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지 않다. 재밌으면 안된다.
10년이란 세월을 돌이켜보면
그때의 하늘과 5년전의 하늘과
코로나 직전의 하늘과
코로나 이후의 하늘은 확연히 다르다.
취미라면 취미인 하늘 쳐다보다
사진찍기는 불과 3년 전엔 찍을만한 하늘이 아니었다.
아니 쳐다볼 엄두가 안났다.
서울에서만 보던 그런 뿌연 스모그 느낌이
내가 있는 곳 마저도 잠식시켜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을 선사했다.
코로나 이후로 인류세는 가동이 멈췄고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전 세계의 하늘은
내 눈동자에 비치던 우리 동네의 그 하늘을 되찾았다.
기쁘면서도 씁쓸한 세상이다.
책을 읽기전과 읽는 내내 떠오른 기억 중
2가지가 가장 잔상이 남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어릴 때 학교에서 했던 백일장에서
그림과 글쓰기의 주제인 환경보호,
즉 ‘지구가 아파요’ 같은 포스터가 생각났다.
단순히 ‘쓰레기 버리지 말자’ 라는 구호 외에는
어느 누군가가 그 시대 분위기를 망치려고 들지 않았다.
비눗방울 거품이 빠졌을때는 더더욱 더 불살라 살았으니.
분명히 그 이전부터 이 행성이
‘언제나 우리 인간들을 오롯이 받아주리라’ 하며
불철주야 태워댔던 화석연료 나라는
이미 저 세상 스타트 라인을 출발하여 가속도가 붙었다.
꽁무니에 불 붙은 것 보다 더 화력이 거세게.
부국강병 외치며 세계에 우뚝 선
우리나라는 그 지옥레이스에서 선두권을 제치고 있는 상황이니 내 어린시절의 포스터가 무색하다.
두 번째는 마블 영화의 타노스의 가치관이 생각났다.
핑거 스냅.
한정된 자원과 늘어나는 인구에 반비례하는 건
지구에게 우리 인류는 세균 덩어리기에 식량은 이게 전부니
서로 싸우거라 부추기는
지구의 방식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스탄불과 인도의 델리 사진 등등 세계의 사진들은
코로나19의 역설처럼 인류가 없어야
지구가 살아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히 보여주었다. 나도 세상을 살아가고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지만
암담한 미래는 당장 눈 앞에 없다며
긍정적으로 우리 인류가 제어할 수 있다는
개똥같은 생각을 버려야 할 때이다.
내가 언제 결혼해서 자녀를 놓을지 몰라도
지금 태어나서 자라는 2세들에게
그나마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하는
지금의 의무가 누구나 다 있기에
누가 ‘너 하나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냐?’ 한다면
마지막으로 박카스 광고의 수상스쿠버 부부님들의 말을 빌려
‘내가 지나온 길 만큼은 바뀐다.’ 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