니나가 쓴 소설에 대해
언니와 나누는 대화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소설에는 처음에는 이것이 일어나고
다음에는 저것, 그러고는 그것.
그렇게 해서 맨 끝에는 행복하건 불행하건
관계없이 하여간 둥근 결말이 있어야 해.
인생에서는 어떤 계산도 들어맞는법이 없고
아무런 결말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 중 략 -
생은 계속해서 흘러가는거야.
모든 것은 그렇게도 혼란하고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고 모든게 즉흥적으로 생성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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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가 이 책을 잘 설명해주는것 같다.
사는 모습은 각자가 다 다르지만
그냥 흘러가는대로 변화무쌍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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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아빠가 중학교때 사준
세계문학전집에 있어서 이책 읽었던것 같은데
내가 그때 이 책을 제대로 이해 했으려나.
처음보는 것 같은 생소함이 소름이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