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이병훈, 이주환, 강은애, 홍석범, 김종진 지음 | 창비 펴냄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특수고용노동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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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13.11.5

페이지

292쪽

#노동자 #르포르타주 #인권 #특수고용노동자

상세 정보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을'중의 '을'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야쿠르트 아줌마부터 대리운전 기사까지
‘을 중의 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눈물!


비정규직과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로 언급되는 ‘을 중의 을’,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르포르타주가 출간되었다. 이병훈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를 비롯한 4명의 연구자와 박진희 노동전문사진가가 대표적 특수고용직인 화물트레일러 기사나 학습지 교사부터 다소 낯선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와 채권추심원까지, 11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밀착해서 인터뷰하고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다양한 특수고용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직접 실려 있어 한국사회 노동의 실태에 대한 값진 기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직접 발로 뛴 연구자들의 땀이 배어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을뿐더러 앞으로의 한국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한 제언과 경고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 참여한 노동자들과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는 왜 노동자가 아닌가요?”

왜 우리 앞에 ‘특수’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되느냐. 
보통 직장인들이나 샐러리맨들하고 다르게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부르잖아요. 
욕 나오려고 하네…… 왜 우리가 특수하죠?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씨)

사장님, 사장님 하지 마세요. 우린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노동자예요. 물건을 픽업하러 가면 콜한 데서 기사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사무실에 앉아서 직원들 지시·감독하는 게 사장이지 무슨 사장이 박스 나르고 그럽니까. 저한테 사장님 소리를 하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해요.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씨)

특수고용노동자는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도급계약을 맺고 월급 대신 실적제 수당을 받는 노동자를 말한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사업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은커녕 4대 보험이나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법의 보호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명확히 종속되어 있고 사용자의 직접적인 지시와 통제에 따라 일해야 한다. 문서상에서는 사업자 대 사업자로 대등하게 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용자가 일방적인 ‘갑’일뿐더러 제도적 보호에서도 제외되어 중간착취,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을 중의 을’이다. 

우리는 학생들 만나는 순서 빼고는 일과를 다 회사에 통제당해요. 무슨 요일에는 나가서 홍보 뛰고 어 떤 요일에는 무슨 서류를 내야 하고…… 사무실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죠. 모든 작업은 다 사무실에서 일정하게 정해준 대로 진행되는 거죠. 그리고 회사에서 수수료 갖고 장난질을 해서 월급이 자꾸 내려가요. 40퍼센트였던 게 38퍼센트, 35퍼센트까지 내려갔어요. (학습지 교사 정난숙씨)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로 알려진 학습지 교사나 지입차주뿐만 아니라 간병인, 수도검침원, 자동차 판매원, 텔레마케터, 학원 강사, A/S 기사, 정수기 코디네이터,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 방송국 구성작가, 애니매이션 작가, 영화 스태프, 프로야구선수 등 특고노동은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특고노동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물류운송체계에 의지해 생활하며, 특고노동자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만화영화를 즐기고, 특고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의 사교육을 맡긴다.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특고노동자의 수를 55만여명(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3.3))에서 1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국민권익위원회는 39개 업종을 기준으로 2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동자 100명 중 14명이 특고노동자인 꼴이다. 


특수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특별한 이야기

부릴 때는 직원처럼 부리면서 불리하면 ‘사장’이랍니다

보험설계사, 요구르트 판매원, 학습지 교사, 이들은 모두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하고 매일 실적 보고를 해야 한다. 영업점에서는 목표매출을 맞추라고 닦달을 한다. 그러면서도 보험을 판촉할 때 주는 프라이팬 같은 사은품이나 심지어는 회사 마크가 찍힌 파일홀더마저 개인이 구입해야 한다. 요구르트 판매원은 시음용 음료를, 학습지 교사는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학용품을 사비로 구입해야 한다. 지입차주들은 차량은 운수업체 명의로 등록되어 있으면서도 차량 유지보수비나 유류비는 몽땅 자신이 부담해야 하지만 콜센터나 중개업체의 말 한마디에도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신세다.

