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위대한 연설

이소크라테스 외 3명 지음 | 민음사 펴냄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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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9.21

페이지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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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그리스 #민주주의 #설득 #토론 #페리클레스

상세 정보

토론을 잘하고 싶은 직장인들에게
그리스 현인들로부터 배우는 설득의 마법

글쓰기로 세계를 움직인 그리스 수사학의 거장 4인, 연설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끈 페리클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꿈을 구상해 준 이소크라테스.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만이 훌륭한 연설가가 될 수 있다. 그리스 수사학의 목표는 ′지혜로운 인간′과 ′공동체의 회복′이다.

예증법, 연상 작용, 대조법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수사학자의 ′주관적인 진실′은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언어의 구성적인 힘은 바로 역사를 창조하는 동력을 만들어 낸다. 찬양과 비난의 균형, 과장과 축소의 미학을 보여 준 아테네 전설적인 연설가 4인, 그들이 ′말의 힘′으로 다수를 행동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는 열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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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goldstarsky

표지만 보고서 책을 안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교과서에 적힌 유명인들 이름은 줄줄 꿰면서도 정작 그가 행한 말과 행동을 모른다면 박식하다고 할 수 없다.

오늘도 거리는 스스로 박식하고 현명하다 자부하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이들이 넘쳐난다. 고대 아테네 연설가들의 연설문을 실은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은 우리를 이 같은 무지와 어리석음의 구렁텅이로부터 꺼내줄 밧줄 같은 책이다. 누구나 들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고대 그리스 사회의 진면목을 대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페리클레스부터 뤼시아스, 이소크라테스, 데모스테네스까지 존경받는 네 그리스인의 연설문이 실렸다.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의 전성기를 이끈 지도자로 아테네가 그리스의 주도권을 놓고 스파르타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끌었다. 뤼시아스는 당대 아테네 법정연설문 작성자 가운데 가장 명성 높은 인물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혼란한 아테네 정국에서 민주정체의 회복을 위해 애썼다. 플라톤의 경쟁자로 알려진 이소크라테스는 죽는 날까지 범그리스 통합과 동방정복을 꿈꿨다. 그가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2세에게 보낸 편지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정벌에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이 있다. 마지막으로 데모스테네스는 이소크라테스에 대응하는 인물이다. 전문연설가인 그는 마케도니아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경고하고 아테네가 그리스의 모든 힘을 모아 마케도니아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테네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산 이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아테네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연설로써 제시했다. 직접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아테네 사회에서 모든 결정은 시민에 대한 설득을 통해 이뤄졌으므로 말과 글은 국가를 이끄는 가장 큰 무기였다. 이들은 각기 민회와 전몰용사의 장례식, 시민대축전을 축하하는 자리, 법정 등에서 아테네가 처한 현실과 이를 타개할 방안을 이야기했다. 때로는 전쟁을, 때로는 참주의 처벌을, 때로는 저항을 이야기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가 그리스 전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스파르타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테네의 부강함이 스파르타를 압도하고 있으며 전력이란 그를 뒷받침하는 부에서 나오기에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페리클레스는 예기치 않은 전염병으로 전쟁을 제안한 그에게 시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르자 이를 달래고 전의를 북돋기 위해 연설을 적극 활용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전쟁이 불가피하며, 우리가 전쟁을 기꺼이 받아들일수록 더 약하게 공격하는 적을 가지게 될 것이고, 도시든 개인이든 가장 큰 위험으로부터 가장 큰 영예를 얻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페르시아에 맞섰을 때, 그들은 우리가 가진 만큼의 자원으로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도 버리고 운보다는 지혜로, 힘보다는 용기로 이방인들을 몰아냈고, 이 도시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우리가 그들에 못 미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적들을 막아 내어, 후손들에게 이 도시를 줄어들지 않은 상태로 넘겨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6,37p

뤼시아스는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은 30인의 참주가 쿠데타를 통해 아테네를 장악했다 일 년 만에 권력을 잃은 상황에서 법정연설에 나선다. 30인 가운데 한 명인 에라토스테네스에 대한 고발연설로, 민주정 수복 이후 쿠데타 세력을 관대하게 사면하는 분위기 가운데 행한 연설이다. 뤼시아스는 에라토스테네스에게 가문의 재산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형마저 살해당한 인물로 이 연설에서 사적 분노와 참주정에 대한 공분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인이 모두 모인 올림피아 축전 연단에서 발표된 연설문을 통해 범 그리스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무려 10년 동안 다듬고 또 다듬은 연설문 ‘시민 대축전에 부쳐’가 아테네인을 자극해 그리스의 뜻을 하나로 모으고 페르시아를 향한 정벌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는 자신의 뜻이 아테네를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에게 기대를 걸었다.

