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어깨 너머로 눈 내리는
세상을 본다
석회의 흰 빛
그려지는 생(生)의 답답함
귓속에도 가늘게 눈이 내리고
조그만 새 한 마리
소리없이 날고 있다.
포구로 가는 길이
이제 보이지 않는구나
그 너머 섬들도
자취를 감춘다.
꿈처럼 떠다니던 섬들,
흰빛으로 사방에 쏟아져
눈 맞는 하늘
자취를 감춘다.
그대와 나만이 어깨로 열심히 세상을 가리고
아니 세상을 열고••••••
그대의 어깨를 안는다.
섬들보다도 가까운
어떤 음탕하고 싱싱한 공간이
우리 품에 안긴다.
- ‘눈 내리는 포구’, 황동규
나는 요새 무서워져요. 모든 것의 안만 보여요. 풀잎 뜬 강에는 살 없는 고기들이 놀고 있고 강물 위에 피었다가 스러지는 구름에선 문득 암호만 비쳐요. 읽어봐야 소용없어요. 혀 잘린 꽃들이 모두 고개 들고, 불행한 살들이 겁 없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있어요. 달아난들 추울 뿐이에요. 곳곳에 쳐 있는 세(細)그물을 보세요. 황홀하게 무서워요. 미치는 것도 미치지 않고 잔구름처럼 떠 있는 것도 두렵잖아요.
- ‘초가(楚歌)’,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조그만 사랑 노래’, 황동규
아직 멎지 않은
몇 편(篇)의 바람.
저녁 한끼에 내리는
젖은 눈, 혹은 채 내리지 않고
공중에서 녹아 한없이 달려오는
물방울, 그대 문득 손을 펼칠 때
한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
- ‘더 조그만 사랑 노래’, 황동규
연못 한 모퉁이
나무에서 막 벗어난 꽃잎 하나
얼마나 빨리 달려가는지
달려가다 달려가다 금시 떨어지는지
꽃잎을 물 위에 놓아주는
이 손.
- ‘더욱더 조그만 사랑 노래’, 황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