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이후 4년 만에 허수경 시인이 네 번째 시집을 펴냈다. 독일에 건너간 지 햇수로 14년, 그의 시어는 이제 어둡고 쓸쓸한 느낌 혹은 고독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보다 근원적이고 거시적인 상상력을 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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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내용 요약 🥔⏳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인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은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이방인으로 살아갔던 저자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입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문명과 역사를 상징하는 '청동'의 시간과,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기반인 '감자'의 시간을 교차시키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저자는 고대 유물들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학문적 여정을 통해 인류가 쌓아 올린 장엄한 문명의 역사를 살피는 동시에, 타국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쓸쓸한 일상의
그때 나 갓 스무 살
그 거리, 혼불이 든 영혼의 거리
그대를 기다렸네
내 옆에 보자기를 풀어 빗이나 실이나 단추를 팔던
아낙, 그때는 80년대
독재자의 얼굴로 돌이 날아가고
흰옷을 입은 여자들이 한 거리에서 춤을 추고
그대가 오던 길이 막히고
아낙이 젖 먹던 아이의 얼굴을 시커먼 손으로 훔쳐주며
고개를 숙일 때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며 시계를 바라보며
오후를 넘긴 해가 멀리 지구의 저 너머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그때 내 영혼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대여, 이 속수무책은 그때 그 도시를 다스리던 독재자의 선물인가,
내가 그대가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을 거라는 느낌,
내 일생의 어떤 순간도 더 이상 기다림으로 허비하지 않겠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기다림을 거부하며,
어둑한 그 거리에서
아낙이 단 하나의 빗도 팔지 못하던 그 거리에서,
어떤 독재보다 더 지독한 속수무책은
내 영혼의 구석구석까지 검열했고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을 믿지 않는 것, 그때,
그대는 끝내 그곳에 오지 않고
지금 나는 사십이 되어 비 오는 이방의 어둑한 기차역에 서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데,
오십 분 연착된다던 기차는 두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고
펑크 계집아이 하나가 맥주 하나 마실 돈 달라고 손 내미는데
지금 이 속수무책도 그때 그 독재자의 선물인가,
나, 그때 지금까지 당도하지 않는
그대를 기다려야 했는가
- ‘기차역’, 허수경
슬픔이여,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물은 적 없었던
슬픔이여
찬물에 밥 말아먹고 온 아직 밥풀을 입가에 단
기쁨이여
이렇게 앉아서
내 앉은 곳은 달 건너 있는 여울가
내가 너를 기다린다면
너는 믿겠는가, 그러나
그런 것 따위도 물은 적이 없던
찬 여울물 같은 슬픔이여,
나 속지 않으리, 슬픔의 껍데기를 쓴
기쁨을 맞이하는데
나 주저하지 않으리
불러본다, 기쁨이여,
너 그곳에서 그렇게 오래
날 기다리고 있었는가,
슬픔의 껍데기를 쓴 기쁨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나는 바라본다, 마치,
잘 차린 식사가 끝나고
웃으면서 제사를 지내는 가족 같은
기쁨이여
- ‘기쁨이여’, 허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