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쟁 세트

김성한 지음 | 산천재 펴냄

7년전쟁 세트 (김성한 역사소설,전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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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2.7.9

페이지

2,790쪽

상세 정보

<이성계>의 작가 김성한의 역사 장편소설. 임진왜란을 다룬 수많은 소설 가운데 국제전 즉, 조선과 일본, 명이 뒤엉켜 치렀던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룬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전쟁 발발부터 명의 참전과 휴전, 화평협상, 재침과 종전에 이르는 7년의 기나긴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전쟁 당사국인 세 나라의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감한다.

1984년 연초부터 매주 토요일 「동아일보」의 한 면을 가득 채우며 연재된 작품이다. 작가는 <7년전쟁>의 연재를 마치면서 "흔히 시는 음악, 소설은 그림에 비유되거니와 이미 완결된 시대상을 그리는 역사소설은 그림 중에서도 풍경화에 속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풍경화는 무엇보다도 그 대상에 충실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가능한 한 관계 3국의 사료들을 광범하게 조사하여 시대적인 배경, 전쟁과 평화의 표면과 이면을 충실히 재현하려고 노력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사실(史實)'을 밝혀내려는 작가의 노력이 임진왜란을 둘러싼 동아시아 삼국 간의 복잡한 얽힘을 드러냈고, 전쟁은 인간이 타고난 온갖 아름다움과 추함을 한꺼번에 드러내주는 거대한 소용돌이임을 생동감있게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허구의 이야기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간세상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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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아픈 우리의 역사
+ 고) 김성한 선생의 탁월한 필력 + 자료 조사

7년전쟁 세트

김성한 지음
산천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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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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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작가 김성한의 역사 장편소설. 임진왜란을 다룬 수많은 소설 가운데 국제전 즉, 조선과 일본, 명이 뒤엉켜 치렀던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룬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전쟁 발발부터 명의 참전과 휴전, 화평협상, 재침과 종전에 이르는 7년의 기나긴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전쟁 당사국인 세 나라의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감한다.

1984년 연초부터 매주 토요일 「동아일보」의 한 면을 가득 채우며 연재된 작품이다. 작가는 <7년전쟁>의 연재를 마치면서 "흔히 시는 음악, 소설은 그림에 비유되거니와 이미 완결된 시대상을 그리는 역사소설은 그림 중에서도 풍경화에 속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풍경화는 무엇보다도 그 대상에 충실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가능한 한 관계 3국의 사료들을 광범하게 조사하여 시대적인 배경, 전쟁과 평화의 표면과 이면을 충실히 재현하려고 노력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사실(史實)'을 밝혀내려는 작가의 노력이 임진왜란을 둘러싼 동아시아 삼국 간의 복잡한 얽힘을 드러냈고, 전쟁은 인간이 타고난 온갖 아름다움과 추함을 한꺼번에 드러내주는 거대한 소용돌이임을 생동감있게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허구의 이야기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간세상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출판사 책 소개

철저한 고증, 입체적 인간상, 간결한 문체
독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김성한 역사소설의 백미
“<7년전쟁>은 단순한 소설 아닌 장대한 스케일의 전쟁사이자 사회사”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그린 최초의 역사소설

김성한의《7년전쟁》은 특별하다. 임진왜란을 다룬 수많은 소설 가운데 국제전 즉, 조선과 일본, 명이 뒤엉켜 치렀던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룬 최초의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전쟁 발발부터 명의 참전과 휴전, 화평협상, 재침과 종전에 이르는 7년의 기나긴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전쟁 당사국인 세 나라의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감한 소설은《7년전쟁》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같은 특별함 때문에 김성한의《7년전쟁》은 그 가치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작품이 발표되었던 1980년대는 ‘임진년에 왜놈이 일으킨 난리’에 국제전의 성격을 부여하고, 일본과 명나라 내부 사정에까지 차분한 시선을 주는 접근법이 일반에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 일렀다. 1984년 연초부터 매주 토요일 <동아일보>의 한 면을 가득 채우며 연재되던 이 작품은 1년 만에《7년전쟁》에서《임진왜란》으로 제목을 바꾸는 곡절을 겪었다.

