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나요?

모나 숄레 지음 | 부키 펴냄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나요? (가장 완벽한 삶의 공간을 향한 7가지 인생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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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

출간일

2019.3.8

페이지

496쪽

#부동산 #삶 #의미 #주거

상세 정보

집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걸 아는 이들에게
어떤 집에서 여생을 보낼지 숙고하게 하는 책

누군가는 '매일' 생각하며 살고, 누군가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을 법한, 집에 관한 우아하고 일리 있는 이야기. 우리 삶에서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매일같이 집을 들고나지만, '팔기 좋은 집'의 조건을 생각할 뿐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의 기자이자 에세이 작가로 활동 중인 모나 숄레는 우리 삶에서 '집의 의미'를 고민하다가 오늘날 집이 '사는(居) 곳'이 아니라 '파는(賣) 곳'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고전 《오디세이아》《어려운 시절》《오블로모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현대의 고전 《패턴 랭귀지》《공간의 시학》《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자기만의 방》《여성의 신비》《해리 포터》, 영화 〈아멜리에〉〈하울의 움직이는 성〉〈스타워즈 4〉,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위기의 주부들〉〈마스터스 오브 섹스〉 등을 종횡무진하며 평생에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할 7가지 인생 질문을 던진다.

"집은 '누구'와 사는 곳인가?"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집'이라는 시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이점을 주는가?" "노동 없이 집을 유지할 수 있는가?" "초연결사회는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우리가 살 '공간'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에게 '이상적인 집'이란 어떤 곳인가?" 이 책은 집을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를 파헤치는 '집에 대한 가장 지적이고 집요한 탐구서'라 할 수 있다. 이 흥미로운 여정 속에서 독자들은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지, 우리 삶에서 집이란 무엇인지 고찰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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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randrire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약 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상상하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사람은 삶이 너무 힘들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 때문에, 때론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자살이라는 선택 박에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하나만 기억했으면 한다.
조금만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가진 걱정과 고민을 다른 이에게 말하게 된다면,
내가 가진 걱정의 반을 덜어낼 수 있다.
꽁꽁 싸맨 나만의 비밀을 다른 이에게 말하게 된다면,
나를 싸맨 속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 정말로 힘들더라도, 다시 한번 고개를 들었음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결말은 작가의 절실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인 만큼, 주인공들은 본인과 다르게 해피엔딩이었음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절실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잘 말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은이), 김윤경 (옮긴이) 지음
모모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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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코 (지은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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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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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요약하자면 77학번의 여대생 기숙사에서 주인공의 1학년 기간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40년이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는 이야기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소설속의 시대적 배경과 낭만(개인 전화기와 인터넷이 없던시절 아날로그식 만남과 연락 등)을 이해할수 있지만 그렇지못한 사람들은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빛의 과거는 본인이 기억하기쉽고 가급적이면 자기위주로 기억하지않나? 생각된다. 같은 공간속에서 생활했지만 40년이 지나고난후 서로의 생각이 다른 이유이다.

소설속에서 가슴 아팠던것은 여대기숙사의 오픈하우스날 이었다. 객기부린 술취한 남자대학생이 여대기숙사에 와서는 점호시간 이후까지 침대에서 잠자는 바람에 아무 관련도없는 여대생들이 퇴학,퇴사를 당하고 그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인생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결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때 여학생들이 소설속과 다른 선택(사감에게 신고하여 남학생을 인계)하였다면 다른 결말을 맞았을까? 하는 동정어린 희망도 가져보게된다.(난 선의의 피해를 보는것을 좋아하지않기 때문이다.)

소설속의 두 주인공 김유정과 김희진은 서로 성격도 다르고 친하지도 않았지만 40년 이라는 긴 세월동안 친구로서 지내고있는 중이다.그렇다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다.한사람은 정직하고 곧은편이고 또 한사람은 약간은 계산적이며 자기중심적인편이다. 그런 두 사람의 생활이 자기위주로 생각으로 기억되면서 둘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판단은 독자의 몫인것 같다.

