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히스테리

홍석률 지음 | 창비 펴냄

분단의 히스테리 (공개문서로 보는 미중관계와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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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

출간일

2012.3.30

페이지

500쪽

#역사 #통일

상세 정보

우리는 왜 분단하게 되었나
공개 문서로 풀어본 전쟁의 비밀

한국현대사 연구자가 1999년부터 당시 공개된 미국 외교관계 문서 등을 분석하여 1970년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사를 총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그려낸 연구서다. 냉전의 절정기, 군사적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른 한반도와, 베트남전쟁 이후 전개된 미국과 중국의 극적인 화해라는 국제정세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전개가 연구자의 오랜 기간에 걸친 방대한 자료 분석을 통해 다각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반도 분단모순의 구체적인 형상이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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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vvrajig2iemk

요즘 역사에 관심이 많이가는데
특히나ㅠㅠ 대한제국이후 일제강점기 그리고 남북분단까지 제일 가슴 아파야할 역사에 눈이 많이 가요
꼭 읽어보고싶어요!

분단의 히스테리

홍석률 지음
창비 펴냄

읽었어요
2016년 8월 23일
0

플라이북

@fl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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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연구자가 1999년부터 당시 공개된 미국 외교관계 문서 등을 분석하여 1970년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사를 총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그려낸 연구서다. 냉전의 절정기, 군사적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른 한반도와, 베트남전쟁 이후 전개된 미국과 중국의 극적인 화해라는 국제정세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전개가 연구자의 오랜 기간에 걸친 방대한 자료 분석을 통해 다각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반도 분단모순의 구체적인 형상이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출판사 책 소개

6,7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 전쟁 위기: 한반도는 베트남 제2전선이었다?
1960년대 말 한반도에는 심각한 군사적 긴장상태가 조성되었다. 1968년 1월 21일 무장한 북한 특수부대 요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를 향했고, 그 이틀 후 미군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울진 · 삼척지구에 100명이 넘는 북한 무장간첩이 남파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한반도 지역에 군사력을 급속히 증강했다.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원산 앞바다에 나타났고, F-105 1개 비행대, F-102 2개 비행대를 비롯해 당시로서는 최신예 전투기인 F-4D 팬텀기 4개 비행대가 곧바로 남한 내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사건 발생 5일 만인 1월 28일, 항모에 있는 비행기를 포함하여 154대의 전투기를 한반도 지상과 해역에 추가로 배치하는 작업을 마쳤다. 이로써 한반도는 제2의 한국전쟁이 우려되는 휴전 이후 최대의 군사적 위기 국면에 돌입했다.
이는 당시 한창이던 베트남전쟁과도 관련이 있었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구정공세’로 불리는 게릴라 시가전이 벌어졌으며 이때 싸이공 경찰간부가 게릴라 혐의자를 권총으로 즉결처단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세계에 전파됐다. 이에 따라 미국 내 반전 · 반체제운동 또한 격렬해졌으며 존슨 미대통령의 지지율은 추락하게 된다. 남한은 1964년 미국의 지원 요청으로 베트남에 한국군을 파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 파병을 하면서 베트남 전선과 한반도 전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베트남전에서 공산측이 승리하게 되면 그 여파가 반드시 한반도에도 미친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정희는 “베트남전은 우리의 제2전선”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한편 극렬하게 치닫던 중소 이념분쟁과 미국과 일본의 단합은 북한을 불안하게 했다. 북한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적극 지원을 통해 사회주의권의 단결을 촉구하고 나섰고 남한에 대한 무력도발을 강화해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려 했다. 북한이 이른바 제2전선을 구축하려 한 곳은 한반도 지역이었다.

위기가 고조되어야만 협상이 시작된다: 북미외교의 시작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주기가 되었다. 그사이 위험천만한 연평도 사건도 겪었다. 서해 5도 지역에서 벌어지는 군사적 충돌의 연원은 남한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 주장에 반발해 북한이 이 지역의 관할권을 주장하고 나선 197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남북의 군사적 충돌이 가장 빈번했던 때는 1960년대 말이었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1968년 한해 동안 북의 대남 무장침투 및 공격 사건은 무려 573회에 달했고 남한은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을 주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차대한 사건은 푸에블로호 사건이었다. 휴전 이후 한반도에서는 크게 세번 정도 전쟁 재발이 우려되는 사태가 있었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 1994년 북한 핵위기 국면이 그것이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그 첫번째 사건이며, 공교롭게도 이들 사건은 모두 강대국 미국이 직접 당사자로 결부되어 있다. 북한은 강대국 미국과 직접 협상하여 북한의 군사 · 외교적 승리를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려 했고 미국은 북한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는 것을 꺼려해 북한과 직접 협상하기를 피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베트남전쟁으로 국내외적 위기를 겪던 미국은 한반도에서 다시 군사적 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에 따라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돌려받기 위해 비밀리에 북한과 접촉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어야 협상이 시작되는 북미간 외교의 출발점이 된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이러한 방식으로 미국을 통해 국가적 실체를 인정받고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미국에 집착하는 외교를 벌이고 있다.

