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변두리 지역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소녀 '비읍이'의 성장 이야기를 담았다. 비읍이는 '말괄량이 삐삐'라는 노래를 듣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이름과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책을 알게 된다. 린드그렌의 책을 하나씩 읽어가며 비읍이는 작품의 매력이 흠뻑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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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내용 요약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은 유은실이 2005년 1월 28일 창비를 통해 출간한 장편동화로, 약 184쪽 분량의 책이다(ISBN: 9788936442194).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에 매료된 저자는 “책은 외로움 속에서 희망과 위로를 준다”는 메시지를 통해, 대도시 변두리에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소녀 비읍이의 정신적 성장을 그린다. 비읍이는 엄마가 노래방에서 부른 『말괄량이 삐삐』 노래를 계기로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을 알게 되고, 그의 작품을 하나씩 읽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 덕후로서의 진정한 면모가 돋보이는 아동 장편 동화다.
린드그렌의 출간된 작품들을 엮어서 연결해 쓴 이야기는 11살 소녀가 화자로, 린드그렌과의 만남이 소녀의 삶에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하게 되어 가는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보여준다. 아마도 작가 자신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러게 언니가 갖고 있고 린드그렌 선생님의 책 서른 일곱 권의 목록은 덕후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준 리스트다!
책의 느낌을 나누면서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는 4학년짜리 아이가 이런 말과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어른인 우리도 이런 배려와 하얀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말들이 나왔다. 일견 '어린 아이가 과연?' 이라는 선입견과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가 판타지적 모습으로 이런 어른들의 바람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직은 마음에 때가 타지 않았던 아이들의 초등 저학년 때 비슷한 일화도 있기도 했다.
린드그렌의 작가의 이름은 초등 고학년 아이들 책을 보다 보면 많이 접하게 되는 작가다. 어릴 때 열심히 보던 tv 외화의 삐삐, 그 삐삐의 작가라는 건 추후에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다 보면 시공주니어 시리즈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작가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 거 큰 아이에게 맞는 읽기 책을 찾다가 나의 어린 시절의 삐삐의 작가가 이 작가라는 걸 그렇게 조우하게 되었다.
책 속에서 엄마가 삐삐 tv 시리즈를 비읍이와 이야기 나누던 그 경험이 오버랩되었다. 그 모티브에서 아빠의 부재를 삐삐의 엄마의 부재와 같은 선상에서 가져와 이야기를 진행하는 도입부는 비읍이의 성정이 그리 얇지만은 않겠구나 하는 유추를 하면서 읽게 했다.
헌책방 그러게 언니와의 인연은, 좋은 멘토를 만나서 성장기를 거쳐가는 인연의 중요함을 엿본다. 단짝 친구 지혜와 비 오는 날 우비와 장화의 일화 편에서는 하얀 거짓말과 상대를 위한 배려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아이들의 일화지만 읽는 어른들은 더 뭉클하게 느끼게 된다. 이 일화 편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임에서도 많았다. 어쩌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판타지를 구축 또는 설정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읍이가 헌책방에 다니게 된 출발이 작가의 책을 모으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보던 작가의 책을 모으려는 소유욕이 덕후로서의 시작이 보인다. 한 작가의 책을 열심히 읽고 수집하다 보면, 작가의 생각에 깊게 빠지게 되는데 11살의 비읍이가 쓰고 생각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발걸음의 시작이다.
비읍의 가출을 저지하면서 그러게 언니가 작가의 일화를 가져와 설명하면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는 설득이, 이른바 꼰대의 일방적 말이 아닌 눈높이를 맞추어서 말하는 모습을 그리하여 듣는 비읍이가 설득될 수밖에 없는 현명한 어른을 보여준다. 이런 방법을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써먹을 수 있을는지.
솜씨란에 뽑힌 글이 '미오 나의 미오'의 한 단락을 베껴 써서 괴로워하던 비읍의 모습에서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과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잘못만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에서, 어른들도 이런 정도의 마음 상태로 살아간다면 지금의 사건사고는 많이 줄어들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해 보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인정과 깨우침이 삶의 지표가 된다.
구슬을 하나씩 깨어가는 비읍이가 지혜를 통해 산타의 구슬을 깨고, 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동화를 통해 현실의 슬픔을 보게 되는 것은 아이에게 슬픔을 보게 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스케이트장에서 엄마와 지혜의 춤을 보면서 쓸쓸함과 지켜봄을 말하는 비읍이는 한 단계 자아를 쌓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성장의 과정으로 읽혔다.
린드그렌 선생님께 부치지 못한 편지로 끝나는 마지막 장은 비읍이의 내면의 한 뼘 성장과 미래에 대한 계획과 삶에 대한 관점이 확장되어 성장되어 가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시절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와의 만남으로 한 세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는 시작을 작가에게 고하면서 작별하는 것이다.
한 시절 빠져 지내던 무엇인가 있던 이들이라면 이 동화 속 비읍이처럼 시절 인연을 되새겨 볼 듯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두 시절을 다 걸쳐서 살고 있는 세대의 작가의 어린 시절을 지금의 시절로 가져와서 구성한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들여다보게 한다. 일견 어른들의 판타지적 설정이 있다고 느낀 건, 지금의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기에 더 현실적인 시선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화의 풍미가 느껴진다.
책 속의 문장
_나비를 잡는 아버지 중에서
"비읍아, 어떤 게 진짜 끔찍한 건지 알아야 돼. 그걸 모르고 어른이 되면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
_페터와 페트라 중에서
나도 함께 춤을 추고 싶었다. 얼음판 위에서 빙빙 동그라미를 그려 보고 싶었다. 하지만 린드그렌 선생님 말대로, 세상엔 멈춰 서서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때를 보고 있었다.
엄마랑 지혜는 완전히 춤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멀리 떨어져서 엄마와 지혜를 보았지만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거침없는 몸놀림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쓸쓸함을 엿보았다.
나도 가슴 깊은 곳에 쓸쓸함을 잔뜩 갖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린드그렌 선생님의 이야기들이 그것들을 조금씩조금씩 갉아먹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