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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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매일' 생각하며 살고, 누군가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을 법한, 집에 관한 우아하고 일리 있는 이야기. 우리 삶에서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매일같이 집을 들고나지만, '팔기 좋은 집'의 조건을 생각할 뿐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의 기자이자 에세이 작가로 활동 중인 모나 숄레는 우리 삶에서 '집의 의미'를 고민하다가 오늘날 집이 '사는(居) 곳'이 아니라 '파는(賣) 곳'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고전 《오디세이아》《어려운 시절》《오블로모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현대의 고전 《패턴 랭귀지》《공간의 시학》《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자기만의 방》《여성의 신비》《해리 포터》, 영화 〈아멜리에〉〈하울의 움직이는 성〉〈스타워즈 4〉,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위기의 주부들〉〈마스터스 오브 섹스〉 등을 종횡무진하며 평생에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할 7가지 인생 질문을 던진다.

"집은 '누구'와 사는 곳인가?"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집'이라는 시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이점을 주는가?" "노동 없이 집을 유지할 수 있는가?" "초연결사회는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우리가 살 '공간'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에게 '이상적인 집'이란 어떤 곳인가?" 이 책은 집을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를 파헤치는 '집에 대한 가장 지적이고 집요한 탐구서'라 할 수 있다. 이 흥미로운 여정 속에서 독자들은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지, 우리 삶에서 집이란 무엇인지 고찰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

한번은 고민해야 할 ‘사는 곳’에 관한 쓸데 있는 생각들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


당신에게 ‘좋은 집’이란 어떤 곳인가? 교통이 편리한 곳? 좋은 학군이 있는 곳? 특정 브랜드의 아파트? 전망이 좋은 곳? 그래서 팔기 좋은 곳? 그러나 《르몽드디플로마티크》의 기자 모나 숄레에게 그런 곳은 진짜 ‘집’이 아니다. 그이에게 집이란 ‘게으름 피우고, 잠자고, 공상에 잠기고, 읽고, 곰곰 생각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놀고, 혼자 고독을 즐기거나 지인들과 어울리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곳이다. 이런 행위들과 우리에게 필수적인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기본적인 즐거움을 주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집이다.
프랑스에서 에세이 작가로도 활동 중인 모나 숄레는 집이 삶에서 의미하는 것, 집이 가능하게 하는 것, 주거 환경에 대한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 그러나 ‘집’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그녀는 또한 ‘집’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점과 정확히 맞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민주주의의 퇴보, 급락하는 혼인율과 상승하는 이혼율, 갑질 문제, 사회 계층과 세대 간의 이중 격차, 근로노동 시간 논쟁, 가정 형태의 변이, 건축 방식의 문제 모두 ‘집’에서 시작되거나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이는 문학, 예술, 철학, 사회학, 영화, 잡지, 드라마, 다큐멘터리 기사, 통계 등 ‘집에 관련된 거의 모든 인문학’을 파헤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삶의 공간’을 찾기 위해서는 다음의 7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집은 ‘누구’와 사는 곳인가?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집’이라는 시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이점을 주는가?
◾노동 없이 집을 유지할 수 있는가?
◾초연결사회는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우리가 살 ‘공간’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에게 ‘이상적인 집’이란 어떤 곳인가?