밥 먹을 곳도 잠시 쉴 곳도 없어요

일주일, 하루 24시간 내내 간이침대에서 환자의 곁을 지켜야 하는 간병인은 식사를 할 곳도, 옷을 갈아입을 공간도 없다. 밤거리의 추위를 은행 24시간 코너에서 견디는 대리운전 기사나 대낮의 공원에서 배회하는 퀵서비스 기사도 휴게 공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들은 기본 10시간을 서서 일해야 하고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한다. 방송국 구성작가들은 새벽 서너시까지 일을 하거나 방송국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지만 방송국에는 다리 펼 곳도 모자란다. 기본적인 식사 문제나 휴게공간의 부족은 대부분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다. 

다쳐도 모두 저희 책임이에요

골프장 경기보조원들은 전화번호부도 뚫을 만큼 빠른 골프공이 날아다니는 필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용객을 보조한다. 팀 간 간격을 넉넉하게 유지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가능한 한 이용객을 빨리 회전시키기 위해 경기 속도가 느리면 보조원을 징계한다. 그러다 골프공에 맞아도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화물트레일러·대리운전·퀵서비스 기사 역시 사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하루에 열두시간 이상 차를 몰다가 운전석에서 잠깐 눈을 붙인 사이 과로로 사망하는 트레일러 기사도 있고, 취객의 폭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대리운전 기사도 있다. 환자와 24시간 일하는 간병인은 병이 옮아도 산재 처리는커녕 치료까지 모두 본인 책임이다. 병원에서는 예방주사 한대 놔주지 않는다. 실제로 2011년 한 대학병원에서는 에이즈 환자의 링거에 찔린 간병인에게 병원이 초기 응급조치를 거부한 사례가 있다. 

벌이는 계속 줄어드니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어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부족한 수입을 벌충하고 고용불안을 해소하려고 한다. 주말에도 PDA 단말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투잡, 스리잡을 하며 자신을 혹사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삭감당하거나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항상 시달리기 때문이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특고노동자들의 자기착취를 심화시킨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특고노동자의 노동자성은 계속해서 법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법원에서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화물노동자,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으나 재판부와 사업장에 따라 서로 엇갈린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잦기 때문에 여전히 개개인이 노동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개별적으로 소송을 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17일 서울고법에서 한원골프장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의 해고무효소송에서 근로자성과 노조원 지위도 인정해 해고를 무효로 판결한 것이 가장 최근의 판례이다. 
2007년과 2012년의 법 개정을 통해 특고노동자 6개 직종(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설계사, 퀵서비스 기사, 택배 기사)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2013년 국감에서는 가입율이 9.6%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특고노동자의 수를 아주 보수적으로 추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재보험 가입율은 2%에도 못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의무가입이 아닐뿐더러 노동자와 회사가 보험료를 반씩 부담하게 되어 있어 사업장에서 가입을 막기 때문이다.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특수고용 문제는 한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고용유연화를 앞세워 간접고용·특수고용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6년 이를 ‘위장된 고용관계’(disguised employment relations)라고 칭하며 각국의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ILO의 권고에 따라 독일·프랑스·영국·오스트리아 등의 유럽국가에서는 특고노동자들을 유사근로자로 규정하여 별도의 노동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비교적 수준이 낮은 노사 간의 협상을 통한 단체협약으로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은 법원의 개별적인 판결에 의존하여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금 가장 뜨거운 문제, 특수고용노동!


기업들은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사업 위험을 절감하기 위해 고용유연화라는 명목으로 매년 특수고용 종사자의 규모를 늘리고 있다. 이들은 66%가 여성, 57%는 기혼여성으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대부분이다. 2011년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최고은 작가의 사망으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문화예술인 복지 문제 역시 이들 다수가 특수고용형태로 고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특수고용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2076일에 걸친 오랜 투쟁이나 화물연대 등의 파업을 통해 특수고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는 어느덧 10여년이 넘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나 정책은 미미한 수준의 개선에 그쳤을 뿐이다.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다시금 권고했지만 국회 차원의 개선 방안 논의는 요원해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우리는 왜 노동자가 아니냐’며 울분을 토한다. 필자들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당장 어렵다면 독일 등의 유사노동자 보호법을 본보기로 특별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해결책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동하는 그들에게 ‘특수한’ 신분을 강요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특수’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들에게 어엿한 노동자의 지위와 권리를 찾아주어야 할 때다. 

이 책은 이론적 논의로만 가득한 사회비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 특고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이 책에서 묘사된 현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특히 ‘고용 없는 성장’으로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층과 고학력층의 유입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지금은 100명 중 14명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형태가 일반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우리가 지금 이 책에 주목해야 할 함의다. 특수고용 문제가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이 연구자와 노동자들의 하나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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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처럼 느껴지는 10초!
세상을 인지하기 위해 '짧지만 강렬한 순간'이 필요하다!


