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기다림을 깨고, 마침내 천명관의 거대한 서사가 다시 맹렬하게 펄떡이기 시작한다. 장편소설 『고래』(문학동네 2004)로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전세계 문학계를 뜨겁게 달군 그가 새롭게 펼쳐 보이는 무대는 한국전쟁의 흙먼지가 채 가시지 않은 1950년대 서울이다.
초반부터 술술 읽혀서 방심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과거 한국이 겪었던 아픔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아프게 와닿았다.
앵벌이 아이들의 모습도, 그런 아이들을 위해 엄마를 읽고 재능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자신을 희생한 동이의 모습도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슬프고 아름다운 동화 혹은 뮤지컬을 감상한 것 같다.
한국전쟁 직후 앵벌이로 살아가는 아이들과 앵벌이를이용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어른들이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 대립한다.
당시 종로 거리와 남대문, 서울역, 해방촌, 창신동 절벽마을 등을 배경들이 눈에 그려지듯 보인다. 나도 서울살이 20년이 다 되어가니 구석구석 찾아가보기도 했고, 서울역 앞 px를 그린 박완서의 《나목》이나 창신동에서 살았던 시인 김수영의 수필집 등이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착취하는 양목사나 육손이, 샘 같은 악질 어른에 맞서 싸우는 어린 앵벌이들과 독재 타도를 외치는 군중의 물결이 오버랩된다.
전작 《고래》에서 보여준 신비스런 분위기도 이어진다.
다만 다양한 부분에서 조금씩 이야기를 하려다 만 것 같은 허전함이 있다. '서로의 열기로 빚어낸 숭고한 화음, 그 눈부신 연대의 서사'라는 홍보 문구를 달고 나오기에는 가볍다. 아코디언의 마술적인 분위기라든가 아코디언을 연주할 때 신명나는 묘사가 더 깊었다면..... 동이와 거북이 등 앵벌이 사이의 갈등이 더 치열했다면.... 시위 현장이라든가 싸움현장이 더 난장판이었다면...... 500페이지 정도에 실었다면 작가가 의도했던 '연대의 서사'가 더 진하게 우러나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