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 코멘트]
아무도 보지 않던 시간의 기록
이 책이 서점에 나온 이튿날, 고영표는 수원에서 롯데를 상대로 102구 완봉승을 거뒀다. 시즌 14승째였고 팀의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는 4가 됐다. 책 제목 그대로의 '수원에서의 나날'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들은 수원이 아니라 광주의 운동장과 벤치에 있다. 성공한 투수의 회고로 읽기 시작해, 아무도 보지 않던 시간에 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적은 기록이기도 하다.
못난 어른들이 한 일
책의 가장 무거운 대목은 고영표의 학생 선수 시절의 증언이다. 회비를 제때 내지 못해 팀 버스에서 내려야 했던 일, 직책 없는 매니저 노릇을 하며 '주전자'로 불린 시간, 커피를 잘 탄다고 얻은 '고 마담'이라는 별명이 차례로 나온다. 마지막 장에는 2002년 여름 초등학교 야구부에서 지도자가 아이들에게 가한 일이 학교 이름과 함께 적혀 있다.
화자는 이 일들을 '시련'이라는 말로 뭉뚱그리지 않고 일어난 그대로 적는다. 그리고 그 일들이 고영표를 단련한 장애물이 아니라 못난 어른이 아이에게 저지른 잘못이라는 점을 덧붙인다.
팀의 전설을 만든, 감독의 질문
고영표의 커리어 전환점은 2016년 말이었다. 2016년 시즌이 끝나고 새로 부임한 김진욱 감독이 선수들에게 원하는 보직과 그 이유를 적게 했다. 그때까지 고영표는 선발 등판 없이 통산 평균자책점 5.94에 머문 불펜 투수였다. 고영표는 이전까지 원하는 것을 말해서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책에서 고영표의 지도자였던 어른들은 대부분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키거나 빼앗았다. 고영표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은 어른은 김진욱 감독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김 감독이 두 시즌 동안 kt에서 남긴 팀 성적은 10위와 9위였다. kt가 신생 구단이었음을 고려해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팀을 영원히 빛낼 한 선수의 경력을 바꾸는 데는 꼴찌 팀 감독의 질문 하나로 충분했다.
최고의 무기, 고영표의 관찰력
빠른 공이 없는 한 투수는 속도를 덜어 내는 체인지업을 혼자 다듬었고, 경기에 나서지 못해 아무도 지켜보지 않던 불펜을 실험실로 썼다. 선발이 된 뒤에는 한국 야구를 평정한 용병 투수를 옆에서 보며 한 시즌을 보내는 법을 배웠고, 등판 전 식사 루틴까지 따라 했다.
에이스가 된 뒤에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사설 센터에서 실력을 가다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새 공을 받아들였다. 체인지업과 함께 자신의 무기였던 관찰력으로부터 말이다.
격려와 깨닫게 함을 동시에
책은 '무엇이든 하면 어떻게든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책이 실제로 보여 주는 것은 조금 다르다. 그는 무엇이든 했고, 그 위에 한 번 물어봐 준 어른이 있었다. 그 뒤엔 어른들의 수많은 외면이 훨씬 더 많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책은 길을 찾는 사람에게 건네는 격려이면서, 아이를 가르치는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 할 기록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를 버스에서 내리게 하는 어른이 될 것인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 어른이 될 것인가. 고영표의 수원은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
[발췌한 책 속 문장]
p22 아버지의 새 사업이 생각만큼 확장되지 않으면서 집안 사정마저 좋지 않았다. 월 100만 원의 회비를 제때 내지 못해 연습 경기를 위해 떠나려는 팀 버스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 회비로 굴러가는 운동부에서 가난은 자리 박탈의 이유가 되었다. 아동의 존엄성을 깎아내리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자본주의와 당시 지도자들의 잔인함.
p25 공식적으로 매니저 직책이 주어지진 않았지만, 그때 그 시절 이른바 ‘주전자’라고 불리는 역할을 맡았다.
