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우다영의 첫 번째 소설집.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모든 일들이 돌연히 벌어지는 사고에 가깝다고 말하는 소설집이다. 우연의 신비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그날의 온도처럼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는 '징조'를 포착하는 작가의 살갗은 예민하고, 눈은 날카롭다.
작은 흠집이 모여 단점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흠집을 찾아내려 애쓰고 있다.
글은 쉽게 읽힌다. 하지만 끝날 때쯤 강박처럼 꼬아지는 내용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내게 눈에 띈 리뷰가 있었는데, 학생의 습작 같은 느낌이라는 글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작품이 쓰여진 시기를 보면 얼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면 조용한 술집에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공부했던 과정에 대해, 여태까지 작게나마 참여했던 전시와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특히 생각지도 못한 관점으로 전시를 기획해 나를 놀라게 했던 선배 큐레이터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석이는 어릴 때 물인 줄 알고 잘못 먹은 부동액 때문에 위세척을 했던 일에 대해, 고등학교 때 스쿠터를 타다가 교통사고가 난 일에 대해, 군대에서 탱크와 벽 사이에 손이 껴서 손가락뼈가 세 개나 부서진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세 살 무렵 갑자기 생긴 천식에 대해, 부모님이 주말마다 데리고 다녔던 공기 좋은 여행지들에 대해, 뒤늦게나마 태어난 두 동생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석이는 미학과에 가기 전에 조소과를 준비했던 기간에 대해, 큐레이터 일 이외의 다양한 아르바이트에서 겪었던 경험에 대해, 1년 전 독립해서 혼자 살기 시작한 생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신기해.”
석이는 정말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상관없는 궤적을 그리다가 우리가 이렇게 만나다니.”
나도 속으로 생각했다. 맞아, 이건 신비로운 일이야.
“이상하지? 처음 봤을 때부터 너랑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
석이는 턱을 괴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누구한테도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한 적 없어.”
한참 대화에 빠져 있다가 조명이 어두워져서 주위를 둘러보면 가게 안은 텅 비고 석이와 나만 남아 있었다. 석이는 내가 사는 아파트 앞까지 함께 왔다가 다시 컴컴한 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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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통증으로 감각한다면 좋아, 네 마음이 놓일 만큼 멀리 떨어질게.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고 뜨겁지 않지만 네가 그걸 상상하고 있잖아? 좋아. 석아, 난 다 좋다고. 위험이 내 발끝에서 시작된 희미한 그림자에도 닿지 못하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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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같이 있고 싶어.”
석이가 말했다.
“나도 그래.”
“너랑만 나누고 싶어. 너를 웃게 해 주고 싶어. 왜 너인지 모르겠지만, 왜 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나를 견디고 능가할 용기가 생기는지 정말 모르겠지만, 나도 너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지금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만으로도 즐겁고도 편안해.”
“나도야. 나도 그래, 석아.”
그러면 석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나를 많이 안아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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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잠이 들어도 나는 이른 아침에 눈을 떴고 석이는 나보다 짧으면 한두 시간, 길면 대여섯 시간을 더 잤다. 나는 석이를 깨우지 않고 책을 들춰 보거나 가만히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냈다. 잠든 모습을 빤히 구경하다가 살살 만져 보아도 석이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럴 때면 닫힌 눈꺼풀 너머의 세계와 내 세계의 시차는 얼마나 벌어진 걸까 가늠해 보았다. 방은 이미 익숙하고 편안했지만 홀로 깨어나 찬찬히 바라보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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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고,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는데, 심지어 체온마저 이렇게 다른데 한 물결 속에 섞여 있다는 게 놀라워. 또 우리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거대한 물속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로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있겠지. 너이고 나인 이유가.”
석이는 아리송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앞에 펼쳐진 물을 바라봤다. 그대로 오래도록 말이 없다가 불현듯 조그맣게 속삭였다.
“나랑 이곳에 와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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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빠의 하얀 피부가 부러웠어요. 부러워서 울면 오빠가 솓을 뻗어 내 볼을 살살 문질렀어요 ‘자, 봐. 내가 이렇게 만지면 네 얼굴이 하얘져.’ 나도 손을 뻗어 오빠의 뺨과 광대와 눈썹을, 둥글고 차가운 코와 폭이 좁은 턱을 어루만졌어요. ‘어때, 내 얼굴이 까매졌지?’ 하고 오빠가 물으면 나는 끄덕끄덕 그렇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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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가시광선을 보며 살아가지만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빛의 영역이 있단다. 우리는 평생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지만 보이지 않는 빛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빛이 우리 곁에 없는 것은 아니야. 때때로 우리 눈은 실수를 해서 아주 희박하게 다른 영역의 빛을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은 이유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명명할 수 없는 어떤 일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어쩌면 영혼이나 유령을 보는 사람들은 좀 더 넓은 영역의 빛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단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은 과거와 미래가 현재와 분리되지 않은 채 순서도 정렬도 없이 동시에 생성되는 거라면? 정신 분열증이나 치매 환자가 제대로 우주를 보는지도 모를 일이지. 파동으로 봤다가 입자로 봤다가, 그 고양이가 죽었다고도 살았다고도 횡설수설하는 게 진실일 수도 있어.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더러운 이중 속마음과 겉치레 몸뚱이를 간파하고 있는지도 몰라. 고정된 관념을 정확히 보는 사람들, 혹은 보려는 것만 보는 정상인들이 사실은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란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그것의 전부가 아니야. 절대로 그것을 온전히 볼 수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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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고리를 돌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잠그는 것을 좋아해요. 문 뒤에 숨어서 아무도 내가 숨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안도감을 느껴요. 글을 쓰면 그런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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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드디어 운명적 사랑을 만났다고 믿는 눈치였지만 나는 사랑은 대체로 운명적인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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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내가 조금 더 자란 어느 날 문득 이 날을 떠올리게 되리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황이 하는 말을, 말을 하는 황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리라고. 그런 신비로운 순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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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까닭 없이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끊임없이 달라지고 물러지는 삶 속에서 그것은 감쪽같이 달고 부드럽게 넘어가곤 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어떤 일의 전조나 의미있는 전경이 될 순간을 순진한 얼굴로 지나가는 것은.
단편소설을 읽다보면 작가들만의 분위기라는게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이번 우다영작가의 밤의 징조와 연인들은 한여름 땡볕에서 땀을 잔뜩 흘린 후 느닷없이 에어컨 바람을 쐴때 느낄법한,
시원한 환희와 함께 등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축축함이랄까
이렇게 수려하고 매력있는 문장은 오랜만이다.
사나브로 젖게하는 이슬비처럼
소설을 읽다보면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서사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