<7년전쟁>에서 <임진왜란>, 그리고 다시 <7년전쟁>으로
작품이 처음 연재되던 때로부터 거의 30년이 흐른 2012년 임진년. 임진왜란 발발 7주갑(420년)을 맞는 올해 처음 선보인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임진왜란의 명칭을 ‘임진전쟁’으로 표기했다(국사교과서는 ‘임진왜란’ 표기). 이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임진란의 국제전적 성격을 조명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에서 동아시아 삼국이 부딪쳤던 대규모 전쟁, 이후 삼국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국제전의 참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데 학계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료가 새롭게 발굴되고 나라의 위상이 달라지면 지나간 역사를 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임진왜란’이 ‘임진전쟁’으로 바뀌는 세월 동안 역사학계에서는 새로운 사료들이 발굴되고, 간추린 왕조실록이 일반 독자들을 위한 교양서로 읽히는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30년 전에 관련 삼국의 자료를 두루 살펴보고 “가능하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을 생각해 보고자 했던” 대가의 작품은 오랫동안 잊혀진 채로 묻혀 있었다.
<7년전쟁>으로 시작하여 도중에 <임진왜란>이 되었던 이 작품에 본래의 이름 <7년전쟁>을 되돌려 주고 복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쟁, 선조, 김성일, 왜적, 이순신, 거북선 등등 몇몇 단어에서 맴도는 게 임진왜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그 좁은 인식을 동아시아의 기존 패권국 명과 신흥강국 일본의 충돌이 빚어낸 거대한 비극, 그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갔던 오래 전 우리의 자화상으로 성큼 넓혀주는 것이 김성한의《7년전쟁》이다. 우리 근세사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었던 임진왜란의 전모와 참모습을 알려줄 작품을 이 외에 달리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60년 만에 돌아오는 임진년인 올해 이 대작을 새롭게 손보아서 다시 내놓는 것이다.

역사소설은 사료(史料)라는 큰 가지에 잎사귀와 꽃을 붙여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
김성한의 역사소설은 시대와 조금씩 어긋나곤 했다.《7년전쟁》에 앞서 나왔던《고려태조 왕건》 또한 역사소설이 민중주의 일색으로 흐르던 80년대에 궁예와 왕건, 견훤 등 왕조를 창업한 지도자들의 이야기로 제 가치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채 홀로 묵묵히 책을 읽고 홀로 묵묵히 글을 썼던 김성한의 문학적 태도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소설은 사실(史實)을 밝히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고증에 철저했던 김성한식 역사소설 쓰기에서 기인하는 바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고 하겠다.
작가는《7년전쟁》의 연재를 마치면서 “흔히 시(時)는 음악, 소설은 그림에 비유되거니와 이미 완결된 시대상(時代相)을 그리는 역사소설은 그림 중에서도 풍경화에 속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풍경화는 무엇보다도 그 대상에 충실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가능한 한 관계 3국의 사료(史料)들을 광범하게 조사하여 시대적인 배경, 전쟁과 평화의 표면과 이면을 충실히 재현하려고 노력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사실(史實)’을 밝혀내려는 작가의 노력이 임진왜란을 둘러싼 동아시아 삼국 간의 복잡한 얽힘을 드러냈고, 전쟁은 인간이 타고난 온갖 아름다움과 추함을 한꺼번에 드러내주는 거대한 소용돌이임을 생동감있게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허구의 이야기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간세상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김성한의 역사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역사소설은 사료(史料)라는 큰 가지에 잎사귀와 꽃을 붙여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이라고 스스로 규정했듯 작가는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입체적 인간상, 간결한 문체, 김성한의 복원
현실의 인간은 단선적이지 않다. 악으로 점철된 인간도, 선으로만 감싸인 인간도 없다. 세상사 또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명쾌하게 재단되지 않는다. 김성한의 역사소설은 온갖 아이러니로 뒤덮인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의 인간들을 입체적으로 그려 낸다. 가령 김성일만 해도 꼬장꼬장한 성질 탓에 판단을 그르치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자의 경험으로 예전의 김성일이 아닌 것으로 그려진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온갖 인간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지금의 현실에 겹쳐놓고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거기에다 김성한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문체는 소설 읽기의 재미를 유감없이 선사한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있는 문체는 5권 2천5백여 쪽에 이르는 분량의 압박을 잊게 만든다.