=> 눈여겨볼 것은 정식 직책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함도 대가도 없이 아이의 시간을 팀의 허드렛일에 쓰였다.
p28 2000년대 중반은 서울에도 카페 문화가 자리 잡기 한참 전이었다. 번화가엔 다방이 있었다. 미성년자였던 고영표가 직접 가 보 기회는 없었지만, 당시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은 바리스타가 아닌 마담이라는 인식이 있던 시기다. 그때부터 고영표는 야구부원들로부터 ‘고 마담’이라고 불렸다. 실력으로 인정받은 첫 번째 별칭이었다.
=> 멸칭에 가까운 별명이 누구에겐 긍정적인 별명이었던 비극. 미성년 선수에게 다방 마담의 이름을 붙이는 문화도 문제지만, 더 아픈 것은 소년이 그 이름을 반겼다는 점이다. 외면받던 소년에게 인정받을 길은 그만큼 좁았다.
p66 그저 그런 투수가 됐다는 회의감에 사로잡혔던 고영표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건 2016년 말이었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김진욱 감독이 부임 직후 선수단에 독특한 요청을 해왔다. 각자 원하는 포지션과 보직, 그 역할에 자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그리고 왜 희망 포지션과 보직을 맡고 싶은지 등을 적어서 제출하란 거였다.
=> 팀에 뚜렷한 족적이 없던 지도자였지만, 팀의 전설이 될 남자에겐 구세주였다. 책의 앞부분에 나온 대부분의 어른은 아이를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심부름을 시킬 뿐이었다. 감독의 성적표와 별개로, 한 사람의 경력을 바꾸는 데는 질문 하나면 충분했다.
p72 원한단 걸 말한다고 실현된 일은 고영표 야구 인생에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거나 추가 합격으로 겨우 면접 기회가 오곤 했다.
=> 고영표는 재능을 늦게 발견한 사람이기 전에, 말할 기회를 늦게 얻어 왔다.
p79 공식 경기에서 공 던질 일이 ‘없는’ 투수 고영표의 투구를 지켜볼 바엔 다른 훈련을 하거나 쉬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역설적으로 고영표에겐 모든 걸 시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방해하는 이가 없으니 작은 가능성도 일일이 체크해 볼 수 있던 것이다.
=> 실험실을 만든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그 시간을 버리지 않은 한 사람의 태도였다. 같은 처지의 선수 대부분에게는 그저 버려진 시간이었을 것이다.
p80 김병현 같은 묵직한 직구나 날카로운 변화구가 없어도, 이반 로드리게스처럼 최고의 포수는 아니어도 그 순간만큼은 세계 최고 배터리가 됐다.
=> 버스에서 쫓겨나고 벤치를 지키면서도 그만두지 못한 것은 의지와 야구로부터 얻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p83 원석이 연마 과정을 거쳐 빛나는 보석이 되듯, 홀로 서서히 갈고닦은 체인지업은 고영표의 야구 인생과 궤를 같이한다.
=> 체인지업은 속도를 덜어 타이밍을 빼앗는 공이다. 빠르지 않아서 밀려났던 투수가 느림을 무기로 바꾼 셈이다. 체인지업이란 구종이 고영표의 경력을 요약한다.
p86 이제 막 풀타임 선발 투수로 자리를 잡아 가던 고영표에게 니퍼트는 모방 학습하기에 딱 좋은 교보재나 다름없었다. 투구 폼과 구종은 달라도 ‘프로에서 선발 투수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대선배였다.
=> 더스틴 니퍼트는 두산에서 일곱 시즌을 에이스로 보낸 뒤 재계약이 불발되어 2018년 한 해를 kt에서 보냈다. kt가 그해 얻은 것은 8승만이 아니었다. 선발 투수로 한 시즌을 사는 법을 고영표가 배운 것이다.
p91 지겹고, 한편으론 유난스럽게 보일지라도 꼭 해야만 하는 일, 고영표에겐 파스타와 카레라이스를 먹는 일도 선발 등판의 한 과정이다.
