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근현대 삼부작'인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1천 5백만 독자들에게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소설로 알린 조정래 장편소설.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본과 권력에 휘말려 욕망을 키워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윤현기의원이 동료의원에게 하는 말이 평소에 공부 좀하라고 충고하는 말이 조정래작가님이 우리 국민들에게 하는것 같다.
김형석교수님은 '선진국 국민은 100년이상 독서한 나라다'라고 했다.
이웃 일본도 100년이상 독서한 나라이다.그런데 우리나라는 남녀노소 스마트폰에 빠져있다.과연 이렇게 해서 일본을 이길수 있을까? 일본을 이기기 위해 국민모두가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결말은 솔직히 실망스럽다. 거칠게 말하면 ‘상록수’ 식의 끝맺음이다. ‘우리 모두 시민단체의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원함으로써 권력을 감시하자’는 결론은 옳지만, 너무 옳아서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으면 하고 은근히 바랐고, 1권부터 커질 대로 커진 판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잔뜩 뒤집어 까놓고, 시민 모두의 각성을 촉구하는 식으로 마무리되어 솔직히 허망했다. 메시지는 좋지만, 소설적으로 너무 투박하고 순진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다. 어색한 희망가라고 해야 할지…. '소설' 이상의 것을 하려다보니 정작 '소설'답지 못하게 돼버렸다. 생각할 거리는 다양하게 던져줬지만,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잃었다.
물론 소설의 결말대로 시민단체는 더 많아져야 한다. 더 많은 시민단체가 생기고, 더 활발하게 활동했으면 한다. 하지만 성리학의 전통이랄지 너무 교조적으로 흐르거나 타협하지 않는 투쟁방식은 경계하고 싶다. 선민의식도 안된다. 솔직히 말해 장우진 기자와 같은 ‘영웅담’은 어느 정도 시민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데 유용하겠지만, 그 한계도 분명하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사회자가 필요할 뿐, 지도자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합리적인 토론과 합의와 인정의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태범이나 임예지의 행보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모든 ‘악’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는 것. 그래서 이 사회의 범죄와 적폐들이 재벌과 권력자들에게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평범한 갑남을녀들도 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우리들 모두 ‘관행’과 ‘범죄’ 사이의 그 어디쯤에서 매일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다. 어떤 ‘관행’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를 좀먹는다. 모든 ‘관행’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도 필요하고, 그 관행에 대한 일탈을 허용하는 사회문화, 조직규범도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광장에서의 민주주의도 좋지만 이제 현장에서의 민주주의도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우리 삶 속에서 비민주적인 부분을 시정해나가야 한다. 내일부터 이른바 ‘갑질방지법’이 시행된다고 하는데 이 또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시민의회’도 인상깊다. 사실 평소에 가졌던 생각과 비슷하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과 같은 방식으로 시민 누구나 추첨에 의해 선발되어 입법권을 가지는 방식을 생각했었다. 효과적인 구현방안은 고민해봐야겠지만, 우리 사회가 꼭 시도해봤으면 하는 제도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