데모스테네스는 마케도니아를 통합하고 남쪽으로 눈길을 돌린 필립포스 2세에 적극적으로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정치가다. 그는 필립포스 2세의 야욕을 드러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아테네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함선과 병력, 용병의 보충과 보수의 지급, 편제까지를 아우르며 격정적인 연설을 토해낸다.

2400년 전 아테네에선 말로써 사람을 설득하고 공동체의 나아갈 바를 정하는 정치체제가 확립됐다. 민중(Demos)이 힘(Kratia)을 갖는 민주주의였다. 설득과 사고의 기술인 수사학과 철학이 고도로 발달해 이 체제의 근간을 이뤘다.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에 실린 각각의 연설은 고대 아테네 문명의 정수이며, 활자로만 남아 있던 역사에 숨결을 불어넣는 생생한 말과 글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대 아테네가 처한 위기를 돌파하려는 이 치열한 연설들이 수많은 물음표 가운데 포위된 우리의 오늘에 하나의 해법이 되어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

이소크라테스 외 3명 지음
민음사 펴냄

2023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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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글쓰기로 세계를 움직인 그리스 수사학의 거장 4인, 연설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끈 페리클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꿈을 구상해 준 이소크라테스.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만이 훌륭한 연설가가 될 수 있다. 그리스 수사학의 목표는 ′지혜로운 인간′과 ′공동체의 회복′이다.

예증법, 연상 작용, 대조법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수사학자의 ′주관적인 진실′은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언어의 구성적인 힘은 바로 역사를 창조하는 동력을 만들어 낸다. 찬양과 비난의 균형, 과장과 축소의 미학을 보여 준 아테네 전설적인 연설가 4인, 그들이 ′말의 힘′으로 다수를 행동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는 열정 때문이다.

출판사 책 소개

그리스 원전 국내 최초 번역!
"언어에는 역사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


그리스 수사학의 목표는 '지혜로운 인간'과 '공동체의 회복'이었다. 아테네의 전설적인 연설가들이 찬양과 비난의 균형, 과장과 축소의 미학을 보여 주면서 '말의 힘'으로 다수를 행동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열정 때문이었다. 전쟁에 지친 국민을 단호하게 이끈 페리클레스, 가장 뛰어난 법정연설문 작성자였던 뤼시아스, 정치적 수사와 ‘올바른 삶’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이소크라테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최고 웅변가가 된 데모스테네스, 세계 역사를 움직인 그리스 수사학의 거장 4인의 대표 연설을 통해 언어의 힘을 배운다.

“그런데 말은 동일한 것에 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중대한 일을 평범한 것으로 만들고, 사소한 것들을 중대한 것처럼 옷 입힐 수 있으며, 옛날의 일들을 최신의 것처럼 기술하고, 최근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고풍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주제로 삼아 먼저 말했어도 그 주제에 관해 말하는 것을 더 이상 피해서는 안 되며, 그들보다 더 훌륭하게 말하려고 시도해야만 합니다.”
―본문에서

올바른 생각을 말로 옮겨 설득으로 이끈다

정치 생활의 대부분은 말로 설득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말로써 자신의 이상을 표현할 수 있기에 말, 곧 연설은 민주주의의 꽃이다. 연설문과 수사학의 시작은 그리스 고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의 힘에 예민하게 주목했던 옛 그리스 사람들은 말이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사회와 정치체제를 구상”했다. 올바른 생각을 말로 옮겨 시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의 공론장과 유사한 민주적인 정치체제였다.

말로써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용기를 갖게 하는 언어의 마법,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를 찾아내며 절망의 폐허에서 희망의 왕국을 짓는 언어의 연금술, 그것을 그리스인들은 ‘연설가(rhe­tor)의 기술(-ike­)’, 곧 ‘수사학(Rhe­torike)’이라고 불렀다.