문을 닫아도 집 안으로 들이닥치는 군중들
프랑스의 작가 엠마뉘엘 피레르는 “나는 우리를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고 교류의 영역을 무한정 넓히기 위해 기술이 최근에 보여 준 교묘함과, 그 때문에 자립 체제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사실을 주목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사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매일같이 하고 있다.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열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기가 무섭게 대부분 철저한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군중이 거실이나 침실에 난입하는 경험을 말이다. 매몰차게 창을 닫으려 해도 소셜 네트워크는 “아무것도 놓치지 마세요!”(트위터) “벌써 가세요?”(페이스북)라는 메시지를 날려 ‘무언가를 놓칠 것 같은’ 두려움을 심어준다. 저자는 ‘정보 비만증’과 더불어 이 소셜 네트워크로 말미암은 ‘신경성 의존증’이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는지 지적한다.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은 ‘시간’을 평평하게 만들고 획일화한다. 컴퓨터 화면에서 좀 더 일찍 벗어나지 못한 날에는 하루가 더 짧게 느껴진다. 혹여 누군가 내 시간을 도둑질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편안히 쉬지 못한다. [...]다시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 와도 예전처럼 더 이상 ‘다른 곳에’, 남들이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안식처에 머물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인터넷은 집콕족이 자신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활력을 선사하고 각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낯섦’의 느낌을 더욱 희귀하게 만든다.-본문 68~69쪽

인터넷은 또한 ‘거주 형태’ 즉 공간에 대한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예전에는 많은 행위가 다양한 신체 자세, 집의 공간이나 외부로 이동하기, 다양한 도구와 기구를 사용하기 등을 전제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모든 게 컴퓨터 화면과의 대면만으로 이루어진다. 전화하기, 읽기, 편지 쓰기, 글쓰기, 그리기, 정보 수집하기, 쇼핑하기, 음악 듣기, 영화 보기 등. 우리는 컴퓨터뿐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집 어디서든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서 ‘집 안의 공간’을 소홀히 여기게 되었다. 저자는 사람들이 늘 한군데서만 머무느라 집을 가꾸고, 문제점을 보완하고, 충분히 투자하는 일을 거의 포기한 채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에게 시간은 ‘돈’일까 ‘삶’일까
팔레스타인의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심오한 것들을 들을 수 있는 방이다”라고 했고, 예술 비평가이자 문학 교수인 마리오 프라츠는 집에 대한 감각이 없는 사람은 ‘자기 안에 음악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집이란 이렇게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을 발견하는 곳, 자신의 또 다른 면모들을 함양하게 하고, 자기 정체성에 숨구멍을 틔워 줄 수 있는 일종의 ‘시간적 배양기’ 역할을 하는 곳, 즉 ‘하우스’가 아닌 ‘홈’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는 집 고유의 기능을 느낄 만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게 만드는 사회에서 어떻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에게로 갈 수 있을까? 너무 애쓰지 않고도 욕망의 무사태평함만이 지배하는 은총의 상태에 안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회가 점점 더 인색하게 허용하는 일과의 면제가 없이는 우리 모두가 ‘시간의 엄격한 분할’이라는 동일한 체제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구속은 우리의 삶을 고갈시키며, 무엇보다 우리가 집과 그 효용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본문 172쪽

저자는 시간 부족의 원인을 자본주의로 말미암은 시간 개념의 도입으로 보며, 그것이 내포하는 사회적 폭력을 살펴본다. 법적 근로시간이 35시간인 프랑스 노동자들도 평일에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자신만의 시간을 향유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주말에는 미루어둔 취미생활과 집안일을 신경 쓰다가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월요일을 맞는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에의 무한한 헌신과 희생의 가치를 앞세움으로써 노동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노예화에 협력하게 만들 만큼, 그리하여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포기하게 할 만큼 위협적인 힘을 지닌 주의(主義)를 전파했다. 즉 법적인 근로시간 규정뿐만이 아니라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라는 개념 등이 전파되면서 ‘효율성이란 질병’이 퍼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내려놓는’ 데 그토록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건 단지 물질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스스로 빗장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집에서의 시간과 그것이 주는 여러 해택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온 정신적, 법적 제약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집 안을 저절로 청소해주는 집 요정 ‘도비’는 없다
소피 디브리의 소설 《교외의 마담 보바리》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점차 자신이 어떤 덫에 걸렸는지 깨달으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가정을 이룬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여왕인 동시에 노예가 되는 것.” 20세기 이전만 해도 프랑스에서 집안일은 하녀가 담당했다. 19세기의 영국에 관해 빌 브라이슨은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의 가정에서 로봇 가전제품들을 소유하듯 하인들을 고용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널리 퍼진 20세기 이후 하인제도는 가정부가 아닌 ‘여성’으로 대체되었고, 여성은 ‘임금 노동’과 ‘가사 노동’이라는 ‘이중 노동’의 덫에 갇혀 버렸다.