김성한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소설의 대가로 기억된다. 긴 호흡의 대하 역사소설은 도서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되는 게 요즘의 세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장대한 서사가 사라진 이 시대에 김성한 역사소설이 갖는 강한 흡입력과 고증에 충실한 사실성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7년전쟁》의 복간이 역사소설의 대가 김성한의 작품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리뷰1
한명기(명지대 교수, 사학)


아리랑 3호, 다네가시마, 그리고 임진왜란
2012년 임진년 5월 18일, 인공위성 아리랑 3호가 발사되었다. 언론에서는 “한국의 세 번 째 다목적 실용 위성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다”거나 “685km나 되는 높은 상공에서 지상의 중형 승용차까지도 식별할 수 있는 첨단 위성을 보유하게 되었다”며 아리랑 3호의 발사 성공을 크게 보도했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한 것은 아리랑 3호가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일본제 로켓에 실려 일본의 우주 기지에서 쏘아 올려졌다는 점이다. 인공위성 제작 기술은 괄목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한국은 아직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에 띄울 수 있는 로켓을 만들 능력이 없다. 아리랑 3호는 미쓰비시 중공업이 제작한 H2A 로켓에 실려 규슈(九州) 남쪽의 다네가시마(種子島) 우주센터에서 발사되었다. 아리랑 3호를 발사할 때 일본에서는 “한국의 로켓 기술이 일본보다 수십 년 뒤처진 196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거나 “아리랑 3호 발사 성공을 계기로 일본이 우주산업 수출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등의 보도가 이어졌다.

아리랑 3호가 발사되었던 다네가시마가 어떤 곳인가? 일찍이 1543년 마카오에서 동남아로 향하던 중국 배 한 척이 이 섬에 표착(漂着)했고, 그 배에 타고 있던 포르투갈 사람은 다네가시마의 영주에게 조총 한 자루를 선사한다. 당시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맞아 전쟁으로 날을 지새우던 일본의 다이묘들은 이 새로운 무기의 위력에 열광했고, 조총은 순식간에 각지로 퍼져 나가 일본 열도의 군사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켰다. 조총수를 양성하는 데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죽은 뒤 후계자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전국 통일을 달성한다. 일본을 손에 넣고 기고만장해진 히데요시는 명을 정복하겠다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자신의 길잡이가 되라고 조선을 협박한다. 조선이 요구를 무시하자 이윽고 히데요시의 총구가 조선으로 향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요컨대 다네가시마는 한반도 전역을 참혹한 전화(戰禍)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 데 출발점이 되었던 문제적 장소였다.
아리랑 3호 발사 소식에서 다네가시마와 조총, 그리고 임진왜란을 떠올리면서 올해가 전쟁이 일어난 지 꼭 7주갑(周甲)이 되는 해라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 다네가시마에 조총을 갖고 표착했던 포르투갈 사람은 그것이 정확히 50년 뒤 동아시아 전체를 뒤흔든 대전란의 불씨가 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리스본에서 인도의 캘리컷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던 이후 포르투갈인들은 동남아시아를 거쳐 마카오, 일본으로 몰려들었다. 후추 등 향료를 찾아 나섰던 그들이 나타나면서 조총이 전래되었고, 분열되었던 일본의 통일이 촉진되었는가 하면 끝내는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 빚어졌다. 이른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의 개막이 남긴 여파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나타난 ‘나비효과’였다. 수백만 생령의 목숨을 빼앗고 동아시아를 격변 속으로 몰아넣은 임진왜란은 이렇듯 동서양 문명의 조우에서 비롯되었다. 그로부터 469년, ‘문제적 장소’ 다네가시마에서 아리랑 3호가 H2A 로켓에 실려 발사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동아시아 전체의 시각을 담은 역사소설 《7년전쟁》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7주갑이 되는 올해 김성한의 대하 역사소설《7년전쟁》(구 제목 ‘임진왜란’)이 복간되었다. 이 소설은 일찍이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동아일보에 절찬리에 연재되었고, 1990년에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하지만 출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문제의 작품이기도 하다.
《7년전쟁》은 독특하면서도 장대한 스케일을 지닌 소설이다. 작가 김성한은 7년 동안 한반도를 할퀴었던 임진왜란을 한국, 한국인의 입장에서만 그리지 않는다. 소설 속에는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 한국인 뿐 아니라 가해자인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또 다른 당사자인 중국과 중국인의 생각과 활동상이 포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일찍이 김성한은 연재를 시작하기 직전, ‘작가의 말’을 통해 집필에 임하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 사건을 한국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동양 전체의 입장에서 조감(鳥瞰)하고 인간의 운명,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원래 이 전쟁은 무대가 한국 일본 중국으로 광범할 뿐 아니라 화전(和戰)의 내막도 복잡다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 가능한 범위에서 3국의 사료들을 상고하여 당시의 참 모습을 그려볼까 한다.”

