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권. 본인의 홀로코스트 생존 경험을 토대로 깊고 의미 있는 울림을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며 '아우슈비츠 이후의 문학'을 정립한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4부작 중 대표작이자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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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내용 요약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원제: Sorstalanság, 영어: Fatelessness)은 200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작가가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 14세 소년 괴르기 쾨베시(Gyuri Köves)의 시선을 통해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그린다. 이 작품은 감상적이지 않은 담담한 문체로, 운명의 부조리함과 개인의 존엄을 탐구하며,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인간의 관찰력과 생존 본능을 조명한다.
홀로코스트. 1945년 유대인 수용소가 나치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60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 청소라는 명목으로 학살되었다.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차이츠 수용소를 거쳐 다시 부헨발트 수용소로 돌아와 해방을 맞은 죄르지. 이는 작가 임레 케르테스 본인이다. 출근길 버스에서 아무것도 모른채 선별되어 수용소로 가는 그는 그곳에 도착할 때 까지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14세.
P_121 나와 함께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 중에 자동차에 탄 사람들과 나이나 다른 이유로 의사가 부적합 판정을 내린 사람들, 예를 들어 어린아이와 엄마 그리고 겉보기에도 눈에 띄는 임산부 들이 바로 그 순간에 내 눈 앞에서 소각되고 있었다.
사람이 차례차례 소각된다. 기차에 내린 죄르지가 수용소에서 맞이한 첫 경험은 인간 분류였다. 정상과 비정상의 갈림길로 천천히 밀려 걸어가는 시간이 그의 인생동안 큰 영향을 미치며 그의 운명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절망,고통,공포,폭력,불행,허기,무기력으로 대표되는 수용소에 대한 이미지는 그의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무미건조한 문체와 단백한 느낌이 이 책은 지옥같은 수용소의 생활보다는 뭔가 할만할거 같은데? 라고 느낄만큼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묘사된다.
P_131 지루함과 이상한 기다림, 나는 이 인상이 아우슈비츠의 진정한 실체를 대략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P_161 천막 안이 어두컴컴해지면 속삭임이 시작되는데 과거와 미래와 자유에 대해 얘기 나누는 시간이다.
P_162 자리는 그리 넓지 않았다. 내가 돌아누우면 옆 사람도 돌아누워야 했고 옆 사람이 다리를 올리면 나 역시 다리를 올려야 했다. 그럼에도 깊이 잠들어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정말로 황금이였다.
왜인지도 모르게 끌려온 그는 수용소를 그저 그의 일상으로 인식해 간다. 그도 느끼지 못할 만큼 천천히.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의 행복을 발견하기도 한다. 고통스러운 행복이 수용소 생활을 버텨내는 힘이 아니었을까. 그를 고통 속으로 몰아 넣는 대상조차 근사해 보이고, 사람이 차례차례 소각되는 소각장에서도 행복 비슷한 것을 느낀다.
P_168 인식이란 것이 마지막에 정리해서 풀어헤치는 식이 아니라 단계별로 하나하나 거치면서 익숙해지는 식이었고 마지막에는 거의 인식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P_269 화려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수긍할 수 있고 깨끗하고 멋진 역에 도착하는 것이 정말 생소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단계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이해된다. 하나의 단계를 거치면 다음 단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단계를 거치고 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일을 처리하고 살아가고 행동하고 움직이고 새로운 단계마다 새로운 요구 사항을 완수해 나간다. 그런데 만일 시간 체계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 모든 것이 현장에서 일시에 우리의 인식으로 쏟아져 들어온다면 우리의 머리와 가슴이 견뎌 내지 못하리라는 식으로 나는 그에게 설명해 보았다.