닉슨과 마오쩌둥의 만남: 역사적 데땅뜨 무드와 남북대화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 중 한반도에서 격돌함으로써 그후 완전히 적대적 관계로 고착되었다. 그러한 미중이 관계 개선의 조짐을 보인 것은 닉슨행정부가 출범한 1969년부터였다. 당시 격화된 중소 분쟁은 군사적 대결로까지 이어졌고 중국 지도부는 소련을 미국과 똑같이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으로 보게 되었다.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활용해 소련으로 하여금 미국에 좀더 타협적으로 나오게 하려는 차원에서 중국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이었고 이후 미국과 중국은 급속하게 관계를 개선해나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동서 냉전시대는 해빙기를 맞게 되고 급격한 데땅뜨(긴장 완화)무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닉슨과 마오쩌둥의 역사적 만남이 성사되자 남북한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일 군사협력이 강화되었고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직접 북미평화협정을 맺을 것을 주장하는 가운데 남북한은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직접 남북대화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 결과 남북관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7 · 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이 시기 발표된 남북공동성명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첫번째 발걸음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한편으로 한반도 분단이 고착되고 내재화하는 길이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책임이 강대국들로부터 남북한에 전적으로 이양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분단은 어떻게 고착되었나
1970년대 초 미중관계 개선과 데땅뜨(긴장 완화)라는 새로운 세계사적 국면 속에서 분단체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미중이 한반도 분단을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함에 따라 분단체제는 보다 완숙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한편 남북의 집권세력은 데땅뜨와 남북대화로 말미암은 유동성 국면을 활용해 위기의식을 고취시켰다. 이에 남쪽에서는 유신체제가 수립되고, 북쪽에서는 유일체제와 후계체제가 확립되었다. 분단체제가 훨씬 숙성되면서 그것이 남북 두 분단국가의 정치체제 변동으로 노골적으로 발현되어 그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남북의 외교경쟁도 치열해졌다. 1973년 남측은 6?23선언으로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주장했으나 북한의 합의 없이 발표된 이 선언으로 남북관계는 오히려 소원해졌으며 북한은 같은 해 8월 남북대화를 중단하고 중국과의 공조도 사실상 파기하면서 미국과 직접 담판에 나서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러한 남북대화 경색 국면은 마침내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으로 이어졌고 남북관계는 다시 한번 완전히 얼어붙게 된다.

한반도 평화정착의 해법
한반도 분단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상당히 변덕스러운 고도의 유동성을 보여준다. 이는 여기에 관여된 주체들을 히스테리하게 만든다. 분단체제는 남북 두 분단국가 및 주변 강대국의 복잡한 역관계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위기는 계속 발생하지만 이것이 쉽게 전쟁으로 가지는 않는다. 서로 견제하고 제약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완전한 평화의 정착도 대단히 어렵게 만든다. 분단체제는 전쟁과 평화 사이에 있는 ‘휴전’이라는 애매한 상황 속에서 군사적 위기와 적대적 대치 국면 속의 현상유지를 빈번하게 오가며 요동치는 양상을 보인다. 남북대화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것도 아직까지 남북의 화해와 통합을 추진하는 힘이 이와같은 분단체제를 완전히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분단이 지속되는 한 완전한 한반도 평화정착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평화가 달성되어야 남북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북통합이 되어야 이에 상응해서 달성될 수 있는 평화의 질도 높아지는 것이다. 평화공존의 노력과 남북통합 노력은 따라서 병행이 되어야 하며, 남북통합도 하나의 과정으로 존재하고 평화도 역시 하나의 과정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인정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역사적 시각으로 분단을 사고하기
이 책은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정착으로 가는 해법이 이념적인 문제도 남북한만의 단독적인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역사학적 시각으로 보여주면서 이러한 프레임에 갇힐수록 오히려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차분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외교문서는 그래서 중요하다. 국제정세와 지역질서에 대한 엄정한 분석과 진단이 있을 때, 그리하여 분단을 둘러싼 수많은 변수들을 통제할 힘을 지닐 때만이 비로소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이 조금씩 열릴 수 있다는 이 책의 주장이 호소력을 지닐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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