동아시아의 국제전이자 세계대전이었던 전쟁의 참모습을 제대로 그려 내고자 했던 작가의 구상은 애초 소설의 제목을 ‘7년전쟁(七年戰爭)’이라 했던 것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7년전쟁’은 이 전쟁을 바라보는 한·중·일 삼국의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을 뛰어넘는 중립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제목이다. 우리가 쓰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란 명칭은 ‘임진년에 왜인들이 일으킨 난동’이란 뜻이다. 이 용어 속에는 무고하게 쳐들어와 조선을 유린했던 일본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일본에서는 이 전쟁을 ‘문록경장의 역(文祿慶長の役)’이라 부른다. ‘문록경장 연간(1592~1614)의 전쟁’ 정도의 의미를 지녀 일견 중립적으로 보이는 이 용어 속에는 ‘침략’의 본질을 은폐하려는 꼼수가 녹아들어 있다. 중국이 이 전쟁을 부르는 명칭은 ‘항왜원조(抗倭援朝)’이다. ‘일본에 맞서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에 대해 시혜자(施惠者)로 자처하면서 대국주의적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한·중·일은 이 전쟁을 여전히 제각각의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김성한은 거의 30년 전에 이미 ‘7년전쟁’이란 제목을 붙임으로써 일국사(一國史)의 시각을 넘어서려는 자세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연재가 시작된 이후 제목을 바꿔야 한다는 항의가 빗발치면서 ‘임진왜란’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사회 전반에 반일 정서가 광범하게 퍼져 있던 당시 분위기에서 ‘7년전쟁’이란 제목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국가의 시각과 감정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의 전쟁’으로서 임진왜란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김성한의 역사관과 집필 방향은 당시로서 선구적인 것이었고, 이번 복간에서 최초의 제목을 되살린 것은 그래서 적절해 보인다.

광범한 자료 섭렵과 치밀한 고증으로 확보한 국제성
한·중·일 삼국의 시각을 아울러 종합적이고 국제적인 전쟁사를 서술하려 했던 김성한의 의도는 그가 섭렵했던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뒷받침되었다.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연재를 시작하기 10년 전부터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선조실록》,《명 신종실록(明神宗實錄)》, 일본 장수와 종군승(從軍僧)들의 기록을 비롯한 기본 사료들 뿐 아니라 개인 문집과 일기류, 그리고 연구 논문들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자료들을 활용했다. 직접 읽어 본 독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소설에 나타난 이야기의 서술은 물 흐르듯 유려하면서도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다. 주로 《선조실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서술한 조선, 조선인들의 이야기 뿐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들과 관련된 서술 또한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한 예로 1592년 명 조정에서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를 조선에 보내 일본군과 싸우게 하려 했던 문제를 놓고 벌인 논란을 서술한 장면을 보자.

결국 누르하치의 여진군을 이여송군의 선봉으로 편입하기로 하였다. (……) 누르하치의 제의로 들떠 있던 명나라 조정에 제일 먼저 찬물을 끼얹은 것은 조선이었다. “중국이 그렇게 허약한 줄은 몰랐다 기껏 한다는 짓이 누르하치의 힘을 빌어 왜적을 물리친다는 것이냐.” (……) 명나라 조정은 저마다 삿대질이었다. “조선놈들, 죽어가는 판에 더운 밥, 찬밥 가리게 됐느냐?” (……) 며칠을 두고 빈정대는데 요양의 송응창으로부터 사람이 달려왔다. “누르하치도 오랑캐올시다. 그를 키워 주었다가 제2의 보바이가 되면 어떻게 하지요.” (……)“조선 놈들, 경략을 아주 구워삶아 놓았구나.” (……) 석성은 하는 수 없이 조정의 공론에 부쳤다. ” (4권, 153~155쪽)

