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수의 여행 산문집. 단순히 여행의 기록을 담은 기행문도, 사적인 감상에만 치중한 에세이도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방문한 타지에서 혹은 어딘가로 향하는 길 위에서, 그도 아니면 여정이 끝난 뒤에 마주하는 어떤 순간을, 저자는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가만히 품고 있다가 하나씩 길어 올려 글로 풀어냈다.
2020.9.7.
서울로 가는 ktx에서 읽은 책이다.
새벽잠을 이겨내며 탄 기차라 몰려드는 피로감에 나도 모르게 책을 든 채 졸고 있었다. 갈 때도 올 때도 모두.
한가한 주말에 다시 펼쳐 보니 그때 이런 내용도 있었나?
따분한 책이라며 반납할 뻔 했던 책이 새롭게 읽혔다.
아마도 낯선 여행지들의 잦은 등장으로 몰입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 이번에는 생소한 지명이 나올때면 유튜브로 검색을 했다.
그렇게 영상을 본 후 책을 읽으니 훨씬 여행지가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여행지 호텔에서 사용하고 난 ' 비누의 행방'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내가 좀 띵했던 부분이다. ( 나와는 세상을 인식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말 )
작가는 이런 부분까지 궁금해하여 찾아보았고, 작가처럼 그렇게 의문을 품은 우간다에서 이민 온 캐용고란 아이가 2009년 호텔체인과 연계해 한번 쓰고 남은 호텔 비누들을 회수하여 제3세계로 보낸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은 참으로 신선했다.
<돈의 속성>에서 인간의 삶에 스며들어 가장 큰 영향을 준 두가지 중 하나가 비누라고 했다. 비누의 등장으로 개인 위생이 개선돼 인간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고.
캐용고의 아이디어 하나가 얼마나 많은 제3세계의 사람들을 세균으로부터 해방 시켰을까?
다음으로는
10억 원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제주도 협재에 바다가 보이는 문구점을 연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문구점이다.
문구점 상호는 <필시>, 시집과 연필과 공책을 파는 가게,
낱개로는 팔지 않고 무조건 세 품목을 묶음으로만 판다.
그 연필로 자작시를 써서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시를 연필 1자루와 바꾸어 주고 그렇게 모은 고객들의 시들을 한쪽 벽에 붙이고, 그 공간이 차고 넘치면 천장, 그것도 부족하면 백사장에 늘어 놓겠다는 글을 보고 얼마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김연수 작가에게 10억원이라는 공돈이 생겨 그가 여는 협재 문구점에 가서 나의 졸시로 연필 한 자루를 건네받고 내 서툰 시 한 편이 벽 한 귀퉁이에서 살포시 웃고 있을 그런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상 글쟁이만이 생각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