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할 이유

제니퍼 마이클 헥트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살아야 할 이유 (자존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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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5

페이지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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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자존의 철학. 오래된 동료 시인 두 명의 자살을 목도하며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삶과 죽음을, 특히 자기 살해에 의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살은 인류 역사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는가? 자살을 논하는 철학자들의 시선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가? 현재의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역사학과 철학의 학문적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적, 학문적 역량을 이 책에 집약시킨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종교에서 철학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치밀한 분석을 통해, 삶이라는 고통 앞에서 힘들게 싸우며 버티는 사람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이 책은 저자가 시인의 감수성과 역사학자의 냉철함으로 자살이라는 다분히 모순적 행위의 실체를 파헤치는 하나의 <反자살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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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자존의 철학. 오래된 동료 시인 두 명의 자살을 목도하며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삶과 죽음을, 특히 자기 살해에 의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살은 인류 역사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는가? 자살을 논하는 철학자들의 시선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가? 현재의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역사학과 철학의 학문적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적, 학문적 역량을 이 책에 집약시킨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종교에서 철학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치밀한 분석을 통해, 삶이라는 고통 앞에서 힘들게 싸우며 버티는 사람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이 책은 저자가 시인의 감수성과 역사학자의 냉철함으로 자살이라는 다분히 모순적 행위의 실체를 파헤치는 하나의 <反자살론>이라 할 수 있다.

출판사 책 소개

“삶은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정말 끔찍하지요. 하지만 견디기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견디기 힘들 뿐입니다.”
힘들게 싸우며 버티는 당신을 위하여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살아야 할 이유>가 출간되었다. 오래된 동료 시인 두 명의 자살을 목도하며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삶과 죽음을, 특히 자기 살해에 의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살은 인류 역사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는가? 자살을 논하는 철학자들의 시선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가? 현재의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역사학과 철학의 학문적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적, 학문적 역량을 이 책에 집약시킨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종교에서 철학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치밀한 분석을 통해, 삶이라는 고통 앞에서 힘들게 싸우며 버티는 사람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이 책은 저자가 시인의 감수성과 역사학자의 냉철함으로 자살이라는 다분히 모순적 행위의 실체를 파헤치는 하나의 <反자살론>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주장은 너무나도 단순 명료하다. 자살하지 말라는 것,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문명을 유지하고 있는 여러 사상들 사이에서 역사 속에 녹아 있는 자살 반대론들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묻고, 한데 뭉쳐 현대인들 앞에 내놓는 저자의 작업을 통해 독자들은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살과 관련해 무엇보다 생각의 힘을 믿는다는 저자는, 누군가 어느 순간에 결국 자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듯, 다른 누군가 마지막 순간 스스로에게 자살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묻게 된다면, 그 작은 생각의 전환이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게 만들고 이것이 개인은 물론 그 개인이 속한 사회의 미래를 공고히 하는 길이라 여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2,500년 동안 우리에게 용기를 내서 계속 살아가라고 권하고 있는 사상적 줄기의 실체를 깨닫길 바라고, 이를 통해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위로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는 자살의 역사


신화시대와 역사시대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인물들은 자기 살해의 사례에 속한다. 성경 속 삼손, 고대 신화 속 스핑크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 이오카스테,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의 밑바탕이 되는 티스베와 피라모스, 자기애의 상징 나르키소스, 사랑의 묘약에 속은 헤라클레스 등이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한편으로는 영웅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감동적으로 그려지기까지 하는 이런 자살들은 마치 고대 세계에서의 자살을 자연스러운 것, 때로는 장려해야 할 것으로 비춰지게 만든다. 고대 세계에서는 자살과 관련해 합의점이 존재했다. 즉, 커다란 상실, 이타적 목적, 수치심, 어긋난 사랑 등에 의한 자살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의 자살이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것이 곧 고대 세계가 자살을 무조건적으로 방치하거나 독려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음을 지적한다.
저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강요된 자결이었다 하더라도, 자살이다. 1세기 스토아학파를 대변하는 세네카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네로 황제의 지시를 받았다 하더라도 세네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사실은 소크라테스와 세네카가 자살에 반대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모순적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자살의 실행이 아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들의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 시대 후기에 시작되어 로마 시대 내내 지배적인 역할을 했던 철학인 스토아 사상의 핵심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고통을 우리 앞에 놓이게 됐을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든지 혹은 갈망을 포기하고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삶의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죽음을 직면할 때에도 그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이 강인함으로 받아들여졌다. 두 철학자의 죽음에서 볼 수 있는 모순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자살은 다양한 견해들 사이를 지나 왔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고대의 자살은 한편으로는 격정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 차분함을 드러낸다. 이와는 달리 종교는 자살에 대해 확고한 관점을 제시했다. 초기 기독교에서 자살은 합리적이고 훌륭한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순교와 같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신의 말씀에 대한 거부, 신의 영역에 대한 침범이라는 이유로 기독교는 자살을 강력하게 금지한다. 이슬람의 경전 또한 마호메트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끈기 있게 견디게 만드는> 복종 사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자살을 금지했다. 대부분의 경우 종교는 자살을 죄악으로 여겼다. 이러한 종교적 논리 속에서 사회는 자살을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자살자의 시체를 훼손하고 재산을 압수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죽은 자와 그 가족들로 하여금 공동체 내에서 공개적인 모욕을 맛보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처방도 세속 철학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철학과 공동체 논쟁: 누구의 죽음인가