=> 하나의 사소한 루틴 하나가, 한 거인을 만드는 거대한 과정이 된다. '고퀄스'라는 별명은 마운드가 아니라 식탁에서부터 만들어졌다.
p114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불펜 훈련장에서 혼자 공을 던졌던 10년 전처럼, 에이스라 불리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서도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공을 던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이든 하면, 어떻게든 된다.
=> 고영표를 향한 대우는 달라졌지만. 모르는 것을 배우러 스스로 움직인다는 자세는 같았다.
p133 새로운 길을 열어 준 정체불명의 공, 고영표는 구종을 특정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그 공’이라고 말이다.
=> 단순 ‘그 공’이 아니다. ‘고영표’의 공이다.
p161 국가대표로서 책임감과 부담감이 가장 큰 경기에 믿고 선발 등판을 요청할 만큼 믿음직한 자신의 모습을 그리다가도, 어느 정도 전력을 아끼며 운용해야 하는 경기에 자신을 내세우는 감독의 뜻을 믿지 못해 한편으론 양가적인 감정이 들기까지 했다.
=> 가장 무거운 경기를 맡길 만큼 믿음직한 투수라는 자부심과, 전력을 아끼는 경기에 내세워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p190 고영표는 관찰력이 뛰어나다. 체인지업과 더불어 고영표가 자부심을 느끼는 무기다. 투수들의 투구 동작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바로 알아차린다. 특히 오랜 기간 한솥밥을 먹은 kt 위즈 투수들이라면 초미세 단위 변주까지 짚어 낸다.
= 팀의 에이스이자, 투수 코치이자, 멘털 코치이기까지 한 고영표다. 학생 시절 고영표는 직책 없이 심부름하던 '주전자'였다. 이제는 직함 없이 코치의 일을 한다. 직함 없이 팀을 돕는다는 점은 같지만, 멸시가 아닌 신망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p192 고영표의 주장과 달리 주변인들은 학창 시절 야구부 지도자들 무관심이 근원이라고 짐작한다.
“어릴 적에 엄청 무시받고, 마운드가 아닌 벤치에 앉아 다른 선수들을 지켜보기만 했잖아요. 그 시간이 고영표의 관찰력과 친화력의 근본이 됐을 거에요.”
=>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모멸감에 무너졌겠지만, 그는 고난 속에서 자신의 무기를 만들었다. 결국, 무기를 만든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고영표다. 지도자들의 방치가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읽는 순간, 방치는 면죄부를 얻을 것이다.
p193 성향이면 어떻고, 힘들었던 그 시간 때문이면 어떤가. 그 덕분에 고영표는 신망을 얻고, 프로에서 살아남고 있다.
p205 “누구나 메이저리그 유니폼 입고 뛰어 보는 걸 꿈꾸잖아요. 나이가 조금 찼다고 해서 꿈을 꾸지 말라는 법도 없고요. 저도 선수 은퇴하는 그날까지 아예 꿈을 접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전 kt 위즈에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 고영표는 꿈을 부정하지도, 그를 핑계로 자신의 자리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는다. 고영표는 떠나고 싶은 마음과 남기로 한 선택을 함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p222 대성초 리틀야구단에 몸담고 있던 2002년 고영표는 전국 소년체전 지역 예선 경기에서 이틀 연속 졌다는 이유로 감독으로부터 얼차려를 받았다. 한국 축구 최고 전성기이자 온 국민을 한데 모은 2002 한일 월드컵이 한창인 때였다. 비교적 관심이 덜했던 그곳에서 고영표와 친형 고장혁을 비롯한 일부 야구부원들은 지도자들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학교 인근 지역을 돌며 알몸으로 구보했다.
=> 2002년은 축구 속 빛 뒤에, 천민적인 지도가 있던 야구도 존재하던 야만의 시대가 공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