《선조실록》, 《징비록》, 《신종실록》 등 연대기 자료를 두루 섭렵하고 명과 조선의 정치사, 여진족 상황 등을 살펴 전후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결코 서술할 수 없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는 이런 서술들이 무수히 나온다.
김성한은 일찍이 역사소설을 그림으로, 그림 가운데서도 풍경화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러면서 “풍경화는 무엇보다 그 대상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역사가 나무의 줄기와 큰 가지라면 역사소설은 잎사귀이자 생명을 불어넣는 바람”이고, “역사소설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함께 돌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이 같은 지론이 광범한 자료 섭렵과 치밀한 고증을 통해 인간들의 이야기로 생생하게 형상화되었다.

소설 《7년전쟁》에 담긴 역사성
《7년전쟁》에는 실록 못지않은 사실성과 사관(史官)의 포폄(褒貶)을 방불케 하는 작가의 준열한 비판과 평가가 깔려 있다. 그는 《7년전쟁》에서 침략을 자행한 일본의 책임을 준열하게 물으면서도, 국제 정세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문약(文弱) 풍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연재를 마친 직후인 1989년 12월의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무능한 통치자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자”라고 일갈하면서 선조를 비롯한 위정자들의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
작가는 또한 위기를 맞아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일어나 싸운 의병장들,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했던 무장(武將)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했던 민초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필자는 작가가 의병장 곽재우를 가리켜 “뜻대로 싸우고, 뜻대로 살다간, 우리 역사에 드문 쾌남아”라고 평가했던 대목에 공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을 갖고 있다.
《7년전쟁》은 분명 소설이되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거기에는 류성룡의 《징비록》처럼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 가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 필자가 읽어 낸 메시지의 핵심은 인간을 존중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휴머니즘이다.
420년 전 한반도는 기존 패권국 명과 신흥 강국 일본이 충돌하던 대결의 장이었다. 지금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G2 운운하는 와중에 여전히 대륙 블록과 해양 블록 사이의 충돌의 장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스스로 위성을 띄워 올릴 수 있는’ 물리적 실력을 갖추는 것도 시급하고 과거 역사를 성찰하여 평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력(知力)과 지혜를 다지는 것도 절실하다. 이 같은 역사적 과제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김성한의 《7년전쟁》은 소중한 거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리뷰2
장경현(서울대 강의교수, 국문학 전공, 추리소설 평론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장르소설이라고 하면 역사소설을 들 수 있다. 그것도 ‘대하 역사소설’이어야 한다. 그리고 인기 역사소설의 대다수가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어 ‘영웅’의 남다른 사상과 의지를 통해 초라한 현실의 자신의 모습을 잊을 수 있다. 이것은 결국 현대의 신화이고 서사시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물에 대한 찬사와 비난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다. 어쩌면 역사소설은 집단적 이데올로기를 투영하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김성한의 <7년 전쟁>은 대하 역사소설이지만 이런 점에서는 살짝 비켜나 있다. 여기서는 영웅적인 한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다. 선조 임금에서부터 시골구석에서 농사짓던 필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로서 조명되어 있다. 게다가 일방적인 찬사나 비난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누가 ‘죽일 놈’이냐 하는 것은 사실로 확인된 것 이외에는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거기다, 이 작품은 신화적 성격이 없다. 작가는 때로는 망원경으로, 때로는 현미경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일본, 명나라의 구석구석을 역동적으로 관찰한다. 즉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어떤 식으로 동인(動因)이 되어 도도한 역사의 물결이 되어 가는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기이할 정도의 냉소가 숨어 있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80년대 중반 <동아일보>에서였다. 당시 <임진왜란>은 동아일보의 한 면을 다 차지하면서 송영방 화백의 감칠맛 나는 채색 삽화와 함께 연재되었다. 나는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막연하게만 알던 임진왜란의 새로운 면모와 사실을 접하는 재미에 정신없이 읽었다.
특히 일본의 두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갈등, 유키나가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천주교 신자들의 심리적 갈등은 처음 안 사실이었고, 그동안 적을 과소평가한 무능한 장수로 여겨지던 신립에 대해 재평가하게 되었으며, 명나라의 모사꾼 심유경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최근 이 책을 다시 읽기 전까지도 심유경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난 것으로 보면 참 신선한 인물 제시였던 것 같다.
