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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15.12.22
페이지
399쪽
상세 정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지금도 12만 명 이상이 피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고 수습은커녕 원인 규명조차 되지 않았다. 3.11 사고 당시의 공포, 원전 사고라는 대재앙이 파괴한 일상, 몸과 마음의 고통이 점점 더 극심해지는 현실이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세세히 드러나 있다. 후쿠시마 현 주민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신문 아카하타>에서 연재중인 후쿠시마 주민 인터뷰 중 94명의 목소리를 묶었다. 국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외치며 여전히 끈끈히 연대하고 있는 후쿠시마 사람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4천여 명이 원고가 된 집단 소송을 통해 '탈원전'을 이루려는 피난민들, 그 3년 8개월의 기록이다.
사고 5년이 되어가는 현재에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을 뿐더러 피해 구제의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사고 원인의 해명은커녕 아베 정부는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으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통제하고 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후쿠시마와 주민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의문의 답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에 원전이 들어설 때 왜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지 않았는지를 후회하고 곱씹는다.
상세정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지금도 12만 명 이상이 피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고 수습은커녕 원인 규명조차 되지 않았다. 3.11 사고 당시의 공포, 원전 사고라는 대재앙이 파괴한 일상, 몸과 마음의 고통이 점점 더 극심해지는 현실이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세세히 드러나 있다. 후쿠시마 현 주민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신문 아카하타>에서 연재중인 후쿠시마 주민 인터뷰 중 94명의 목소리를 묶었다. 국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외치며 여전히 끈끈히 연대하고 있는 후쿠시마 사람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4천여 명이 원고가 된 집단 소송을 통해 '탈원전'을 이루려는 피난민들, 그 3년 8개월의 기록이다.
사고 5년이 되어가는 현재에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을 뿐더러 피해 구제의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사고 원인의 해명은커녕 아베 정부는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으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통제하고 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후쿠시마와 주민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의문의 답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에 원전이 들어설 때 왜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지 않았는지를 후회하고 곱씹는다.
출판사 책 소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지금도 12만 명 이상이 피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고 수습은커녕 원인 규명조차 되지 않았다. 3.11 사고 당시의 공포, ‘원전 사고’라는 대재앙이 파괴한 일상, 몸과 마음의 고통이 점점 더 극심해지는 현실이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세세히 드러나 있다. 후쿠시마 현 주민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일상을 돌려달라”, “원전을 없애고 속죄하라” - 국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외치며 여전히 끈끈히 연대하고 있는 후쿠시마 사람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4천여 명이 원고가 된 집단 소송을 통해 ‘탈원전’을 이루려는 피난민들, 그 3년 8개월의 기록. 연재중인 〈신문 아카하타〉의 후쿠시마 주민 인터뷰 중 94명의 목소리를 묶었다.
[출판사 서평]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후쿠시마는 방사능으로 뒤덮인 죽음의 땅 정도로 인식된다. 체르노빌과 비견될 거대한 황무지에 망가진 원전과 쓰나미의 잔해가 어지러이 뒤엉켜 있는, 인적 없는 공포의 대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후쿠시마 현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있기 전까진 200만 명의 생활 터전이었다. 농수산물이 고루 유명한 비옥한 환경에서 후쿠시마 사람들은 현의 기후처럼 온화하게 살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진 그들은 여전히 후쿠시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후쿠시마를 떠나 인근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13만여 명이다. 그리고 피난 생활 도중에 사망한 후쿠시마 사람은 1,800여 명으로 쓰나미와 지진으로 인한 직접 사망자 수를 이미 넘어섰다(사망실종자 1만8천여 명 중 확인된 후쿠시마 현 주민은 1,607명). 농사를 지으며, 혹은 고기를 잡으며 소소하지만 건강한 생계를 꾸려가던 고령자들은 좁은 가설 주택에서 아무 보람 없이 수년을 보내며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다.
