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

이덕일 지음 | 옥당(북커스베르겐) 펴냄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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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

출간일

2009.2.16

페이지

528쪽

상세 정보

남성중심의 편견을 깨뜨리고 싶을 때
현대에 다시 부활하는 역사 속 위대한 여인들

우리 역사 속 여인들의 만들어진 이미지, 그 허상을 벗기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이 땅에 태어난 여성들이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출가외인’과 ‘여필종부’의 길을 거부했다. 저자 이덕일은 우리 역사 절반의 주인공인 여성들 25명의 실제적 삶을 추적해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당당히 살고자 했던 그녀들의 삶과 도전, 성공과 좌절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천명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나라를 두 개나 개창한 소서노, 스스로 천인에서 귀족으로 신분상승한데서 그치지 않고 천인들의 삶의 질 개선에 노력한 정난정, 여필종부의 이념을 거부하지는 못했지만 시詩라는 피안의 세계에서 자아를 실현한 허난설헌, 여필종부의 이념을 거부하고 예술가의 자유를 추구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간 나혜석 등등이 그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필종부의 이념이 옳다는 확신 속에서 다른 여성들을 옭아맨 인수대비 한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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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 여인들의 만들어진 이미지, 그 허상을 벗기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이 땅에 태어난 여성들이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출가외인’과 ‘여필종부’의 길을 거부했다. 저자 이덕일은 우리 역사 절반의 주인공인 여성들 25명의 실제적 삶을 추적해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당당히 살고자 했던 그녀들의 삶과 도전, 성공과 좌절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천명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나라를 두 개나 개창한 소서노, 스스로 천인에서 귀족으로 신분상승한데서 그치지 않고 천인들의 삶의 질 개선에 노력한 정난정, 여필종부의 이념을 거부하지는 못했지만 시詩라는 피안의 세계에서 자아를 실현한 허난설헌, 여필종부의 이념을 거부하고 예술가의 자유를 추구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간 나혜석 등등이 그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필종부의 이념이 옳다는 확신 속에서 다른 여성들을 옭아맨 인수대비 한씨도 있었다.

출판사 책 소개

우리 역사 속 여인들의 만들어진 이미지, 그 허상을 벗기다!
우리 역사 속에서 ‘출가외인’과 ‘여필종부’가 바람직한 여성상의 전형으로 떠받들어진 것은 불과 3백여 년 남짓한 기간이다. 게다가 역사서를 전부 남성들이 썼기 때문에 여성을 실제 삶보다 훨씬 종속적인 인물로 그리거나 그 의미를 왜곡하기도 했다.
5만 원 권 지폐 인물선정 해프닝에서 보이듯, 여성 본인의 행적과는 다르게 왜곡된 이미지의 전형으로 낙인찍는 작업은 남녀평등사회라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대여성들의 달라진 사회적 위치와 그럼에도 여전한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도발이다.

신사임당이 들어간 5만 원 권 지폐가 빠르면 올해 5,6월쯤 유통된다. 이 지폐에 들어가는 인물 선정으로 세상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줄곧 ‘남자’ 위인들만 있었는데 이제 여자도 선정되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는 견해에서부터 신사임당 개인의 삶이 훌륭해서라기보다 율곡 어머니라서 뽑힌 게 아니냐며 ‘엄친아’에 빗대 조선시대판 ‘아들친구 엄마’를 운운하는 지적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다보니 ‘실제 인물은 현모양처보다는 위대한 예술가인 면이 많아 이제부터 재해석한다’는 촌극도 벌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신사임당이 ‘후대에 만들어진 현모양처 이미지’라는 데 있다.

