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 67권. 메리 셸리가 열아홉 살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과학 소설. 다른 인간이나 남성에 대한 "절규"를 담은 작품이자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에 논쟁의 불을 지핀 선구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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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프랑켄슈타인 내용 요약 🧪
메리 셸리의 걸작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 호기심과 인간의 오만이 가져온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 고전입니다.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야망 넘치는 청년 과학자로, 생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데 깊이 몰두합니다. 그는 죽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겠다는 위험한 결심을 하게 되고, 무덤에서 파낸 시신들의 부속품을 조립하여 인간과 흡사한 거대한 피조물을 만들어냅니다. 마침내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생명을 불어넣는 데 성공하지만, 그가 눈을 뜬 순간 빅터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뮤지컬을 통해 접하게 됐고 초반부터 집중하도록 만드는 힘이 느껴지는 책
빅터의 행복하고 단란한 인생이 생명창조를 시작하면서 파멸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에 못지 않게 기구한 삶을 사는 괴물도 불쌍했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자신에게 아무도 온기도 주지 않아 상처받고 체념한채 사라지는 모습이 공감가면서 슬펐다💦
2023.5 독서
프랑켄슈타인 _ 메리셸리
과학을 공부하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을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를 한다. 그는 마침내 살아있는 피조물을 만들어냈다.
연구에 심취해있던 그는 결과물을 보자 혐오감을 느낀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피조물의 신체는 인간의 형태와 완전히 닮지 않아서, 피부 안으로 혈관 등이 다 비쳐보였고, 미세한 근육과 혈관 등을 재현하기 쉽도록 몸집을 크게 만들었기때문에 소위 ‘괴물’이라 부를만한 피조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에 의한 주변사람들의 죽음과 그로인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두려움, 죄책감, 혼란 등의 내적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 ‘괴물’에게 복수하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삼고 그를 추적한다.
자신이 만든 괴물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프랑켄슈타인. 괴물을 만든 것 자체가 문제일까?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의도한 잘못일 수도 있고 생각지 못했던 잘못이기도하다. 그리고 그에 책임이 따른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을 ‘괴물’이라 부르며 외면하고 도망쳐버린다. 그 후에는 계속 ‘괴물’을 생각하며 불안해한다.
나는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의 수치심 내지 좌절감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이상적인 가족관계, 교우관계 속에서 자랐다. 그는 실패라고 부를만한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서술된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만든 것이 ‘첫 번째 실패’를 겪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이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을 주변에 말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앓으며 자신이 최고로 불행하다고 확신한다.
누구나 스스로 감추고싶거나, 마주하기 괴로운, 부정적인 경험 또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마주하기 너무 힘들 때는 그 감정을 외면해버린다. 그러면 일시적으로는 괜찮은 듯하나, 생활을 하다보면 한번씩 불쑥 튀어나오며 괴로워진다. 외면했던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한다. 결국 외면한 감정은 계속 내 안에서 점점 자라난다. 그럴수록 더욱 마주하기 불편해진다.
프랑켄슈타인도 마찬가지다. 처음 그가 괴물을 만들었을 때, 그 괴물을 직면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괴물’은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묘사되고있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자로서 책임을 다했다면 친구와 가족이 그 괴물 손에 죽지 않았을 수도있다. 또한 막연한 불안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무책임한 방임이, 나의 감정(프랑켄슈타인의 수치심)에 대한 외면이, 벗어날 수 없는 두려움이 되어 나를 항상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도 ‘괴물’을 떠올리며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마음속에 그런 ‘괴물’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마주하기 불편한 감정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나에겐 괴물이 불안함과 슬픔이다. 내가 어릴 적 외면했던 슬픔과 불안을 이제는 조금씩 마주해보려고한다.
추가적으로, 자신감과 자만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발견한 가설에 확신을 가지고 결국 생명을 창조했다. 그 결과에 좌절하는 프랑켄슈타인을 보며, 나는 그 괴물이 ‘자만에 대한 추악한 결과’로도 생각됐다. 그런데 자신의 가설을 믿은 것이 과연 자만인지, 자신감인지를 내가 판단할 수 있을까? 그 차이는 무엇일까?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다.
대학때 영문학수업시간에 마리 쉘리를 배우면서 작가가 그 당시가 언제인데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을 “프랑켄슈타인”으로 그려냈단 말인가! 그때 아마 로버트드니로인가 그 배우가 영화로 나온듯한데 말이다! 여류작가가 그런 소설을 썼다는 것, 시대 비판과 미래의 청사진까지 제시했다는 것, 난 그게 너무 충격이었다 그래서 문학은 위대하다고 늘 노래를 불렀었다!
괴물은 끝까지 이름붙여지지 않은 존재로 죽었다. '악마', '끔찍한 괴물' 등으로 평생을 불렸다. 빅터는 창조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어느 누구와도 관계맺지 못하고 괴물로 불리우며 심지어 창조주에게 마저 미움받는 존재가 정말로 사악한 괴물이 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처음부터 악한 아이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부모, 선생하기 나름. 그런데 이런 괴수물의 문장이 이렇게 시적일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