주부들로 하여금 과거에 하녀들에게 떠맡겼던 역할을 다시 맡게 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공공연한 경멸의 대상이 되어 왔던 집안일을 한껏 찬양해야만 했다. 그런 식으로 찬란한 미래를 기약하는 이미지가 탄생했으며, 그 주인공들이 제정신이 돌아와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속고 살았는지를 깨닫지 못하도록 이미지를 끊임없이 쇄신해야만 했다. 혼을 빼 놓을 정도로 요란한 찬사들의 합주를 조직하고, 그들이 얼마나 필수적인 존재인지를 강조하고,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놀라운 정돈 감각에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그들이 군림하는 집 안 풍경의 아름다움 앞에서 황홀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본문 263쪽

또한 하인제도는 ‘불가시성(不可視性)’이란 유산도 남겼다. 돌아보면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집 안의 누군가가 온힘을 다해서 구석구석 청소하는 모습을 불편해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런 가사의 광경을 ‘지켜보기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해리포터》 속 도비들의 행위와 같이 ‘마법을 부린 것처럼’ 깨끗해지고 잘 정돈된 집 안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게 해 준다. 문제는 이런 ‘불가시성’이 집안일을 하찮은 것으로 보람 없고, 무가치한 일로 인식하는 데 일조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퇴근을 하고도 앨리 혹실드의 책제목처럼 ‘두 번째 직장’에 출근하며 ‘별것 아닌’ 집안일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을 하든 여성들은 여전히 하인 제도의 낙인이 찍힌 채로 살아가고 있다. 1960년대부터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대거 돌아온 사실이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크리스틴 델피가 지적한 것처럼, 여자들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이중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건하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을 뿐이다.-본문 272쪽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이탈리아, 영국, 미국 그리고 캐나다의 페미니스트들은 가사라는 족쇄가 평등의 실현을 언제까지고 방해할 거라고 확신하며 ‘가사급여’의 지급을 주장했다. 그러나 또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이 가사급여가 오히려 여자들을 ‘냄비 앞으로 돌려보낸다’고 비난했고,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가사급여는 ‘나무다리에 고약을 바르는 격’이라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저자는 가사급여를 주장하는 이들 덕분에 ‘여성은 가정생활에 적합하다’는 진화심리학을 깨뜨릴 수 있었다며, 어떠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더라도 논의 자체는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보완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핵가족 외에 다른 해법을 찾아낸 ‘탐험가’들을 만나다
1인 가구, 무자녀 커플, 한부모가족 그리고 재구성 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거 형태의 기준은 공간 구성부터 관련 법규까지 여전히‘핵가족’이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가족상에 얽매여 있다. 그러나 가정 형태의 다양화가 시작된 지 오래인 서구권에서는 주거비와 불안정성의 증가 때문에 혁신하고자 하는 사람들,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려는 사람들, 자신들이 사는 공간을 달리 구분하고자 하는 이들이 등장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자녀가 있거나 없는 커플, 독신자, 퇴직자 등등 다양한 유형의 가정들로 구성된 공동체적인 주거를 지향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공동 거주의 원칙은 대략 다음과 같다. 독립적이지만 서로 이웃해 있는 집들은 필요한 공간들을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프랑스에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협동 주거는 주민들로 하여금 삶의 환경의 정비, 경영 그리고 향유에 있어서 모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법률적 구조를 제공한다. 이러한 주거 형태는 북부의 나라들에서 특별히 발전해 왔다.-본문 333~334쪽