거의 3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난 뒤 이번에 다시 출간된 작품을 읽으면서 잊고 있던 그 당시의 경이와 즐거움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7년 전쟁>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은 한순간에 일어나고 끝난 전쟁이 아니다. 2권에 접어들어서야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난다. 그 전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에 일본 내의 많은 세력들이 전쟁을 막고자 노심초사했던 사연과 그 진의를 알지 못해 헛다리만 짚던 조선 내부의 사정이 매우 자세하게 그려진다. 특히 왜구의 본거지였던 쓰시마 섬의 지배자들이 히데요시와 조선의 사이에 끼어서 생존을 도모하고자 이런저런 술수를 쓰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모습은 초반에 일종의 도치서술을 이용하여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복잡한 여러 사정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의 압박에 의해 일어나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무능한 군주 선조와 동인, 서인의 당파 싸움도 읽고 있노라면 막연한 분노보다는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그 흐름이 느껴지며 좀 더 차분한 시각에서 보게 된다. 역사라는 것이 사소한 우연과 착각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마저 든다. 작가는 그동안 어리석게만 생각되던 당시 상황에 대해, 모든 일은 그 원인과 동기가 있으며 매우 복잡한 요소에 의해 이리저리 변화하며 움직인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 건너가 사정을 살펴보고 돌아와 전쟁은 없다고 단언한 김성일과 유성룡에 대해 많은 이들이 비난하지만, 이 소설을 보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철저한 원칙론자인 김성일은 자기 나름의 꼬장꼬장한 신념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했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일선에서 활약한다. 유성룡은 온건한 현실주의자로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때로는 유능한 대처를 하며 어느 한쪽으로 규정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경력 때문인지 김성한은 잠깐 스쳐 가는 일본 부역자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하층민으로 천대받다가 일본군으로 넘어가 변화한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고 죽을 때까지 후회하지 않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섣부른 평가가 끼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흔히 위인전에서 성스럽게 묘사되는 이순신, 송상현, 곽재우, 서산대사, 사명대사, 조헌, 권율에 대해서도 전장의 군인으로서 사실적이고 충실한 서술을 할 뿐이다.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원균조차도 여기서는 담담하게 기술된다. 그러면서도 의기로운 열사로 그려지던 조헌을 괴팍한 예언가로 묘사하는 등 새로운 인물상을 보여 주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렇게 온갖 인물들을 공정하게 그리면서 한중일 3국의 정세를 꼼꼼하게 기술하여 이 전쟁이 단순히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 아니라 이미 잠재되어 있던 불안 요소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하나의 동인(動因)에 의해 얽히고설키며 터져 나온 산물임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김성한 작가 특유의 냉소와 풍자가 깔려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소설이 과열되고 비정상적으로 높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면, 이 작품은 얄미울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로 미화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대목에서 역시나 얄밉게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 기록을 슥 내미는 것이다.
여기에 천자총통, 지자총통, 일본 조총 등의 스펙 비교에서 볼 수 있듯 상세한 설명이 강한 설득력을 더하며 독자를 작가의 옆에 붙들어 앉힌다. 더 가까이 들어가지도, 더 멀리 물러나지도 못하게. 전쟁은 무협지도 판타지도 아님을 절감하게 만들면서.
그렇지만 여러 전투에서 사용된 전술과 전법에 대한 사실적이면서 자세한 묘사는 밀리터리 마니아에게도 흥미로운 것이 되지 않을까. 처음 들어온 명나라 기병이 좁은 골목길에서 어떻게 패배했는지, 의병들의 게릴라 전법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당시의 공성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등을 시뮬레이션하듯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런 시선으로 보니 위인이든 악인이든 결국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이들도 이 세계를 구성하는 작은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후세 사람들이 제멋대로 끌어내어 미화시키는 것일 뿐.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선조도 자기 집 안방에서는 아내와 함께 시시한 걱정을 하는 평범한 사내일지도 모른다. 결국 작가가 보는 임진왜란은 거대한 아이러니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러니 때문에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끔찍한 고통이 찾아온다. 어떤 식으로든 전쟁이란 우스꽝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사건 때문에 전쟁은 시작되고 끝난다.
이 때문일까, 김성한의 이력에서도 이 작품이 주목을 받는 일은 적은 듯하다. 인물의 미화나 신격화가 없고 독자의 피를 끓게 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간결하고 빠른 문체, 점잔을 빼지 않는 사실적인 대화, 결코 늘어지지 않는 속도감, 확실한 인과관계, 거시구조와 미시구조를 넘나들며 만들어 내는 거대한 점묘화와도 같은 접근. 여타 역사소설과 차별되는 이러한 매력이 오히려 타성에 빠진 지금의 역사소설 장르에 신선한 충격을 줄 만하다.
이런 점에서 <7년전쟁>은 가장 ‘모더니티’를 잘 구현한 역사소설의 전례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이것 자체가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이성을 잃고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임진왜란에 대한 냉정하고 자세한 보고서가 그러하다는 사실이. 게다가 자기 잇속만 생각하는 꿍꿍이를 감춘 채 명분과 원칙론을 내세워 타인을 몰아세우고 정황을 수습할 수 없을 지경까지 몰고 가는 소설 속 지배층의 모습은 오늘날의 지배층이 보여주는 모습과 중첩되어 기시감을 안겨주지 않는가.