설득의 달인 4인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페리클레스는 군인이면서 동시에 대중 설득에 능한 뛰어난 정치가였다. 뤼시아스는 저명한 법정 연설문 작성가로, 그의 변론은 아테네 최고의 승률을 자랑했다고 한다. 명료하고 간결한 문체를 구사하여 속도감 넘치는 연설이 특징이다.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교사였던 이소크라테스의 수사학교를 세우고 탁월한 연설가와 정치가를 키워 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플라톤아카데미와 경쟁했으며, 플라톤이 그의 이론적 토대를 빌리기도 했다. 데모스테네스는 격정적이며 화려한 문체를 유감없이 발휘해 의회연설에서 최고의 기량을 떨쳤다. 데모스테네스는 “정치적인 직위를 차지하고 직접적인 영향력을 펼치는 대신, 대중 앞에 서서 연설로 설득을 일궈 냄으로써 정치적인 신념을 아테네에 실현했던 진정한 의미의 수사적 영웅”이었다.

4인의 연설가를 통해 그리스 고전기 역사를 톺아보기

수사학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도 더불어 꽃피웠다. 이 시기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화가 꽃핀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와 문화 모두 균형 있게 발전했던 그리스 고전기 역사를 이 책으로 톺아볼 수 있다.
4인 중 유일하게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주도했다. “스파르타의 위용에 움찔하던 아테네인들을 독려하여 기어이 전쟁터로 이끌어 냈던 것으로 보아, 그는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연설가”였다. 설득의 달인이었던 페리클레스의 독려로 아테네인들은 전쟁을 감수하지만, 결과는 패배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이상 정치의 리더십을 보여 준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 후 30년 가까이 진행된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이 났고, 패전국 아테네는 정치적으로 수모를 당해야 했다.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은 과두정파(30인 참주)가 권력을 잡으면서 민주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에 박해받던 민주투사 뤼시아스는 후에 자신의 형을 죽인 참주 에라토스테네스를 고소하였다. 뤼시아스는 “사원(私怨)의 차원을 넘어 공분(公憤)의 수준에서 에라토스테네스와 함께했던 무리들에 대한 처벌과 과거 청산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을 위한 “정치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서 연설가의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보고, 그리스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정치적인 처방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소크라테스의 연설문과 서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 이념적인 토대를 제공했으리라 평가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의 침략 위협에 직면해 있을 때, 아테네의 민주정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일찍이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이 품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감지하고 그를 경계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줄곧 던졌다. 아테네인들은 마케도니아를 과소평가하였지만, 데모스테네스만은 마케도니아의 잠재력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4인의 연설가를 통해 그리스 고전기 역사를 톺아보기

수사학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도 더불어 꽃피웠다. 이 시기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화가 꽃핀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와 문화 모두 균형 있게 발전했던 그리스 고전기 역사를 이 책으로 톺아볼 수 있다.
4인 중 유일하게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주도했다. “스파르타의 위용에 움찔하던 아테네인들을 독려하여 기어이 전쟁터로 이끌어 냈던 것으로 보아, 그는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연설가”였다. 설득의 달인이었던 페리클레스의 독려로 아테네인들은 전쟁을 감수하지만, 결과는 패배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이상 정치의 리더십을 보여 준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 후 30년 가까이 진행된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이 났고, 패전국 아테네는 정치적으로 수모를 당해야 했다.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은 과두정파(30인 참주)가 권력을 잡으면서 민주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에 박해받던 민주투사 뤼시아스는 후에 자신의 형을 죽인 참주 에라토스테네스를 고소하였다. 뤼시아스는 “사원(私怨)의 차원을 넘어 공분(公憤)의 수준에서 에라토스테네스와 함께했던 무리들에 대한 처벌과 과거 청산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을 위한 “정치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서 연설가의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보고, 그리스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정치적인 처방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소크라테스의 연설문과 서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 이념적인 토대를 제공했으리라 평가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의 침략 위협에 직면해 있을 때, 아테네의 민주정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일찍이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이 품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감지하고 그를 경계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줄곧 던졌다. 아테네인들은 마케도니아를 과소평가하였지만, 데모스테네스만은 마케도니아의 잠재력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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