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부 외부적 목소리 중에서
눈을 깜빡이고, 앞다리 하나를 움직이고, 고개를 앞으로 길게 빼는 느림보. 힘은 결국 사라진다고 그리어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힘 있게 한다.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을 때까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에는 거북이가 그들 모두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제목이 거창하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대놓고 페미니즘을 내세운 건 아닐까 하면서 인문학 분야의 제목 같은데 소설이라는 장르로 분류되어 있어서 약간의 호기심과 제목의 의미성을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각각의 인물들이 서사가 한 장씩 이어지는 서사가 다음 장으로 계속 읽게 했다.
개인적으로 코리와 그리어의 돌고 돌아 서로에게 다시 속하게 되는 관계의 밀도가 좋았다. 나이가 들어서 보여지고 느껴지는 관계의 밀도라는 게 그저 좋은 것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것의 깨달음이 흠씬 밀려든다.
그리어가 자신의 성장을 이끈 페이스와의 관계에 사소한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이 끝이 결국 관계의 파국으로 끝나고, 혼자가 되었다고 느낄 때 그녀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 연인과의 관계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후반부의 서사가 삶에 대한 격정이 지나가고도 살아가는 인생의 후반부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저자의 연배가 함께 느껴져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어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코리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부분에서, 어머니를 돌보면서 살아가는 코리의 삶에 대한 '대단한 페미니스트' 같다는 말에 울컥했다. 젊은 그리어에게 코리의 삶은 피어보지도 못한 시든 꽃 같은 삶처럼 보여졌을 것이다. 돌봄과 가사 노동을 통해서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된 코리의 내면과 여성주의 일을 하고 있던 그리어가 어머니의 말을 통해서 뼈때리는 어떤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코리의 성장과 그리어의 성장, 지와의 관계 지형도의 변화도 현실의 싱크로율이 느껴졌다. 초반부 그리어의 학내 성추행의 이야기에서는 근래 인하대 여학생 사망 사건이 연상되었고 후반부에 그 남학생의 현재의 삶을 말해주는 에피소드에서도 다른 대응과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후일담을 통해서 또 성장하는 그리어와 지의 대화는 그래서 여성의 설득이라는 제목이 된 걸까 하는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페이스의 모델은 어떤 부분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라고 유추된다.
사회적 인물들의 삶이 시작이 신념의 올바름과 사회 정의라는 대의적이고 거창한 명분으로 어느 정도 제도권에 진입해서 성과를 이루고 안정기에 접어들 때 조금씩 타협의 모습과 실망의 모습이 보이는 현실을 볼 때는 생각이 또 많아진다. 페이스 말처럼 그럼에도 계속 실현해 낼 수 있는 장에 있는 것이 중요한다는 것에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소설의 마지막 문장들을 곱씹어 본다.
소설의 전체적 무게감과 별도로 미국이라는 문화권의 연애 경향은 지금의 우리 한국 사회와의 다른 경향과 젊음이라는 생물학적 서사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직관적이고 지금 여기의 삶을 사는 모습으로.
페이스와 그리거와 코리와 지의 이야기들이 흡입력 좋은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연애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남녀와 세대 간의 이야기가 있고, 현실성이 있어서 소설임에도 페이크 다큐 같은 느낌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