신사임당, 그녀는 과연 현모양처인가?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에서 저자는 ‘아들 율곡 이이가 쓴 <나의 어머니 일대기[先?行狀]>에서 전하는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말한다.
신사임당은 부친 신명화의 집도 남편 이원수의 집도 아닌 강릉에서 혼인했다. 혼인한 후에도 강릉에 머물렀고 혼인한 지 3년이 지나서야 시어머니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시댁으로 완전히 들어온 것은 혼인하고 19년이 흐른 뒤였다. 중하위 관직에 머물렀던 신사임당의 남편은 별다른 내조를 받지 못했고 아들 이이 역시 사임당이 죽은 뒤 비로소 이름을 드러냈다.
어쨌든, 그녀는 유학 사회에서 말하는 양처良妻나 현모賢母와는 거리가 멀었다. 신사임당 본인도 훗날 ‘현모양처의 전형’이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 연유를 추적해나간다. 조선 후기 성리학이 유일사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남성 중심, 장손 중심의 종법이 확고해졌는데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여성상의 대부분이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필종부女必從夫’, ‘삼종지도三從之道’, ‘현모양처賢母良妻’, ‘출가외인出嫁外人’, ‘칠거지악七去之惡’과 같은 말들로 덧칠해진 여성상이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거기에 더해 우암 송시열이 한몫했지 싶다며 덧붙인다. 송시열은 <사임당이 그린 난초에 발하다[師任堂?蘭跋]>라는 글에서 ‘내가 일찍이 들으니 율곡 선생이 겨우 말을 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아들이 부모를 섬기는 그림을 그리고 (중략) 그 그림이 남아 있다면 이 첩帖(난초) 밑에 붙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인(사임당)의 어머니됨과 선생의 아들됨이 실로 근원이 있어서 서로 이은 것임을 알게 해서 상곡군上谷君의 집안만이 앞에서 홀로 빛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써 전기를 마련했다.
상곡군은 주희와 함께 성리학을 집대성한 송나라의 정호程顥를 뜻한다. 그의 모친 후씨는 후덕하고 법과 인서로 집안을 다스렸다고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정호와 정이程?라는 걸출한 두 성리학자를 배출한 것을 가장 높게 평가받는다. 송시열은 ‘중국에는 후씨 부인과 정씨 형제가 있다면 조선에는 신씨 부인과 율곡이 있다’면서 사임당과 이이를 극찬했다. 그 후에도 그는 여러 번 이이와 사임당을 묶어 추앙했고 사임당이 부덕의 전형으로 떠받들어지면서 이후 서인·노론 계열 유학자들이 다수 사임당 예찬에 가담했다. 더불어 이이가 백세의 스승으로 떠받들어지면서 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각인되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신사임당의 실제 모습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사임당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사대부의 질서, 곧 조선의 질서에 맞섰던 절개 있는 여인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사임당이 혼인한 중종 때는 ‘혼인의 예가 바른 뒤에야 군신·부자의 도리가 따라서 바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가는 것은 천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전교를 내릴 정도로 사회 전체를 성리학적 질서로 바꾸려는 분위기가 강한 시기였다. 하지만 사임당은 신랑이 신부를 데려와(친영) 신랑집에서 혼인식을 하는 ‘중국식 친영례’로 자신의 인생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임당의 결혼과 이후 19년 동안이나 친정에서 기거한 행적은 당시의 성리학적 질서에 대단히 반하는 것이었다.
사임당의 또 다른 진면목은 자신의 재능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는 데 있는데 학문적 재능은 이이가, 예술적 재능은 넷째 이우와 맏딸 이매창이 받았다. 특히 이이의 세계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서 이理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보던 기氣를 이와 동등한 가치로 끌어올렸다. 이이의 이런 융합적인 세계관과 함께 사림의 분당을 아파하고 당론을 조절하려는 조제론調劑論을 펼친 것 역시 집안 사람들을 다 화평하게 끌고 가는 사임당의 집안경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성 지배구조에 의해, 여성억압 이념에 의해, 그리고 모든 역사서를 남성이 쓰는 까닭에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된 여성들이 우리 역사에는 꽤 많이 존재한다. 천추태후와 선덕여왕 역시 그런 연유로 그릇된 이미지를 갖게 된 피해자들이다.