리뷰3
김시덕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그들이 본 임진왜란> 저자)


임진왜란, 7년간의 국제전
김성한 작가의 <<7년 전쟁>>. <<임진왜란>>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되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던 이 소설이 이번에 복간되었다. 7년 전쟁 이라는 제목은 작가가 원래 붙이고 싶어했던 것이라 듣고 있다. 왜놈들이 임진년에 일으킨 난이라는 뜻을 지니는 임진왜란이라는 통칭 대신 7년 전쟁이라는 호칭을 작가가 굳이 붙이려 한 것은, 작가가 이 장기간의 국제전에 대해 기존에 통용되던 것과는 다른 관점을 독자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이 전쟁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것을 독자들에게 촉구하려 했음이 아니었을까.
본 논평자는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의 옛 문헌들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김성한 작가의 <<7년 전쟁>>을 읽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작가가 일본을 포함한 당시 세계 각지의 동향을 널리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제적?보편적 관점으로 임진왜란을 새로이 바라보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이겼느니 일본이 이겼느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조선, 일본 모두 당시의 정식 국호).
작가는 조선과 일본을 포함한 당시 세계 각국의 상황을 깊숙히 들여다봄으로써 이러한 장기간의 국제전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찾는다. 작가는 특히 조선측의 당시 상황과 대응이 어떠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 작가는 임진왜란에 대해 현대 한국 사회의 일각에서 보이는 정신승리적 역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을 왜놈들이 임진년에 일으킨 난을 조선측이 진압한 전쟁으로 치부해버리면, 역사적 자존심은 살릴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전쟁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상은 본 논평자가 이 소설을 읽고 일개 독자로서 느낀 점을 개략적으로 적은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역사를 다루는 방식을 가타부타 하기에는 본 논평자의 역량이 부족하다. 이 소설의 사실성에 대해 논평자가 어느 정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일본측 상황을 묘사한 장면들에 대해서이다.

선 굵은 대하소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충실한 고증을 통해 16세기 일본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집필 당시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제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임진왜란을 조망한 신뢰할 만한 한국어 연구서는 많지 않다. 이렇듯 한국측의 임진왜란 연구 상황을 고려할 때, 작가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상황을 그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자료를 수집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임진왜란 당시부터 작성된 일본측의 1차 사료들을 직접 이용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들 사료들을 활자화한 것과 그 연구서, 그리고 이 시기의 일본사를 그린 일본측의 장편소설을 두루 섭렵한 것 같다.
근현대 일본에서는 16~17세기의 역사적 전환기를 다룬 대하소설이 여러 편 집필되었다. 16세기를 전후한 1백여 년간 전개된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야마오카 소하치(山岡?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川家康)>>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 시바 료타로(司馬遼太?)의 여러 소설, 원과 고려의 일본 공격을 다룬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풍도(風濤)>> 등이 떠오른다. 이들 소설은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 소설이 인기를 끈 데에는 거대한 스케일과 선 굵은 역사관, 그리고 작가의 필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고 하겠다. 본 논평자의 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김성한 작가의 <<7년 전쟁>>은 16-17세기의 동아시아 역사를 다룬 선 굵은 대하소설과 닿아 있는 것 같다.

