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제니의 첫 시집. 시인의 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놀이와 반복에서 비롯되는 발랄한 리듬감이다. 시인의 시들은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단어와 이미지와 문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듯하지만, 그 생생한 리듬을 통해 사물과 의미 사이, 현실과 상상 사이에 무한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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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프리카 (창비시선 321) 내용 요약
『아마도 아프리카』(창비, 2010)는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제니 시인의 첫 시집으로, 창비시선 321번째 작품이다. 📖 165쪽 분량에 60여 편의 시를 수록한 이 시집은 발랄한 리듬감, 독창적인 말놀이, 그리고 일상과 환상을 오가는 상상력으로 현대 한국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제니의 시는 언뜻 모호해 보이는 단어와 이미지로 시작하지만, 반복과 변주를 통해 감각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세계를 창조한다. 시집 제목 ‘아마도 아프리카’는 확정되지 않은
우리 얼마간 널브러져 있자, 응?
분명 너무 좋아서 읽는 내내 앓는 소리를 냈는데, 감상문을 쓰려고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은 감상이 하나로 응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써온 감상문은 그래도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하나는 있었다. 그것이 설사 시집 전체를 아우를 수 없었다 해도 말이다. 물론 시 하나를 심상 하나로 치환할 수 없기에, 한 권의 시집을 하나의 주제로 아우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하나의 글이라는 것은 주제를 정하고 높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한 채 써 내려갔을 때 완결된다. 서두부터 이런 말을 늘어놓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감상문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럴 땐 할 수 있는 말부터 하는 게 상책이다. 몇 번 그랬듯이, 귀납적인 방식으로 시작해보자.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 中)
맨 처음에 수록된 시이자 시인의 등단작이기도 한 「페루」. 너무 좋았다. 시인이 자신이 내뱉는 언어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대시에 대해서 내가 하는 말이 얼마만큼의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견 의미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을 마음껏 나열해 놓고 그것이 시라고 말하는 시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양, 머리카락, 말:과 말, 라마와 페루" 등의 이미지는 한번 소비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듭 등장하며 그 의미가 점층된다. 행갈이를 하지 않은 한 바닥의 산문시가 단 하나의 문장처럼 인식될 만큼, 시인이 끝내 마주했던 장면을 나 또한 볼 수 있었다. 한 바닥의 시는 얼핏 보았을 때 덩어리 같다. 덩어리만이 덩어리이기에 가질 수 있는 끈끈함이 이 시에 있고, 쉬지 않고 끝을 향해 달려 나가는 심상들이 만들어내는 박진감이 너무 좋아서 항복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이제니의 시에 관해 이야기했다. 정확히는 내가 이 시집을 펼쳐 건네면서 「페루」를 읽어보라 권한 것인데, 친구는 다 읽고서 이런 말을 했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스타워즈에서 최소 공간 단위는 행성이야. 그래서 한 행성은 하나의 특성을 갖지. 이를테면, 사막 행성, 열대 행성, 북극 행성…… 난 그게 좋더라고? 한 행성이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될 수 있다는 게."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죽지 않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 (「네이키드 하이패션 소년의 작별인사」 中)
나는 이 생을 두 번 살지 않을 거야 / 완전히 살고 단번에 죽을 거야 (「알파카 마음이 흐를 때」 中)
아마도 나는 아주 조금 살고 있어요 (「아마도 아프리카」 中)
죽음에 대해 말하는 시는 항상 좋다. 죽음은 우리가 언급하지 말아야 할 금기(taboo)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선우의 서평계획서 댓글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다). 이제니의 시에서 죽음에 관한 언급은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한 번 등장할 때마다 그 무게감이 나를 짓눌렀다. "아마도 나는 아주 조금 살고 있어요"라는 표제작의 한 구절을 맞닥뜨렸을 때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모든 것이 "죽지 않기 위해" 하는 말(들)인 걸까. "완전히 살고 단번에 죽"기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말인 걸까. 이제니가 다루는 죽음이 어떤 모양과 빛깔로 점층되는지를 그의 다른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문학과지성사, 2014)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문학과지성사, 2019)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현대문학, 2019)을 읽어보며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작고 진실하고 잘 우는 것들에만 귀가 열린다 (중략) 이제 남은 일은 말하지 못한 말들을 삼키거나 뜻 없는 문장들의 뜻 없는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일뿐. (「공원의 두이」 中)
내가 바라는 건 아주 작고 희미한 것들뿐. 단 한순간도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 것. (「코다의 노래」 中)
시인이 반복해 되뇌는 말: 나의 관심은 작은 것에 있다. '것'만은 아니라는 걸 시집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말' 역시도 그에게는 작다. 작은 것을 바라보고 작은 말을 하는 사람. 그가 천착하는 대상이 너무 좁고 무의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걸 그도 이미 알고 있고 심지어는 그것만이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 것"이라 천명(闡明)한 것으로 보아 시인으로서 그의 천명(天命)은 바로 그것이었는지도.
모든 불행은 돌이켜 생각하거나 앞질러 생각하는 자들의 몫이다 그림자가 사소한 방향으로 옮겨간다 남은 시간을 세는 일이 먼지처럼 느껴진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또다른 하루가 조용히 들이닥친다 (「검버섯」 中)
우리의 대답은 언제나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지. 청춘은 다 고아지. 헛된 비유의 문장들을 이마에 새기지. 어디에도 소용없는 문장들이 쌓여만 가지. 위안 없는 사물들의 이름으로 시간을 견뎌내지. (「발 없는 새」 中)
그래서인지 그가 달려간 끝에서 마주하게 된 장면, 그가 글로 풀어놓았고 마침내 나에게 도달한 장면들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심상들이 스스로 점층하며 제자리로 향하는 과정을 간신히 포착한 순간이 하나의 흐릿한 이미지가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실상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 그 사실을 한순간에 체감하게 한다. "또다른 하루가 조용히 들이닥"치고 여태껏 해낸 말들이 "어디에도 소용없는 문장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은 아프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작은 말을 하고 작은 것을 관찰하는 일은 작은 것이 존재하는 방식에 발맞추어 살아갈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니가 주문처럼 되뇌었던 「페루」의 몇몇 구절을 다시금 떠올릴 필요가 있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그러니까, 우리 얼마간 널브러져 있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