많은 후쿠시마 주민은 “지진과 해일만이었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의 역사에서 그랬듯, 그들은 묵묵히 땅을 갈고 집을 다시 짓고 배를 수리해 몇 년 안에 지역을 재건했을 것이다. 그들이 고향에서 생을 이을 수 없게 한 ‘3.11’이라는 대재앙은 다름 아닌 ‘원전 사고’였다. 방사능 유출로 구조 작업은커녕 접근 자체가 통제됐고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의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몸과 마음에 입은 피해는 조금씩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책임을 회피하고 구제를 방관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사람들은 ‘피해자’에 머물러 있지 않기로 했다. “생업을 돌려줘! 지역을 돌려줘!”라는 이름의 후쿠시마 원전 소송이 그 의지의 표출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한 이 소송은 후쿠시마 현 내 59개 시정촌에서 4천여 명이 원고로 참여한 대규모 집단 소송이다. 원고단의 첫 번째 요구인 ‘원상복구’는 단순히 사고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피해의 원인이었던 원전을 없애자는, 다시 말해 “방사능도 없고, 원전도 없는 지역을 만들자”는 넓은 의미에서의 ‘원상회복’이다. 이는 ‘전체 구제’를 요구함으로써 국가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피해에 걸맞은 구제 의무를 부여하려는 점, 후쿠시마와 같은 피해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탈원전’을 요구하는 점 등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거대한 인재에 맞서 싸워온 94명의 목소리,
그 3년 8개월의 기록
이 책에 등장하는 후쿠시마 주민의 대부분이 이 ‘생업 소송’의 원고다. 변호단 사무국장인 미나기 이즈타로 씨는 법정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우리가 맛본 고통, 괴로움을 결코 다른 사람들이 경험해선 안 된다. 우리 원고단은 원전 사고로 곤란에 빠졌지만, 일본인들이 그 일로부터 명백한 교훈을 얻어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는 세계적 평가를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원고단장 나카지마 타카시 씨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큰 장애물을 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의 민주주의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고향을 버린 것도, 국가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원전’이라는 거대한 불행의 근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줄곧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후쿠시마에 산다》에 등장하는 후쿠시마 주민은 94명이다. 〈신문 아카하타〉에서 현재까지도 연재중인 후쿠시마 주민 인터뷰를 2014년 11월 5일 자 분까지 묶었다. 나이와 직업은 물론 사고 피해의 정도, 피난 상황 등 처지가 다양하고 극복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들 또한 방사능 피해를 두려워하고 “후쿠시마 여자와는 결혼하면 안 된다”는 폭언이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지에 대한 불안, 타 지역과의 사업 거래 두절과 같은 편견, 대대손손 이어 온 가업의 몰락, 불합리한 배상 문제 등 구체적인 고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원전은 없어져야 한다”는 인식은 모두 같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피난소, 친척집 등을 전전하며 친구들과 헤어진 여고생 요시노 씨는 라디오방송 진행자가 되어 후쿠시마의 현실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꿈이다. 시설 이용자들이 해일에 휩쓸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 물리치료사 사토 씨는 후쿠시마를 떠나지 않고 재활센터에서 일한다. 농부 사사키 씨는 수확한 채소를 피난민들이 사는 가설 주택에 공급하고 있다. 오부치 씨는 방사능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알리기 위해 ‘원전재해정보센터’를 열었다.
매주 열리는 ‘후쿠시마 금요행동’에 참가해 원전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원전을 대체할 태양열 발전 설치에 몰두하는 사람들, 증언록과 가이드북, 노래와 사진, 그림으로 후쿠시마의 실상을 알리는 예술가, 피난소 옆에 텃밭을 만들고 방사능 수치를 계측하며 시험 재배에 힘쓰는 농민, 가설주택에서조차 취미를 만들고 이웃을 격려하는 노인, 오히려 후쿠시마로 들어와 피난민을 돕는 의사, 변호사 등 차분하지만 단호한 등장인물들은 “후쿠시마야말로 ‘원전 제로’의 신호를 발신할 수 있는 곳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원전만 없었어도….”
‘후쿠시마 발’ 외침을 들어야 하는 이유
사고 5년이 되어가는 현재에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을 뿐더러 피해 구제의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사고 원인의 해명은커녕 아베 정부는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으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통제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후쿠시마와 주민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의문의 답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에 원전이 들어설 때 왜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지 않았는지를 후회하고 곱씹는다.
이 ‘후쿠시마 발’ 외침을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후쿠시마 주민이 직접 말한 ‘충격 르포’나 ‘감동 실화’이기 이전에 ‘국가의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절대 안전하다”던 일본의 원전 안전 신화가 이미 깨졌고 세계적으로 원전을 줄이는 추세임에도 우리 정부는 아랑곳없이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6개월 후인 2012년 9월에 경북 영덕군을 원전 건설 예정지로 지정 고시했고, 이를 둘러싼 반대 주민과의 갈등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헌법이 규정하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위해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국민이 목청껏 일깨워야 한다는 현실은 뼈아프다. 하지만 후쿠시마 주민들이 슬픔, 분노, 고통을 딛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피해자들의 연대와 저항이 얼마나 당연한 인간의 권리인지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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