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1세대 배낭여행가, 20권의 여행책 저자, 여행작가 수업을 진행하는 여행가들의 작가, 30년간 전 세계를 수차례 돌며 400여 개의 도시를 밟은,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 이 책에는 저자가 여행지에서 경험한 무수한 순간들 가운데 가장 간직하고 싶은 행복한 기억들을 모았다.
여행하는 인간 이지상의 책을 모조리 샀다.
책 중에는 절판된 책도 있었지만, 다행히 중고 책 재고가 있어 구하기도 했다.
<기억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될까 봐>를 읽으며 내가 이지상 씨의 책을 갈구하는 이유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여행의 기록은 이상하게도 질투가 전혀 나지 않는다.
저자처럼 여행하지 못하는 내 현실에 대해 탓하게 만들지 않는다.
어떤 여행 서적들은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라고 이야기한다.
여행해야 하는 수십 또는 수백 가지의 이유를 들이대면서 읽고 있는 독자를 설득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한다.
이지상의 여행 글을 읽을 때는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천천히 그의 여행을 함께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한다.
비교가 아닌 관찰의 글이다.
그래서 좋은 것 같다.
읽으면서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고,
훗날 내가 여행을 가게 되면 처음 가는 곳이지만 그런 추억이 떠올라 친숙함과 낯선 설렘이 함께 느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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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부분의 여행지를 글로 설명한다.
사진은 턱없이 부족하다.
분명 제목은 여행책인데,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도 많다고 하면서도 책에는 많이 싣지 않았다.
근데 그게 또 좋았다. 내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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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갓 퇴사한 30대 초반부터 60대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치 타임머신을 이용하듯 자유롭게 여행하는 책이다.
읽으면서 도시 이름과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잘 새겨두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여행은 사람이다.
아무리 멋진 풍경과 화려한 건물과 맛있는 음식이 있더라도 그곳에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없다면
여행지로서의 매력은 없다. 불편하고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곳에 사람이 있다면 좋은 여행지가 될 수 있다.
밑줄
p.129
고통이 싫어서 늘 달콤한 삶과 글과 말을 찾아다니는 나는 얼마나 허약한 인간인가?
p.137
지금 나는 ‘붉은 핏방울’이란 말에 전율을 느낀다. 속절없니 흘러가는 살음 덧없어 보이지만,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이 모두 다 붉은 핏방울이었다. 나도 핏방울로 글을 써왔고 세상 사람들 모두 핏방울을 흘리며 살고 있다. 자식을 키우며 온갖 고통을 받는 부모들, 온갖 수모를 겪으며 장사하는 상인들, 팍팍한 생활 속에서 꾹 참고 일하는 직장인들, 답답함을 억누르며 공부하는 학생들…. 어디 사람뿐이랴. 온갖 생물들, 바이러스, 기생충들도 살려고 발버둥 친다. 핏방울을 내뿜으며.
과거에는 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만 힘들고 나만 고통스러운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처절하게 살고 있었다. 그 장엄하고 슬픈 광경 앞에서 경건하게 옷깃을 여밀 때쯤 비로소 나는 나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의 고통과 번뇌쯤이야 별것 아니었다. 나의 소멸도 기꺼이 받아들일 만했다. 다만, 붉은 핏방울을 매일매일, 뚝뚝 흘리며 살고 싶었다. 한 끼의 식사와 한 모금의 물과 바람과 햇살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