임진왜란에 대한 전형적, 단선적 인식을 벗어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들에 대한 작가의 입장 역시 설득력이 있다. 침략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일본인은 다 악인이라고 해 버리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이러한 선악 구도는 역사의 진실을 담지 못한다. 하물며 소설로서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옛 일본에서도 그러했다. 임진왜란 당시부터 전후 수 십 년 사이에 집필된 일본의 옛 문헌을 살펴 보면, 일본은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 전쟁에 참가한 일본인은 모두 멋있게 그려진다. 이에 반해, 이 전쟁에서 일본인 무사들과 싸웠던 조선?명나라 사람들은 모두 무능하고 졸렬하게 그려졌다.
그러다가 17세기 중후기에 명나라의 <<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과 조선의 <<징비록(懲毖錄)>> 등과 같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적국이었던 나라에서 집필된 문헌이 일본에 수입된다. 임진왜란 당시 적국이었던 이들 나라에서 집필된 문헌을 접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던 임진왜란에 대한 인식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일본에서 집필된 문헌에서는 졸렬하고 무능하게 그려져 있는 조선?명나라의 조정과 인물들이, 이들 문헌에는 정반대로 담대하고 유능하게 그려져 있는게 아닌가. 이렇듯 하나의 대상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제공하는 여러 나라의 문헌을 접하게 된 일본인들은, 이때부터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나라의 상황을 다층적?다면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특히, 임진왜란을 겪은 당사자였던 류성룡이 이 장기간의 국제전을 담담하게 서술한 <<징비록>>, 그리고 그 안에서 류성룡이 세심하게 그려낸 이순신의 모습은 일본인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긴 듯 하다. <<징비록>>은 17세기 중후기에 일본으로 흘러들어 1695년에 교토에서 일본판으로 복각된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705년에 <<조선군기대전(朝鮮軍記大全)>>과 <<조선태평기(朝鮮太平記)>>라는 두 편의 장편소설이 일본에서 출판되는데, 이 대하소설 안에서 이순신은 영웅이라 불리워진다. 영웅 이순신의 이미지는 이미 17-18세기의 전환기에 일본인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조선시대와 근현대 한국에서는 임진왜란에 대한 전형적(스테레오타이프) 이해가 주를 이루었다. 요컨대 일본인=악인이라는 도식. 이러한 침략전쟁에 참여한 일본인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게 무어 있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소설에서 겐소(玄蘇, 현소)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전쟁에 부정적이었고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 한 것으로 그려지는 것은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이 선봉에서 열심히 싸운 것 역시 사실이다. 이것은 16세기 후반에 일본인으로서 생존해야 했던 이들의 역사적 한계이자 운명이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한 이들의 이러한 복합적 상황을 무시해버리고, 일본인은 모두 침략광이자 나쁜놈이라고 해버리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인간의 내면과 행동은, 그리고 개인과 집단이 관계하는 방식은 선악구도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러한 복합성을 무시하면 소설이 재미가 없어진다. 작가는 이 소설의 첫 두 권에서, 당시 전쟁에 소극적이었고 전쟁 발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 몇몇 일본인들의 모습을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논평자는 작가 김성한의 <<7년 전쟁>>이, 이제까지 한국어로 집필된 임진왜란 관련 소설들이 보이는 민족주의적 단순함을 뛰어넘어 인간 세상의 복잡한 인정의 흐름을 잘 포착했다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한국어권이 낳은, 세계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잘 쓴 대하소설이라 하겠다.

무엇보다도, 흡입력이 높다!
그러나, 어찌 보면 여기까지 논평자가 적은 모든 이야기는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연구서가 아니다. 소설 속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가 하는 것보다는, 소설의 스토리와 묘사가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갖고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 논평자가 순수한 독자로서 이 소설을 읽고 느낀 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특히 1,2권에서 작가가 그려낸, 임진왜란 직전의 긴박한 정세 묘사가 지닌 흡입력은 대단하다. 그 강렬한 필력을 부디 직접 느껴보실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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