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하고 포인트 받기
독일 이데올로기 1
카를 마르크스 외 1명 지음
청년사
 펴냄
9,000 원
0원 
앱에서 포인트받고 구매
228쪽 | 2007-03-16
분량 보통인책 | 난이도 보통인책
목차

영역자 서문

제1권 근대 독일 철학과 그 대표자 포이에르바하, 부르노 바우어 및 슈티르너

서문

제1편 포이에르바하. 유물론적 시각과 관념론적 시각의 대립


1. 이데올로기 일반, 특히 독일의 이데올로기
2. 역사의 유물론적 이해를 위한 전제들
3. 생산과 교류 ? 노동 분업과 소유형태 -부족적, 고대적, 봉건적
4. 유물론적 역사관의 본질,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1. 인간의 실제적 해방을 위한 전제 조건들
2. 포이에르바하의 관조적이고 비일관적인 유물론
3. 근원적인 역사 관계들, 혹은 기본적인 사회 활동 양태들 : 생존 수단의 생산, 새로운 욕구의 생산, 인간의 재생산(가족), 사회적 교류, 의식
4. 노동의 사회적 분업과 그 귀결 : 사유재산, 국가 및 ‘소외된’ 사회 활동
5. 공산주의의 물질적 전제 조건 및 생산력 발전
6. 유물론적 역사관의 결론들 : 연속적 과정으로서의 역사. 역사의 세계사로의 발전, 공산주의 혁명의 필요성
7. 유몰론적 역사관의 총괄
8. 관념론적 역사관 일반, 특히 헤겔 이후 독일 철학의 비일관성
9. 관념론적 역사관과 포이에르바하의 의사(擬似) 공산주의


1. 지배 계급과 지배 의식. 역사에 있어 정신의 지배라는 헤겔과 철학자들의 관념은 왜 출현했는가?


1. 다양한 생산 용구와 다양한 소유형태
2. 물질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의 분화. 도시와 농촌의 분리. 길드 시스템
3. 새로운 노동 분업. 상업과 공업의 분리. 여러 도시들 간의 노동문업. 매뉴팩처
4. 가장 확대된 노동 분업. 대규모 공업
5. 사회 혁명의 근거인 생산력과 교류 형태 간의 모순
6. 개인들 간의 경쟁 및 계급의 형성. 개개인들과 그들의 생활 조건 간의 대립. 부르조와 사회에서의 개개인의 환상적 공동체와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개개인의 참된 공동체. 사회적 생활 조건의 단결된 개개인의 힘 아래로의 복속
7. 생산력과 교류 형태 간의 모순으로서의 각 개인과 그 생활 조건 간의 모순. 생산력의 발전과 교류 형태의 변화
8. 역사에 있어서 폭력(정복)의 역할
9. 대규모 공업 및 자유 경쟁 하에서의 생산력과 교류 형태간의 모순.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
10. 사유재산제 폐지의 필연성, 전제 조건 및 그 결과
11. 국가와 법의 소유에 대한 관계
12. 사회 의식의 여러 형태들

* 라이프찌히 회의

제2편 성 브루노

1. 포이에르바하에 반대하는 ‘캠페인’
2. 포이에르바하와 슈티르너 간의 투쟁에 관한 성 브루노의 견해
3. 성 브루노 대(對) 《신성 가족》의 저자들
4. 모제스 헤스(M. HESS)의 부고장

부록 / 184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수고) - 칼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엥겔스의 편집) - 칼 마르크스
브루노 바우어의 반비판에 대한 답변 -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학습을 위한 제언 / 옮긴이

더보기
저자 정보
카를 마르크스 외 1명
철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 국제 노동운동 지도자,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창시자. 1818년 독일 라인 주 트리어 시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네덜란드의 귀족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로서 사상적으로는 계몽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였기에, 마르크스는 유복하면서도 자유로운 성장기를 보낼 수 있었다. 1835년 본 대학교에 입학해 그리스ㆍ로마 신화, 미술사 등 인문학을 공부하였다. 1년 뒤에는 베를린 대학교로 전학해 법률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였다. 이 시기 청년들을 사로잡은 헤겔주의 사상에 마르크스 역시 영향을 받았으나, 헤겔의 타협적 경향 및 그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발견하자 현실에 관한 경제적인 연구로 나아가 독자적 사상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반정부적 사상으로 독일 정부의 탄압을 받고 망명한 파리에서 만난 엥겔스와는 남은 평생에 걸친 활동을 같이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프로이센 정부의 압력으로 1845년 파리에서도 추방당하였으며 벨기에 브뤼셀에서 머물던 중 프로이센 당국이 자신을 고소하지 못하도록 프로이센 국적을 포기한다. 이후 마르크스는 죽을 때까지 무국적자로 살아간다. 3년 정도 브뤼셀에 머물던 프로이트는 다시 이어진 탄압으로 1847년 런던으로 망명하여,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영국 런던에 거주한다. 이 시기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동맹’을 결성하고,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작성해 발표하는 등 노동자들을 조직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대영박물관을 다니며 정치경제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그 20년에 걸친 결과물로 『자본론』을 완성한다. 생의 마지막 10년간 정신적ㆍ육체적 침체에 빠져 지내던 마르크스는 1883년 3월 14일 평생의 벗이자 협력자인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런던 자택에서 눈을 감는다.
더보기
남긴 글 0
앱에서 바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