✔ 관계와 소통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보고 싶다면
✔ 따뜻하고도 날카롭게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찾는다면



📕 책 속으로


하루 20시간 이상 잠들어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는 '나'와
움직이는 사람이나 사물은 볼 수 없는 '류비'가 만난다.

류비는 10초 이상 가만히 있는 것들만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엎드려자는 '나'와 같은 모습처럼.


류비를 위해 기꺼이 10초를 멈춰주는 친구들
그리고 10초 동안 류비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에 관해 깊은 여운을 남겼다.



📘 이 책을 '맛'본다면? _ '잘 내린 에스프레소 한 잔'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내리기 위해서는 
약 20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원두와 물이 만나
강렬한 맛과 향을 응축해내는 그 순간이
마치 류비의 10초와 같았다.

짧지만 모든 것이 담겨있는 중요한 시간

류비의 10초를 떠올리며
에스프레소 추출 과정이 떠올렸다. ☕️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짧고도 강렬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람을 인지하고 또 사랑에 빠질 시간. 나의 시간을 내어주자... 😍


#위픽 #단편소설 #북스타그램 #맛있는하루 #야미리딩
#2025_121

10초는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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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앞에 ‘특수’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되느냐. 
보통 직장인들이나 샐러리맨들하고 다르게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부르잖아요. 
욕 나오려고 하네…… 왜 우리가 특수하죠?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씨)

사장님, 사장님 하지 마세요. 우린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노동자예요. 물건을 픽업하러 가면 콜한 데서 기사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사무실에 앉아서 직원들 지시·감독하는 게 사장이지 무슨 사장이 박스 나르고 그럽니까. 저한테 사장님 소리를 하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해요.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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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생들 만나는 순서 빼고는 일과를 다 회사에 통제당해요. 무슨 요일에는 나가서 홍보 뛰고 어 떤 요일에는 무슨 서류를 내야 하고…… 사무실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죠. 모든 작업은 다 사무실에서 일정하게 정해준 대로 진행되는 거죠. 그리고 회사에서 수수료 갖고 장난질을 해서 월급이 자꾸 내려가요. 40퍼센트였던 게 38퍼센트, 35퍼센트까지 내려갔어요. (학습지 교사 정난숙씨)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로 알려진 학습지 교사나 지입차주뿐만 아니라 간병인, 수도검침원, 자동차 판매원, 텔레마케터, 학원 강사, A/S 기사, 정수기 코디네이터,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 방송국 구성작가, 애니매이션 작가, 영화 스태프, 프로야구선수 등 특고노동은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특고노동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물류운송체계에 의지해 생활하며, 특고노동자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만화영화를 즐기고, 특고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의 사교육을 맡긴다.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특고노동자의 수를 55만여명(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3.3))에서 1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국민권익위원회는 39개 업종을 기준으로 2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동자 100명 중 14명이 특고노동자인 꼴이다. 


특수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특별한 이야기

부릴 때는 직원처럼 부리면서 불리하면 ‘사장’이랍니다

보험설계사, 요구르트 판매원, 학습지 교사, 이들은 모두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하고 매일 실적 보고를 해야 한다. 영업점에서는 목표매출을 맞추라고 닦달을 한다. 그러면서도 보험을 판촉할 때 주는 프라이팬 같은 사은품이나 심지어는 회사 마크가 찍힌 파일홀더마저 개인이 구입해야 한다. 요구르트 판매원은 시음용 음료를, 학습지 교사는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학용품을 사비로 구입해야 한다. 지입차주들은 차량은 운수업체 명의로 등록되어 있으면서도 차량 유지보수비나 유류비는 몽땅 자신이 부담해야 하지만 콜센터나 중개업체의 말 한마디에도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신세다.

밥 먹을 곳도 잠시 쉴 곳도 없어요

일주일, 하루 24시간 내내 간이침대에서 환자의 곁을 지켜야 하는 간병인은 식사를 할 곳도, 옷을 갈아입을 공간도 없다. 밤거리의 추위를 은행 24시간 코너에서 견디는 대리운전 기사나 대낮의 공원에서 배회하는 퀵서비스 기사도 휴게 공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들은 기본 10시간을 서서 일해야 하고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한다. 방송국 구성작가들은 새벽 서너시까지 일을 하거나 방송국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지만 방송국에는 다리 펼 곳도 모자란다. 기본적인 식사 문제나 휴게공간의 부족은 대부분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다. 