P_205 가슴속에서 한 가지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 욕망의 비합리성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끈질기게 욕망이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것은 이 멋진 강제 수용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1년간의 수용소 생활이 천천히 걸어가는 상황 속에서 다가오고, 이해되는 과정에서 작가는 인생을 버텨내고 행복을 찾았던 것인지도. 수용소 생활의 모든 고통이 일시에 닥쳐진다면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수용소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상상, 죽음, 탈출 세가지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현실을 부정한 사람, 탈출을 꾀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죽음의 길로 들어설 때도 죄르지는 상상을 통해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고된 생활로 다리에 병을 얻어 고통받는 상황에서 그는 죽음 보다는 조금이라도 살고 싶다는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이는 수용소 생활을 고통으로 인지한 다른 수감자들 보다 긍정적이고 생활을 삶의 일부로 생각한 결과가 아닐까.
P_282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P_285 이제 우리 과장하지 말자!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논거를 받아들어야 한다는 점을 나는 잘 안다. 석양으로 물든 아늑한 광장과, 수업이 비바람을 맞아 왔지만 여전히 수천 가지 기대로 충만한 거리들을 둘러보며 내 안에서 하나의 각오가 생겨나더니 그것이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도저히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삶을 지속해 가겠다는 각오였다.....극복하지 못할 불가능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 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는 수용소 내에서 자유와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길게 이야기한 수용소 생활의 결과 그가 느꼈던 자유와 운명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폭발한다.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결국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라는 실존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결국 인간의 운명 혹은 본질이 결정되어 있다면 그 결정에 따라 삶을 살아나가야 하겠지만 운명이 곧 자신이라는 입장을 통해 자신 스스로의 자각적인 생활방식이 중요하게 된다. 끔직한 과거도 나의 일부분이며 앞으로 다가올 역경도 내가 살아내면서 강해지면 된다. 그렇게 천천히 삶을 걸어가다보면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나의 운명을 살아왔다는 경험이 아닐까. 그리고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발견할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길지 않은 내 일생을 그와 비교하기에는 평탄하고 쉬운 삶이었다. 나름의 고통이 있었고 고민들이 있었겠지만 어떻게 그와 비교할까. 임용고시 준비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아침일찍 도시락 가방을 들고 혼자 도서관에 나가 10시간 가까이 책만 보던 생활. 수용소 생활처럼 똑같은 패턴의 삶이 반복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도서관이 수용소라고 느껴졌을 지도. 그땐 그 생활이 그만큼 힘들었다. 오랜시간 앉아만 있어야 하는 고통,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에 대한 두려움. 등등 나름대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고통을 벗어날 수 있었던 미래에 대한 상상. 꿈을 이루었을 때의 상상이 나를 그 고통에서 벗어나주게 해준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작가가 그랬던 것 처럼. 그리고 지금은 그 고통 보다는. 힘든 시간 가졌던 소소한 일상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따듯한 커피를 마시면서 펜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던 시간. 도서관 밖을 나가면 나를 맞이해주던 따듯한 햇살과 기분좋은 바람. 종이에 사각거리던 샤프의 감촉과 부드러운 지우개 감촉. 혼자 도시락 먹으면서 들었던 음악소리....고통속의 소소한 행복들이 나의 삶을 살아내는 힘이었다. 임용된 후 ‘고생 많았지’, ’힘들었겠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는 뭔가 위로 받고 힘이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지금 시점에서 그때를 바라보면 잊고싶은 기억 보다는 공부하면서 느낀 소소한 행복들이 더 가슴에 남고, 때로는 다시 느끼고 싶은 향수로 남는다. 강제 수용소의 가스실 굴뚝 옆에서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를 찾은 것 처럼.
하나하나 주어진 운명을 다 살아냈다,
하는 자부심.
잊으라는 말에 대한 분노.
괴롭고 끔찍한 일이었음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모든 노력과 인내,
그리고 하루하루의 ‘단계’들을 걸어왔음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과 같아짐을,
너무 괴로웠다 말하는 순간
패배를 인정하게 되는 게 아닐지.
그리하여 덤덤하게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그의 말에
오히려 내가 더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
우리 모두가 공범이며, 자유란 없다는 것.
운명을 하나하나 밟아가며 살아왔다는 사실만이
그를 지탱하는 생의 힘이 아니었을지.
여러모로 가슴아픈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