천추태후와 선덕여왕, 그들을 따라다니는 왜곡된 이미지들

우리에게 천추태후는 한마디로 가부장제의 도덕률을 유린한 탕녀다. 이미 장성한 아들을 두었음에도 섭정을 감행한, 사랑하는 여동생이 낳은 조카 순을 없애버리려고 하면서까지 권력욕에 눈이 멀었다는 욕을 먹는 여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 이덕일은 그 정도로 한정시키기에는 고려 초기에 남긴 족적이 매우 큰 여인이라고 평한다.
천추태후는 오빠 성종의 중국식 유학정치 체제에 맞서 고려 전통을 지키고 나아가 고려를 대제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지각 있는 여걸이었다. 중국식 유교 정치체제가 고려를 약국으로 만들고 있다고 확신한 그는 오빠인 성종의 잘못된 정책을 되돌려놓는 데 섭정을 이용한다. 먼저 자신을 제후의 어머니인 ‘대비’가 아닌 ‘태후’로 부르게 해 고려를 황제국으로 만들려는 구상에 불을 붙인다. 귀양 간 김치양을 불러들여 고려 전통부활 정책을 돕도록 하며 북진을 강조했던 왕건의 유훈을 실천하기 위해 아들인 목종에게 네 번이나 평양에 행차하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통사찰의 창건, 연등회?선랑?팔관회 등 고려 전통행사 부활 등은 성종 때 고사될 뻔했던 고려의 전통사상들을 대거 회복시켰다.
꼬리처럼 붙어 다니는 ‘김치양과 간통한 음녀’라는 이미지 역시 고려 당대의 정조관념으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승자들은 천추태후의 모든 정책은 은폐한 채 김치양과의 사통관계만을 강조해 음녀로 각인시킨 것이었다.
선덕여왕 역시 ‘남편을 셋이나 갈아치운 색녀’, ‘골품제 덕에 임금이 된’ 이미지로 왜곡돼 있다. 거기에 더해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선덕여왕을 일컬어 ‘신라는 여자를 세워 왕위에 있게 하였으니 진실로 난세의 일이며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라고 혹평까지 했다.
사실 신라에서 국왕의 남녀관계는 단순한 육욕만족의 차원이 아닌 왕실의 번영을 희구하는 필수적인 의식이자 신국의 도이기도 했다. 신라 당대인의 눈으로 볼 때 숙부와 조카 사이는 사랑하는 데 별 장애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지배계급 사이에서는 친족간의 사랑이 장려되었다. 이에 따라 선덕여왕은 ‘여왕은 3명의 남편을 둘 수 있게 하는’ 삼서지제三壻之制를 제도화해 숙부 용춘 외에도 흠반과 을제를 남편으로 삼았다.
선덕여왕은 성골 남자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핏줄을 잘 타고나서 굴러들어온 왕자리를 손쉽게 꿰찬 케이스가 아니었다. 천명이라는 언니가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하고 풍월주로서 큰 업적을 이룩한 숙부 용춘이 왕위에 오르려는 찰나에 남자만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용춘에게 왕위를 양보하기는커녕 그를 사신(개인적으로 거느리는 신하. 여기에는 남편이란 뜻도 있음)으로 쓰겠다는 선덕의 말에 탄복한 진평왕은 선덕의 왕위계승을 승낙하고 만다.
저자는 김부식의 혹평과 관련해 ‘삼국 중에서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삼국통일의 꿈을 현실로 바라보게 된 시기가 바로 선덕여왕 때였다’며, 이는 ‘남성우월주의와 유교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편견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선덕여왕의 뒤를 또다시 여성인 진덕이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김부식의 말대로 망하기는커녕 불과 10여 년 후 삼국을 통일하는 기염을 토했다. 선덕여왕은 나아가 황룡사 9층탑을 세워 신라가 삼국 중 중심국가가 되는 비전을 제시했다. 전시에 전선을 누빌 수 없는 여왕이라는 핸디캡을 김유신, 김춘추 등 적극적인 인재등용으로 타개하고 신라가 나아갈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초를 세운 선덕여왕은 담대한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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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이 땅에 태어난 여성들이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출가외인’과 ‘여필종부’의 길을 거부했다. 천명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나라를 두 개나 개창한 소서노, 조선이 패쇄적인 성리학 유일사상으로 치달을 때 개방을 주장한 소현세자빈 강씨, 스스로 천인에서 귀족으로 신분상승한데서 그치지 않고 천인들의 삶의 질 개선에 노력한 정난정, 여필종부의 이념을 거부하지는 못했지만 시詩라는 피안의 세계에서 자아를 실현한 허난설헌, 여필종부의 이념을 거부하고 예술가의 자유를 추구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간 나혜석 등등이 그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필종부의 이념이 옳다는 확신 속에서 다른 여성들을 옭아맨 인수대비 한씨도 있었다.
사실 우리 역사 속에서 ‘출가외인’과 ‘여필종부’가 바람직한 여성상의 전형으로 떠받들어진 것은 불과 3백여 년 남짓한 기간이다. 게다가 역사서를 전부 남성들이 썼기 때문에 여성을 실제 삶보다 훨씬 종속적인 인물로 그리거나 그 의미를 왜곡하기도 했다. 저자 이덕일은 우리 역사 절반의 주인공인 여성들 25명의 실제적 삶을 추적해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당당히 살고자 했던 그녀들의 삶과 도전, 성공과 좌절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5만 원 권 지폐 인물선정 해프닝에서 보이듯, 여성 본인의 행적과는 다르게 왜곡된 이미지의 전형으로 낙인찍는 작업은 남녀평등사회라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대여성들의 달라진 사회적 위치와 그럼에도 여전한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도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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