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소설『향수』는 냄새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정작 자신은 아무런 냄새도 가지지 못한, 한 악마적 천재의 기이한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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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편소설) 내용 요약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편소설)』(ISBN: 9788932920290)은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üskind)가 열린책들을 통해 홍성광 번역으로 2020년 7월 25일 출간한 장편소설로, 원제 Das Parfum: Die Geschichte eines Mörders는 1985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전 세계 48개국에서 2,000만 부 이상 판매된 현대 고전이다. 독일 뮌헨 출신의 쥐스킨트는 1981년 단막극 『콘트라바스』로 데뷔한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이 작품
평상시에 향수를 정말 좋아하는데, 대학교 때 좋아했던 친구도 향수를 진짜 좋아해서 매일같이 시향하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도 제목에 끌려서 집어 들었다. 다 읽고 나니, 향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이야기로 쓰일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그르누이는 18세기 파리, 그중에서도 가장 악취가 진동하던 생선 좌판 밑에서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그를 거쳐 간 사람들마다 이상하게도 그에게서 원초적인 혐오감을 느낀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르누이에게는 자신의 체취가 없었다. 나는 이 설정에서 이미 소름이 돋았다. 세상 모든 사람과 사물에게서 냄새를 읽어낼 수 있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예민한 후각을 가진 인간이, 정작 자기 자신은 아무 냄새도 갖지 못했다는 것. 그는 세상을 완벽하게 감각할 수 있으면서도, 세상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는 존재였다.
이 지점에서 나는 존재한다는 것과 감지된다는 것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보통 존재를 당연하게 여긴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것이라고. 근데 그르누이에게는 이 둘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존재했지만, 아무도 그의 존재를 감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냄새가 없다는 건 단순한 신체적 특이사항이 아니라, 세상이 그를 감지할 통로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그가 다른 사람들의 체취를 그토록 갈망하고, 결국 그것을 훔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하는 건 단순한 광기라기보다, 존재를 증명받고 싶다는 지극히 근원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평소에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그 흔한 마음도 결국 이 결핍의 아주 옅은 버전이 아닐까 싶었다. 그르누이는 그걸 그저 극단까지 밀어붙였을 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그르누이의 결핍이 무서웠던 진짜 이유는 그가 그저 타인의 냄새를 원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남의 존재감을 훔쳐서 자기 것으로 삼으려 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존재감 자체를 타인에게서 강탈하려는 마음은 얼핏 같은 결핍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관계를 향하고, 후자는 관계를 파괴하면서 그 파괴의 잔해로 자신을 채운다. 나는 이 차이를 보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체는 결코 잘못이 아니지만 그 결핍을 채우는 방식이 언제나 타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인지를 다시 생각했다. 그르누이는 그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자리에서 태어난, 결핍이 극한까지 순수해진 형태였다.
그가 스물다섯 명의 소녀를 죽여 만들어낸 궁극의 향수는, 인간이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냄새 하나로 완벽하게 흉내 낸 것이었다. 사형장에 선 그르누이가 그 향수를 뿌리는 순간, 그를 죽이려던 군중 전체가 그가 죄를 지었을 리 없다는 확신에 빠져 미쳐버린다. 나는 이 장면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근거 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이유가 그 사람의 인격이나 행동에서 온다고 믿는다. 근데 이 소설은 그 사랑이 사실 아주 정교하게 조합된 화학적 신호 하나로도 완전히 조작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확신하는 사랑의 근거들도, 사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훨씬 원초적인 감각의 층위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건 아닐까. 이성이 뒤늦게 이유를 찾아 나서기 전에, 몸은 이미 냄새와 체온과 목소리의 떨림 같은 것들로 먼저 판단을 끝내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그르누이는 그 향수를 뿌린 채 파리의 뒷골목으로 걸어 들어가 사람들에게 산 채로 뜯어 먹힌다. 나는 이 결말에서 사랑받는다는 것의 가장 잔인한 얼굴을 마주했다. 그가 평생 갈망했던 건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누군가 확인해주는 일이었다. 근데 그 갈망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를 통째로 삼켜버린다. 사랑받는다는 것과 삼켜진다는 것이 이렇게 종이 한 장 차이로 붙어 있다는 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에게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소망은, 그 끝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결과와 맞닿아 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이 결말을 곱씹으면서, 완전한 사랑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상대가 나를 남김없이 원해주기를, 나의 모든 것에 압도되기를 바란다. 근데 그 바람이 정말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상상해보면, 그건 상대가 나를 온전히 소유하게 되는 순간과 정확히 겹친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의 끝에는 늘 두 개의 문이 있었다. 하나는 함께 존재하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존재가 상대에게 완전히 흡수되어버리는 문. 그르누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두 번째 문을 향해 평생을 걸어갔던 셈이다.
이 소설을 덮고 나서 나는 향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늘 향수를 고를 때 이 향이 나를 어떻게 표현해줄까를 생각했다. 근데 그르누이를 보고 나니, 향이라는 게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려는 아주 절박한 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매일 몸에 향을 두르는 행위는 나는 여기 존재한다는 그 가장 기본적인 확인을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해주는 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향을 고른다는 건 단순히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떤 존재로 매일 아침 다시 세울지를 정하는 일에 가까웠다. 나는 그동안 향을 통해 나를 표현하려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향을 통해 매일 나를 확인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워낙 유명했기에 결말을 알고 읽게 되었다. 보면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소재와 스토리에 놀랐다. 정말 나에게 기회가 주어준다면 기억을 잃고 다시 읽고 싶다. 만약 결말을 모르고 봤다면 온몸에 더욱더 큰 전율이 느껴졌을 것 같다. 아직도 쥐스킨트 향수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력 추천한다. 꼭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나와 생일이 같단 이유 만으로, 운명적으로 만난 '향수'.
냄새 천재(?) 그르누이는 최상의 향수를 얻기 위해 25번에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평소 모습은 어수룩하고, 천진난만하기 때문에 더 소름 돋는다. 모든 향과 냄새를 쪼개서 맡을 수 있는 후각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향수를 만들기 위해 악행을 죄책감 없이 하는 그르누이를 보면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전공이 역사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18세기의 유럽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놨다. 계몽주의가 퍼지고 세상은 나날이 변해 가지만, 아직도 구시대적으로 살아가는 평민들의 모습들... 마치 유럽판 풍속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고 할까?
처음부터 사랑 받지 못한 채 태어난 그루누이
냄새는 그에게 처음으로 세상을 알게 해주었고 삶을 살게 해주었다.
삶의 평생을 향기를 쫓아다니다 알게 된 것은
그는 절대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며,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은 냄새처럼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은채 그렇게 그다운 모습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