협동주거는 각 개인이 주거하는 방 이외 대부분을 공동 공간으로 한 형태로 스트라스부르의 에코 로지(Éco-Logis)가 대표적이다. 공동 셋집도 대안으로 떠올랐는데 일반 집과 똑같은 사적 모듈과 공동 식당, 공동 응접실이 결합된 형태로 연합 주거 협동조합 코다(CODHA)가 제네바에 건설한 미래 친환경 단지가 있다. 이러한 주거 공간들은 1인 가구, 한부모 가정, 독거노인, 고령 가정 등 급증하고 있는 새로운 가족 형태에 최적화된 곳일 뿐 아니라 오늘날 출산율을 저해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공동 육아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개인. 이것은 이제 독신자, 과부와 홀아비, 이혼자, 편부모 모두의 상황이 될 터다. 그들은 각자 공동 셋집에서 살거나 협동 주거지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고령자나 더 이상 가족과 함께 살 수 없게 된 이들에게 이러한 해결책은 고독을 해소하고, 반드시 터무니없이 비싸지는 않은 집세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양로원에 가는 것을 피하게 해 준다.-본문 358쪽

아예 집세를 ‘분담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1980년~ 2000년대 말까지 제네바에서는 약 30년간 무단 점거, 즉 스쾃 운동(squatting)으로 160군데가 넘는 장소가 점거된 적도 있었다. 스쾃 운동은 도시 속 빈 공간을 무단으로 점거해 주거하는 것이기에 불법 행위다. 그러나 실제 제네바 출신으로 스쾃 운동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저자는 자본주의적 규율에 지배받지 않으며, 연인이나 혈연관계도 아닌 사람들이 모여 주거를 할 수 있다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런 시도들은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 삶의 모델을 개선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물론 언제나 쉽지만은 않으며 가능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물려받은 시스템의 근원과 기능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그것에 저항하기 위한 무기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집 주인’이라는 성배를 거머쥔 자들은 누구인가
상당수의 사람이 물가 폭등과 더불어 적당한 주거지를 찾는 과정에서 불평등과 지배관계라는 폭력과 마주친다. 프랑스는 1998년과 2011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평균 158퍼센트, 파리는 4배나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인들이 집을 구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 공통된 선택지가 존재한다. 집을 빌리거나 은행과 함께 소유하는 것, 혹은 직접 짓거나 상속받는 것. 일단 집을 구하는 첫 번째 선택지인 전월세를 택하는 순간, 우리는 ‘집 주인’이라는 성배를 거머쥔 자들의 갑질에 시달린다.

삶의 기본적 여건인 보금자리를 추구하는 일은 유난히 노골적이고 격렬한 지배 관계와 부딪히기 마련이다. 결핍은 그것에서 모종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치의 어떤 이들에게 가장 저열한 본능을 부추기기도 한다. 악덕 집주인들은 공식 부동산 시장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누추한 집을 세놓으며 터무니없는 집세를 요구한다. 심지어 세입자나 집주인이 젊은 여성에게 동거나 성관계를 조건으로 원룸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본문 102쪽

