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젠의 로마사 3

테오도르 몸젠 지음 | 푸른역사 펴냄

몸젠의 로마사 3 (이탈리아 통일에서 카르타고 복속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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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1.16

페이지

352쪽

#로마 #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이탈리아 #카르타고

상세 정보

'서양 인문학 전공자들의 필독서', '실증주의에 입각한 탁월한 고대 연구서', '역사적 저작들의 가장 위대한 고전 중 하나'. 테오도르 몸젠의 <로마사>를 수식하는 표현들이다. 로마 건국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사망까지를 그린 역사서 몸젠의 <로마사>는 기존의 로마사 연구서와 달리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어 좀 더 실증적이며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몸젠은 1902년 12월 이 <로마사>로 독일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사 연구서가 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은 <로마사>가 가진 의미, 즉 <로마사>가 역사 연구서를 넘어서는 인문학적 교양의 결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4월, 10년 내 완역본 출간을 목표로 <몸젠의 로마사> 1권을 출간한 후 선보이는 세 번째 결실이다.

로마의 탄생부터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를 다룬 1권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를 다룬 2권 '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에 이어 3권 '이탈리아 통일에서 카르타고 복속까지'에서는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성장한 페니키아 인들과 로마 인들의 전쟁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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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시오니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몸젠의 로마사 3

테오도르 몸젠 지음
푸른역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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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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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인문학 전공자들의 필독서', '실증주의에 입각한 탁월한 고대 연구서', '역사적 저작들의 가장 위대한 고전 중 하나'. 테오도르 몸젠의 <로마사>를 수식하는 표현들이다. 로마 건국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사망까지를 그린 역사서 몸젠의 <로마사>는 기존의 로마사 연구서와 달리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어 좀 더 실증적이며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몸젠은 1902년 12월 이 <로마사>로 독일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사 연구서가 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은 <로마사>가 가진 의미, 즉 <로마사>가 역사 연구서를 넘어서는 인문학적 교양의 결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4월, 10년 내 완역본 출간을 목표로 <몸젠의 로마사> 1권을 출간한 후 선보이는 세 번째 결실이다.

로마의 탄생부터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를 다룬 1권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를 다룬 2권 '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에 이어 3권 '이탈리아 통일에서 카르타고 복속까지'에서는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성장한 페니키아 인들과 로마 인들의 전쟁을 다룬다.

출판사 책 소개

몸젠의 《로마사》, 로마사 연구의 고전이자 인문학적 교양의 결실

몸젠의 《로마사》, 가장 위대한 고전들 중 하나
‘서양 인문학 전공자들의 필독서’, ‘실증주의에 입각한 탁월한 고대 연구서’, ‘역사적 저작들의 가장 위대한 고전 중 하나’.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1817~1903)의 《로마사 Romische Geschichte》를 수식하는 표현들이다.
로마 건국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사망까지를 그린 역사서 몸젠의 《로마사》는 기존의 로마사 연구서와 달리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어 좀 더 실증적이며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몸젠은 1902년 12월 이 《로마사》로 독일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사 연구서가 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은 《로마사》가 가진 의미, 즉 《로마사》가 역사 연구서를 넘어서는 인문학적 교양의 결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이탈리아 통일 후 카르타고 전쟁을 겪는 로마
《몸젠의 로마사 제3권―이탈리아 통일에서 카르타고 복속까지》는 지난 2013년 4월, 10년 내 완역본 출간을 목표로 《몸젠의 로마사 제1권―로마 왕정의 철폐까지》를 출간한 후 선보이는 세 번째 결실이다.
로마의 탄생부터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를 다룬 《몸젠의 로마사 제1권―로마 왕정의 철폐까지》(원서 제1권 제1책), 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를 다룬 《몸젠의 로마사 제2권―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원서 제1권 제2책)에 이어 제3권(원서 제1권 제3책 1장~7장)에서는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성장한 페니키아 인들과 로마 인들의 전쟁을 다룬다.

