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양파 공동체>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날카로운 개성의 시편들을 보여 준 손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가 '민음의 시' 256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섬뜩하고 생경한 이미지를 더욱 단단하게 제련되었다.
금방 갈게
뒷자리에서 누가 속삭인다
고각 위에 멈춘
버스가 출렁인다
꽃잎이 흩날린다
이 공중을 네가 찾아낼 수 있을까
금방 갈게
그렇게 말하던 너는 오는 중이고
나는 노인이 되고 있다
우주가 팽창해서
모두 멀어지고 있다고
오래전 네가 말했었다
버스가 서 있고
쿵, 쿵 누가 오고 있어
다리가 출렁인다
너는 살아 있는 것 같다
- ‘최선’, 손미
나를 파 줘
이게 첫 임무다
육신을 쪼갰어
침투한다 피가
밀어내고
밀어 버리고
통과하려 한다
껍질을 뜯으면서
당신은 왜 나를 왜 밀어 두는가
왜 빠져나가려 하는가
아직 살아 있는 나무의 말
파고들면 슬픈 일이 생겼다
우리는 같은 판 위에서
사지를 물어뜯고
서로의 주름진 곳을 사랑했다
스토브 하나 없이
협곡을 걷던 족속이
사라진 곳
한때 오래 머물던 곳
오목한 길을 따라와
거기에서 기다릴게
출혈하는 저 나무와
나는 어떤 관계야?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 길에서
너를 만날 때까지
얼굴에 어둠을 발랐다
나를 파 줘
더 깊이깊이
파고들게 하는
죄 많은 거기를
- ‘판화’, 손미
중국 식당에
혼자 왔는데
테이블이 돌아간다
왜 따뜻한 음식은 멀리 있나
정말 저기에 네가 있었나
서로에게 밥을 밀어 주었나
그렇게 따뜻했었나
느리게 테이블이 돌아가는데
삐걱대며 돌아가는데
목마에 앉아 한 바퀴 두 바퀴
그러면 건널 수 있다고 믿었나
만날 수 있다고 믿었나
저쪽에서 누가 울고 있나
안 보이는 거기에 넌 아직 있나
테이블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이 나나
나는 숟가락을 어디에 놓아야 하나
혼자 식사하는데
왜 테이블이 돌고 있나
허겁지겁 사랑은 끝났는데
왜 테이블이 다시 오나
저쪽에서 누가 울고 있나
젖은 테이블이 왜 이리로 오나
식은 밥이 뱅글뱅글 돌고 있나
왜 다시 오나
- ‘회전 테이블’, 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