한두 해마다 집을 옮기는 것에 질리고, 집주인의 횡포에 백기를 든 사람들이 첫 번째로 향하는 곳은 부동산이 아닌 ‘은행’이다. 프랑스에서는 주택 구매의 85퍼센트가 대출로 이루어진다. 평균 대출 기간도 2000년 13년에서 2014년 20년으로 늘어났다. 철학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에 따르면 중세시대에는 대부업자들을 ‘처형’했다. 대부업자들이 파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 즉 ‘그들의 것이 아닌, 오직 신만이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빚은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이며, 이런 장기 대출로 채무자들은 집이 주는 안정성을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부채로 인해 저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빚진 자들은 살아가는 동안 단 한 번의 사고에도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또한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기대 속에서 계속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악순환을 맞이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적은 비용으로 살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현실’이 서구 사회가 높이 평가해 왔던 다양한 진보의 퇴색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은퇴할 나이가 다 된 성인들이 다른 이들과 공동으로 세 들어 살아야만 한다면, 마치 빈곤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소련의 공동아파트에서 여럿이 동거하던 것 같은 상황을 겪어야 한다면,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운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심지어 세대 간의 단순한 역학 관계, 즉 성인이 된 자녀는 자신의 자율성을 획득하도록 되어 있으며, 적어도 자기 부모의 삶과 동등하거나 그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마저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아무 제약 없이 ‘이상적인 집’을 상상해봐야 하는 이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해본 때를 기억하는가? 《빨간 머리 앤》을 읽으며 나만의 다락방을, 《톰소여의 모험》를 읽으며 나무 위의 오두막을, 《반지의 제왕》을 보며 호빗의 집을 갖고 싶다는 유의 상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집안의 경제상황과 현실의 제약을 알게 되면서 이런 상상은 차차 줄어든다. 내 집을 마련할 나이쯤 되면 ‘살 집’보다는 ‘팔 집’에 적합한 조건들, ‘가격 상승 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조건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불꽃놀이가 지나간 뒤에는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단조로운 집들의 수많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 건축 및 도시와 관련된 선택들이 우리의 일상을 형성하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처한 환경과의 관계 및 서로 간의 관계, 즉 우리의 모든 삶을 결정짓는데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놀라우리만치 여전히 자료에 의해 뒷받침되지도, 분석되거나 논의되지도 않고 있는 실정이다.-본문 383쪽

우리가 집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서 공간이 사람에게 일정 이상의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현대에 이르러 ‘공간 심리학’이란 말이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다가 ‘부엌에서 아침 먹기, 서재에서 글쓰기, 아틀리에에서 친구들과 식사하기 등’ 반복되는 한정된 행위들로 일상이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일정한 행위들이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행위들의 질에 우리 삶의 질이 달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자신의 일상과 관련이 있는 곳, 가족 구성원의 특성에 들어맞는 곳에 살고 있을까? 우리가 사는 남들의 기준에 맞춘 곳이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생각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반대로 이런 자질이 결여된 장소는 우리로 하여금 에너지를 방출하지 못하게 하면서, 삶에 대한 감각과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들을 야기함으로써’ 삶이 포함한 가능성을 파괴한다. 우리를 풀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얽힌 매듭들 속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본문 389쪽

그러나 오늘날 자신의 일상과 취향을 고려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엄청난 부자들만이 가능한 일이다. “건축가들은 부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지 오래며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공간 다양성이 부재한 곳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실에 균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20년 전부터 학생들과 함께 앨라배마의 오지에 사는 빈민들을 위해 재활용한 재료로 공공 주택과 건물을 짓는 루럴 스튜디오는 건축 전에 반드시 미래 집 주인과 의견을 조율한다. 이들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공간을 구상하고 스스로 집을 짓고 사는 코펜하겐의 ‘자유 도시’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등의 예를 살펴봄으로써 저자는 집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다시금 일깨운다. 물론 경제적, 가정적, 또는 직업적 제약이 있는 한 꿈꾸는 집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상상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현실과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종횡무진 오디세이
저자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집’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크리스토퍼 알렉산더《패턴 랭귀지》, 가스통 바슐라르《공간의 시학》, 아키코 부시 《집의 지리학》과 같은 ‘공간’ 관련 도서를 파헤치고,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조앤 K. 롤링 《해리 포터》,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반 곤차로프 《오블로모프》와 같은 문학 작품 속을 들여다본다. 또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베티 프리단 《여성의 신비》등 여성학,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하르트무트 로자의 저서 등 사회학,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타워즈 4>, 드라마 <가십 걸> <위기의 주부들> <마스터스 오브 섹스> 그리고 다큐멘터리와 회화 작품까지 종횡무진하며 집을 다면적으로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의 관점을 해체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집’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낯선 여정의 끝에서 집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 또한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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