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사색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벼리며 강건한 목소리로 단단한 시적 사유를 펼쳐온 이영광 시인의 세번째 시집. 3년 만의 신작시집에서 시인은 더 넓고 깊어진 눈길로 세상의 온갖 아픔과 죽음을 불러내어 그들과 한몸을 이루며 뜨겁고 아름다운 시를 피워낸다.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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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픈 천국 내용 요약
이영광 시인의 시집 『아픈 천국』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마주하는 고통과 그 이면에 숨겨진 역설적인 구원을 다룹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픈 천국'은 모순적인 단어의 결합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갈망하는 완벽하고 평온한 천국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고통스러운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머물러야 할 유일한 장소임을 역설합니다. 시인은 고통을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으로 깊숙이 침잠함으로써, 슬픔과 비극 속에서도 찰나의 아름다움과 삶의 의미를 발견해 냅니
대(大)
대한민국이여, 대가리에 쓴 그 대(大)자는
음경확대수술 후유증 앓는 곪은 귀두 같구나
커질 수만 있다면 문드러져도 좋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반쯤 얼어터진 봄이 다 가도록
사람 죽여 원혼 만들고
전쟁과는 전쟁할 줄 모르는 공포의
대한민국이여, 함께는 사실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절망이겠지
무수히 적을 물리쳐도 예부터
전쟁을 무찌른 용사는 없었는데
대한민국이여, 겨우겨우 키운 좆 움켜쥐고
사창가로 쳐들어가는 취한 수컷 같구나
- ‘대(大)’, 이영광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 ‘높새바람같이는’, 이영광
지금은 그늘이 널 갖고 있다
그러니까 넌 빛이야
빛날 수 없는 빛
견디기는 했지만 스스로를 사랑한 적 없는 독신
너는 예쁘지 아니, 슬프지
탬버린이 울 때까지 탬버린은 그치지 않고
여전히, 검은 꺼진 눈을 뜨고 있는
흑백텔레비전
텔레비전
그늘은 결국 인간관계지
이것에 걸리기 위해 애썼다
너는 널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오래 같이 살까?
넌 함부로 죽었고
나는 눈물이 흐른다
화양연화 화양연화 화냥년아
너는 네가 괴롭다
금방이라도 그쳐버릴 것처럼
탬버린은 영원히 짤랑거린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사라져버릴 것 같은 사람
사라졌는데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사람
- ‘그늘 속의 탬버린’, 이영광
머리 아래엔
가슴이 있고
가슴 밑엔 허리가,
허리 아래가 있다
어지러운 머리는 묻는다
가슴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허리 아래는 무슨 이유가 있는가
들끓는 풍랑이었다가
흐트러진 매무새로 기근처럼 지쳐 잠든
머리 아래는,
흙탕물이 괴어 벗겨지지 않는 장화 같은
몸은
왜 늘 몸부림인가
묻는다, 몸의 물음이라곤
한마디도 들어본 적 없는 허공의
대가리가
- ‘장화 같은 몸’, 이영광
밤이 깊으면,
모든 것을 포기한
불굴의 의지가 일어나
소주병을 딴다
이 자식들은 독에도 녹색을 섞지
죽으면 다들 찾아올 것이다
고요만은 이길 수 없어
말 많은 자들은 싫고
말 없는 자들은 더 싫어
증오는 참기 어렵다
사랑은 참을 수 없다
아무것도 믿지 않으면서
모든 걸 찾아다닌 사람은
지금 여기에,
그러나 잘 참았다
숨죽인 폭풍이랄까
미소짓는 미친 자랄까
진실은 네 마음속에 있다
지울 수가 없다
넌 자꾸 사실만 말하려 한다,
쥐새끼처럼
살기 위해 독을 따라놓고
들여다본다, 불가항력의 위안은
죽음의 그림자인가 아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미쳐가는 사람처럼
막힌 술잔 속으로
들어가는 마술, 문어 같애
사랑하지 않아도 이렇게 젖는다
몰라야 빛나는 순간마다 나는
알았다, 돌아보면
흡반 같은 골목이 걸어와
그래도 나는 조금씩 선해지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질러놓고 설명을 찾아온 것이
인생이라 해도 인생에는
인생이 깨지는 순간도 있는 것,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무섭게 생각해요
독을 다 따라내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도
사라지지 않은 녹색처럼
- ‘밤이 깊으면’, 이영광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햇빛이 기름띠처럼 떠다니는 나의 성지,
젖가슴만한 무덤들 사이에
나는 수혈받는 사람처럼 누워 쉰다
삶은 힘차고 힘겨우며,
헛디뎌 뛰어들고 싶으리만치 어질어질하다
이곳은 고요도 숨죽일 만큼 고요하다
햇빛은 여기저기서 기둥을 만들었다가는 흩어진다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이나 다 되고 만다
나는 죽음의 희끗희끗한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숨 멈추고, 검은 젖을 깊이 빤다
- ‘검은 젖’, 이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