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제15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대중문화에 포위된 도시 젊은이들의 삶과 추억을 그린 시집. <무림일기>, <세상의 모든 저녁> 등 앞서 낸 시집에서 보여준 대중문화에 대한 풍자에다 1970년대 서울에서 커 온 젊은이의 문화체험이 녹아 있다.퇴락한 고향 하나대가 갖는 정서와 도시풍경이 맞서면서 은근히 화해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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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내용 요약
유하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은 1980년대 후반,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던 서울의 풍경을 배경으로 합니다. 저자는 당시 종로의 중심이자 전자 산업의 메카였던 세운상가를 거점으로 삼아, 그곳에서 성장한 소년의 시선으로 척박한 도시의 일상을 날카롭고도 감각적으로 그려냅니다. 🏙️
이 시집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세운상가라는 공간은 시인에게 거대한 철골 구조물과 전자 부품, 그리고 소음이 가득한 정글과도 같습니다. 화자는
자갈밭을 걸어간다
삶에 대하여 쉼 없이 재잘거리며
내게도 침묵의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자갈에 비한다면••••••
무수한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갔다
무수하게 야비한 내가 그들을 밞고 지나갔다
증오만큼의 참회, 그리고
새가 아니기에 터럭만큼 가벼워지지 않는 상처
자갈밭을 걸어간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우리는 서로에게 자갈이 되어주길 원했다
나는 지금, 자갈처럼 단련되려면 아직 멀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난 알고 있다, 저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고 또 지나도
자갈의 속마음엔 끝내 당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상처는 어찌할 수 없이, 해가 지는 쪽으로 기울어감으로
정작 나의 두려움은
사랑의 틈새에서 서서히 돋아날 굳은 살,
바로 그것인지 모른다.
- ‘자갈밭을 걸으며’, 유하
대나무숲, 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본다
저 바람 속 모든 새집은
새라는 육체의, 타고난 휘발성을 닮아 있다
머물음과 떠남의 욕망이, 한 순간
망설임의 몸짓으로 겹쳐지는 곳에서
휘파람 소리처럼 둥지는 태어난다
새는 날아가고
집착은 휘파람의 여운처럼
둥지를 지그시 누른다
매혹의 고통은 종종
새의 가벼운 육체를 꿈꾸게 한다
하여 나의 질투는 공기보다 가볍다
난 사랑하고 있으므로,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휘파람새가 비상하기 직전의 날개,
그 소리없는 찰나의 전율을 빌려
난 너의 내부에 둥지를 튼다
- ‘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보며’, 유하
길은 미래를 향해 뻗어 있지만
그 길을 만든 건 추억이었다
길은 속도를 위해 존재해왔다
하지만 추억의 몸인 그 길은 자꾸
속도의 바깥으로 나를 끄집어내곤 했다
실연의 신발은 속도를 갈망했고
사랑의 신발은 정지를 찬양했다
바뀐 사랑을 이끌고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추억은 그보다 오래된 추억을 지웠고
가까운 미래는 더 먼 미래를 지웠다
하여, 미래와 추억은 어느 순간 길 위에서 만났다
난 이미 낡아버린 신발로 미래를 추억하였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그 길은
내 암흑의 내부를 걷기 시작했고
비 내리는 내 기억들의 필름이 몸을 풀어
길의 미래가 되어주었다
- ‘내 몸을 걸어가는 길’, 유하
나이를 먹을수록
욕망은 역한 하수구 냄새를 풍긴다
그러므로 나는 시를 더 잘 쓸 수 있으리라
난 모든 종류의 학교를 경멸해
한데 왜 아직도 모범답안의 미소 안에
갇혀 있는 걸까
두서 없는 재즈의 육체가 부러웠어
너를 사랑한다, 말한 순간
너는 늘 거기에 없었지
헛세상, 헛마음, 헛기침
운명은 그저, 우주가 들려주는 소박한 선율이야
죽음은 좌절과 차원이 다른 것 같아
언제나 아픔은 살아 남은 자의 몫이지
그러나 나는 결코,
삶이 죽음의 아류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네
저녁의 막막함을 통과한 자만이
아침 햇살에 눈 멀리라 믿어
가장 더러운 암흑은 자기 몸 안에 있지요
난 영원히 거기에 충실할거야
- ‘재즈 2’, 유하
해운대 백사장을 걸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노을
오늘도 하루의 세상이 용서받는다
노을 같은 마음으로 살리라
내가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나를 낳았다는 생각,
욕망이 또 하루분의 나를 낳을 때,
파도의 운명을 생각했다
끊임없이 몰려오고 또 몰려오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삶의 모래사장 위에 글씨쓰기
지우개처럼 몰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고작, 글씨체가 불만스러웠다
노을이 마지막 손길을 저어 물었다
네 상처의 색깔도 나와 같니?
난 아직 멀었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뻔한 내러티브의 드라마
나는 한치 앞만을 내다보며, 웃는다
- ‘재즈 6’, 유하
아프리카 한 호수에 사는 물고기 중엔
일견 서로 다른 종류인 듯, 어미의 몸집이
아비에 비해 너무도 왜소한 것들이 있다
호수에 버려진 빈 달팽이 껍질 속에
알을 낳고 새끼들을 기르기 위해
아예 달팽이 몸의 크기로 진화된,
새끼의 안녕과 자기 본디의 몸을 맞바꾼
그 어미 물고기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누구나, 달팽이집 속에 산다
그녀들 생의 유일한 기쁨이 있다면,
달팽이집 밖의 세상을 잃어버린 고통의 힘으로
자신이 포기한 육신과 꿈의 부피 전부를
어린 자식들에게 남김없이 옮겨놓는 일,
무사히 자라난 자식들이 새삼 어머니의 왜소함을 비웃고
뿔뿔이 흩어져갈 때에도,
그녀는 그 비좁은 달팽이집을 떠나지 못한다
다시는 달팽이집에 들어오지 못할 만큼 커버린,
자식들의 낯선 눈동자에 감사하며
- ‘어머니’, 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