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어릴적부터 늘 보고 듣고 읽고 명심했던 문장이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개미는 옳고 베짱이는 틀렸다는 이야기.
열심히 일하고 모는 것이 맞고, 노래부르고 현재를 즐기는 삶은 틀렸다는 이야기.
그 사고방식에 39년간 세뇌당한 채 살아왔다.
나는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불안강박 증세를 심하게 갖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않으면 왠지 나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난 늘 '생산성 향상'에 매달렸다.
-Google Calendar 로 일정을 관리
-Wunderlist로 그날그날의 할일을 관리
-Evernote 에 강의노트 시스템을 만들어서 강의체계를 잡고, 학생 및 학부모와 소통
-Dropbox 에 일과 관련된 모든 문서파일을 넣어두고 강의에 활용.
위에 쓰지 못한 여러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항상 시도하면서 내 일과 일상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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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도 변해갔다.
사회에 나와서 돈을 버는 일을 시작한 후로는
'책읽기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바뀌어버렸다.
읽고 싶은 책을 보기보단,
읽어야 하는 책 리스트를 스스로 만들고 억지로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소설'을 즐겨읽지 않게 된 점이다.
소설 책이라고 하면 딱히 읽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계기는 일본의 유명한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를 읽었기 때문이다.
다카시는 '소설책을 읽는 건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라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다.
그의 책이 꽤 재미있어서인지 소설에 관한 그의 생각에 공감을 하고, 의도적으로 소설책을 피하게 되었다.
한참이 지난 후 철학과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람의 감정을 잘 담아내는 '소설'에도 관심을 갖고 종종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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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에 매달리던 시절에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좀 더 게을러지기 위해서 생산성을 높이고 싶어. 일을 처리하는 시간을 줄인 만큼 놀고 싶어'
생산성을 높여서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함이 아닌 더 게을러지기 위함이 내 목표였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더욱 많은 일을 하면서 힘겨워하는 나를 봤다.
'왜 이렇게 일하면서 살아야 하는거지?'
'왜 돈을 모아야 하는걸까?'
'왜? 왜? 왜?'
물음표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을 계속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긴 어려웠다.
5개월 전 일을 관뒀다. 함께 사는 아내도 다니던 회사를 관뒀다.
그렇게 백수로 산지 반년이 다 되어간다.
수입은 줄었지만, 내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쓰고 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논다.
여행가고 싶을 때 아무데나 여행을 간다.
휴일, 휴가에 맞추지 않으니 성수기 요금을 내며 비싸게 여행할 필요가 없다.
니트족으로 5개월간 지내면서 소소한 변화도 생겼다.
늘 공부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불안과 강박증세가 거의 없어졌다.
늘 열심히 살았음에도 바닥을 치던 자존감도 많이 올라갔다.
자존감이 올라가니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어서 너무 좋다.
원래 계획인 '1년간 쉬기' 였는데, 그 기간을 늘리고 싶어진다.
나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말이 제일 싫다. 노동 후에 먹는 밥이나 맥주가 가장 맛있다고 말하지만 밥이나 맥주는 원래 언제나 그냥 먹어도 맛있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밥이나 맥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니트족을 위한 당당한 변명, 그러나 변명 이상으로 논리가 있는 동의 가능하며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저자가 일본의 니트족에 대한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고 않고 공통점이 많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