저자가 이 책에서 주요 논점으로 하는 것은 서구 철학이 어떻게 해서 자살을 용인한다고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종교는 자살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자살과 관련해서 종교와 대척점에 있던 철학은 상대적으로 서양 문화에서 자살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여겨졌다. 예술과 문학이 과거 고대 자살에 대한 매혹적인 초상을 만들어 내던 근대 초기에 이러한 인상은 더 확고해졌고, 자살에 대한 종교의 가혹한 판단은 자살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불러일으키며 새로 등장한 합리주의 사상과 연결되었다. 또한 의학의 발달은 자살을 죄악으로 보던 관점을 뒤집어, 자살을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여기게 했고 자기 살해 행위는 일종의 신경 질환의 결과라는 생각을 공동체 속에 퍼뜨렸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자살 금지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종교적 금지 사항에 반기를 들었고 교회의 많은 규칙이 미신과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며 더 넓은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볼테르는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전통 종교의 입장에 반대했다. 그는 고대 자살자들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면서 당시 교회가 자살자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들 시체에 행하는 행위를 비판했다. 괴테도 전통 종교를 거부한다는 면에서 자살에 대한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일조했다. 괴테의 경우에는 합리주의가 아닌 <마음과 열정>이라는 신앙 때문에 전통 종교를 거부했지만,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다소간 동시대인들로 하여금 자살을 부추겼다는 면에서 당대의 변화에 그가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사상가들에 의한 의식의 전환기에서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개인의 자살에 대한 흥미는 첨차 누그러들었다.
저자는 자살에 대한 종교적 입장에 반대하는 철학자들의 주장들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될 것을 지적하며, 자살의 역사를 관통하는 또 다른 사상을 제시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계속 살아야 할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언급한 소크라테스의 주장의 다양한 근거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계승된 이러한 생각은 밀턴, 칸트, 멜빌, 헤세 등과 같이 수많은 사상가들을 통해 발전한다. ‘자신에게 해를 가했다는 이유로’, ‘공동체, 가족, 친구, 그리고 자신을 위한 봉사이므로’, ‘인간성을 저하시키고 우주로부터 우리 자신이라는 선(善)을 빼앗는 행위이므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순간 자살은 살인이므로’, ‘자살의 유혹에 맞서 싸울 책임이 있으므로’,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신 오히려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와 관련된 이러한 주장은 현대 사회 과학과 만나 더욱 확고해진다. 자살의 연쇄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살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자살 위험성은 높아진다. 저자는 지역 사회에서의 자살 소식, 자살자의 유족에게 전해진 유품, 가족 구성원의 자살, 유명인의 자살, 미디어를 통한 자살 보도, 텔레비전이나 소설 등을 통해 접하는 허구적 이야기 등을 통해서도 자살이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요컨대, 자살과 관련된 지리적, 심리적, 사회적 근접성은 연쇄적인 자살과 지연된 살인을 불러일으킬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위험성을 <전염병>에 비유한다. 결국 자살을 일으키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충격이 아니라 머리 안에 든 생각이라는 것이다. 자살은 생각이라는 병원균에 의해 전염되는 전염병이다.


우선, 삶을 선택하자


저자는 20세기 자살론을 대표하는 두 사상가인 뒤르켐과 카뮈의 사상을 빌어 우리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제시한다. 삶을 견디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세상을 구한다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뮈의 말처럼 하루하루를 헤쳐 나가는 선택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영웅적인 행동이다. 뒤르켐의 자살 반대론 역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 준다. 그것은 바로 참여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적어도 개념적으로 연결되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문화의 지속적인 힘을 느끼는 능력을 우리 안에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뒤르켐과 카뮈의 생각을 합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무슨 일이 이러날 수 있는지 계속 호기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삶이 시시포스의 힘든 노동처럼 잔인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역사 이래로 살인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수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익사, 화재, 산후 출혈로 사망하는 사람보다도 자살로 죽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 15세부터 44세 까지의 전 세계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하면 전쟁터에서 죽는 사람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 자살은 미국인의 10대 사망 원인 중 하나이며, 45세 이하 성인의 경우에는 3대 사망 원인에 해당한다. 에이즈나 암,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상황은 더 충격적이다.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의 자리를 10년 동안 고수하고 있고, 수도 서울에서는 10~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 또한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우리에게 참담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우리가 타인에게 우리가 어떤 의미인지 진정으로 알 수 없으며, 미래의 자신이 어떤 경험을 할지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역사와 철학은 우리에게 이러한 신비를 기억하라고, 친구와 가족, 인류, 삶이 가져다주는 끝없는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자신을 보존하라고 말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에게는 삶의 이유가 되는 사랑과 통찰이 있고 소중히 여겨야 할 빛나는 순간들, 행복의 가능성, 힘든 시기를 겪는 다른 사람을 도와줄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든 현재에든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기록으로 남겨진 인류의 지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면 계속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하고 행복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첫걸음은 여러 가지 오래된 주장과 근거를 살펴보고 살아남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자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우선, 삶을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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