다쳐도 모두 저희 책임이에요

골프장 경기보조원들은 전화번호부도 뚫을 만큼 빠른 골프공이 날아다니는 필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용객을 보조한다. 팀 간 간격을 넉넉하게 유지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가능한 한 이용객을 빨리 회전시키기 위해 경기 속도가 느리면 보조원을 징계한다. 그러다 골프공에 맞아도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화물트레일러·대리운전·퀵서비스 기사 역시 사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하루에 열두시간 이상 차를 몰다가 운전석에서 잠깐 눈을 붙인 사이 과로로 사망하는 트레일러 기사도 있고, 취객의 폭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대리운전 기사도 있다. 환자와 24시간 일하는 간병인은 병이 옮아도 산재 처리는커녕 치료까지 모두 본인 책임이다. 병원에서는 예방주사 한대 놔주지 않는다. 실제로 2011년 한 대학병원에서는 에이즈 환자의 링거에 찔린 간병인에게 병원이 초기 응급조치를 거부한 사례가 있다. 

벌이는 계속 줄어드니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어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부족한 수입을 벌충하고 고용불안을 해소하려고 한다. 주말에도 PDA 단말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투잡, 스리잡을 하며 자신을 혹사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삭감당하거나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항상 시달리기 때문이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특고노동자들의 자기착취를 심화시킨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특고노동자의 노동자성은 계속해서 법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법원에서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화물노동자,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으나 재판부와 사업장에 따라 서로 엇갈린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잦기 때문에 여전히 개개인이 노동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개별적으로 소송을 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17일 서울고법에서 한원골프장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의 해고무효소송에서 근로자성과 노조원 지위도 인정해 해고를 무효로 판결한 것이 가장 최근의 판례이다. 
2007년과 2012년의 법 개정을 통해 특고노동자 6개 직종(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설계사, 퀵서비스 기사, 택배 기사)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2013년 국감에서는 가입율이 9.6%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특고노동자의 수를 아주 보수적으로 추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재보험 가입율은 2%에도 못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의무가입이 아닐뿐더러 노동자와 회사가 보험료를 반씩 부담하게 되어 있어 사업장에서 가입을 막기 때문이다.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특수고용 문제는 한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고용유연화를 앞세워 간접고용·특수고용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6년 이를 ‘위장된 고용관계’(disguised employment relations)라고 칭하며 각국의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ILO의 권고에 따라 독일·프랑스·영국·오스트리아 등의 유럽국가에서는 특고노동자들을 유사근로자로 규정하여 별도의 노동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비교적 수준이 낮은 노사 간의 협상을 통한 단체협약으로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은 법원의 개별적인 판결에 의존하여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금 가장 뜨거운 문제, 특수고용노동!


기업들은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사업 위험을 절감하기 위해 고용유연화라는 명목으로 매년 특수고용 종사자의 규모를 늘리고 있다. 이들은 66%가 여성, 57%는 기혼여성으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대부분이다. 2011년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최고은 작가의 사망으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문화예술인 복지 문제 역시 이들 다수가 특수고용형태로 고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특수고용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2076일에 걸친 오랜 투쟁이나 화물연대 등의 파업을 통해 특수고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는 어느덧 10여년이 넘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나 정책은 미미한 수준의 개선에 그쳤을 뿐이다.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다시금 권고했지만 국회 차원의 개선 방안 논의는 요원해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우리는 왜 노동자가 아니냐’며 울분을 토한다. 필자들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당장 어렵다면 독일 등의 유사노동자 보호법을 본보기로 특별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해결책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동하는 그들에게 ‘특수한’ 신분을 강요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특수’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들에게 어엿한 노동자의 지위와 권리를 찾아주어야 할 때다. 

이 책은 이론적 논의로만 가득한 사회비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 특고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이 책에서 묘사된 현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특히 ‘고용 없는 성장’으로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층과 고학력층의 유입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지금은 100명 중 14명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형태가 일반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우리가 지금 이 책에 주목해야 할 함의다. 특수고용 문제가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이 연구자와 노동자들의 하나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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