로마, 카르타고와 충돌하다

로마, 시킬리아를 확보하다―제1차 카르타고 전쟁

소아시아와 쉬리아 고원과 이집트로 둘러싸인 가나안Ganaan(‘들판’이라는 뜻을 가짐. 희랍인은 ‘자주색 땅’ 또는 ‘구릿빛 사람들의 땅’이란 뜻의 ‘페니키아’라고 부름)에 정착한 페니키아 인(이탈리아 인은 ‘포에니 인’으로 부름)은 무역에 더없이 유리한 땅이던 가나안에서 무역을 발전시키고 동서를 연결하기 위해 열정을 쏟아 부었다. ‘신新도시’라는 뜻의 카르타고Carthago는 바로 이 지역에서 발전한 페니키아 도시들 중 다른 식민 도시를 압도한 도시였다.
쉴 새 없이 서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희랍 식민지의 물결에 완전히 밀려나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방어가 필요했던 페니키아 인들은 카르타고의 주도 아래 희랍인의 전진을 막아낸다. 로마 건국 200년까지 이어진 이런 중요한 성과 덕분에 지중해 남서부 지역은 페니키아 인이 장악할 수 있었고, 성공을 이끈 카르타고는 페니키아 민족을 이끌 패권은 물론 리뷔아와 지중해 일부를 장악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
반면 주변 지역을 점차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정치적으로 통합하여 연방체의 통일 이탈리아를 완성한 로마(《몸젠의 로마사》 제2권)는 시킬리아의 로마 연방 편입을 꾀한다. 그러나 시킬리아에는 오랜 시간 시킬리아를 양분했던 카르타고와 쉬라쿠사이가 도사리고 있었다. 로마는 메사나를 에워싼 싸움을 계기로 이 두 세력 중 카르타고와 전쟁에 돌입한다. 제1차 카르타고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났다. 비록 시킬리아에서의 승리를 발판 삼아 나선 아프리카 원정에서 패배의 쓴 맛을 보기는 했지만, 로마는 여러 차례 해전에서 카르타고에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카르타고의 시킬리아 이양과 전쟁배상금 지불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로써 로마는 전 이탈리아를 로마화하게 된다.

불세출의 명장 한니발, 로마 침공에 나서다―제2차 카르타고 전쟁(한니발 전쟁)
로마 건국 513년(기원전 241년)에 있었던 로마와의 강화조약으로 카르타고 인은 평화를 얻었다. 그러나 동지중해에서 서지중해에 이르는 해상 노선 독점이 무너지면서 카르타고 무역 정책 전체가 붕괴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국가의 존립이 로마의 재량에 좌우될 위험이 상존하게 된 것이다. 이는 카르타고가 다시금 전쟁 준비에 들어가도록 재촉했다.
용병의 반란을 진압한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스는 히스파니아(이베리아 반도)로 진출, 카르타고 제국을 건설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모든 공동체를 카르타고의 속주로 만든 것이다. 히스파니아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신속하고 강력하게 세력을 확장한 카르타고는 히스파니아의 군대를 하밀카르의 장남 한니발에게 맡긴다. 한니발은 취임 직후(로마 건국 534년, 기원전 220년 봄) 개전을 결정하고 공격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던 중 로마의 동맹시 사군툼이 카르타고의 속국인 토르볼레타를 침략하자 로마 건국 535년(기원전 219년) 봄 로마와 동맹한 도시를 포위 공격했다. 제2차 카르타고 전쟁의 발발이었다.
불세출의 명장 한니발을 맞설 로마 장군은 없었다. 알프스를 넘어 감행한 이탈리아 침공 작전은 한니발의 천재성과 추진력을 증명한다. 노장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고집스러운 지연 전술이 로마의 유일한 대처 방법이었다. 한니발은 무력시위를 벌이며 이탈리아 반도를 돌아다녔다. 로마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면 로마 연방이 스스로 해체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전 양상을 띠면서 천재 전략가는 고립되었다. 경제적 이득이 보장되기만 하면 투쟁보다 굴종을 택하던 카르타고 인들은 한니발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트레비아 전투, 트라시메누스 호수 전투, 칸나이 전투 등에서의 찬란한 승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니발의 로마 침공은 실패로 끝났다. 로마의 게릴라 전법은 전선을 교착상태로 몰아넣었고, 푸블리우스 스키피오의 히스파니아 원정은 카르타고의 거점 도시 신카르타고를 함락시키고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점령하는 성과를 낳았다. 전황이 점차 불리해지면서 결국 카르타고로 귀환한 한니발은 카르타고 애국 당파의 정전협정 무력화에 반발하며 침공한 스키피오와 자마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자마 전투는 카르타고군의 전멸로 끝나고, 한니발은 몇 사람만 데리고 하드루멘툼으로 도망치는 신세로 전락한다.

카르타고 전쟁 후 로마의 변화
카르타고 전쟁을 겪으면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밖의 영토를 획득한다. 따라서 국가 체제와 군사 제도의 변경이 불가피했다. 집정관을 대신할 대리자가 해외 영토에 행정관으로 파견되었고, 전쟁 중에 임기가 종료되어 자주 교체되는 집정관직의 불합리를 극복할 군사령관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해군도 창설되었다. 원로원은 현명하며 유능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혁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변모하고 쇄신했다. 그들은 전례가 없다는 또는 법체계가 흔들린다는 이유를 들면서, 더는 목적대로 기능하지 않는 제도와 장치를 유지하려는 어리석은 일관성을 고수하지 않았다. 초법적인 임시조치였을지라도 시간을 두고 법체계 내에서 그것을 소화해내는 유능함을 보여주었다.
제4권에서는 카르타고 전쟁의 연장선에서 로마가 마케도니아와 갈등을 빚으며 희랍 세계까지 세력권을 확장하는 과정과, 카르타고 전쟁 및 마케도니아 전쟁 과정에서 생겨난 로마의 국가 체제 변화 양상이 종합적으로 서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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