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올해로 데뷔 21년 차를 맞는 김행숙의 여섯번째 시집. 온전히 완성될 수도, 완벽히 새로울 수도 없는 불가능한 글쓰기의 숙명을 마주한 채 '진정한 말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모색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심부름꾼 k가 내놓은 이야기들'로 자신의 고민을 구체화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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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김행숙 시집) 내용 요약 📖
김행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는 시적 화자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미로 속을 유영하며 마주하는 파편화된 감각과 기억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작품집입니다. 시인은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사물이나 낯선 타인의 표정, 혹은 기억의 이면에 숨겨진 비정형적인 흔적들을 길어 올립니다.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심부름’이라는 단어는 우리 삶이 무언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암시를 주지만, 시 속의 화자들은 그 목
네가 나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장소들이 궁금해.
너는 어디에 있는 나를 기억할까.
너의 상상력은 나를 어디까지,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나를 상상하는 너를 상상하면 나는 네 주위를 하염없이 맴돌 수 있을까. 너를 상상하는 나를 상상하면 너는 내 품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을까.
너는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한참을.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중얼거렸지.
미안합니다, 너는 사람을 잘못 봤다고 몹시 부끄러워했어.
내가 사람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때 나는 생각했지.
너는 왜 부끄러울까.
그때 너는 다른 시간 속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그때 나는 너의 등 뒤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내가 비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런데 내 모습이 그렇게 변한 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검은 우산이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거의 젖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그날 우산도 없이 빗속에서 나를 찾으러 어딜 그렇게 그렇게 쏘다녔을까.
- ‘의식의 흐름을 따르며’, 김행숙
무덤을 안은 듯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죽은 사람 비슷하다.
목소리는 나를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도처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언젠가는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 헤매다가 내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직접 들은 적도 있다. 나는 나를 쫓아갔지만 목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또 무서운 꿈을 꿨구나, 어린 시절에 엄마는 나의 혼란을 그렇게 정리해주었다.
꿈이면 무서워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고, 죽여도 괜찮은 것일까. 그래서 인생을 꿈같다고 말할 때 두 눈을 껌벅이는 것일까. 인생이 꿈같으면 죽었다가 살아나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진짜처럼 죽었다가 또 거짓말처럼 살아나기를 얼마나 되풀이하게 되는 걸까. 이것이 대체 몇 번째 겨울나무란 말이냐. 분명히 꿈에서 비명을 질렀는데 일어나보면 현실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몇 번째 봄나무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한 그루 겨울나무를 알몸처럼 껴안고 있다. 펄펄 흰 눈이 내리고•••••• 설령 여기서 내가 잠이 든대도 이것은 꿈같지 않다.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김행숙
그날 밤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들은 내게 질문을 하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 합니다. 깨진 진실의 한 조각을 그날 밤 내가 보았다고 합니다. 그걸 쥐면 칼을 쥐는 거라고, 칼을 쥐면 찌를 수 있다고, 드디어 우리는 세계의 거대한 고름 주머니를 폭죽처럼 터뜨리는 거라고, 너는 위대한 목격자라고 유혹합니다. 내가 마지막 한 조각을 맞추면 아름다운 항아리가 완성되는 거라고, 우리는 거기에 한아름 불타오르는 장미를 꽂을 거라고, 준비한 꽃이 시들면 안 된다고, 실망시키지 말라고 했을 때, 나는 사랑에 빠진 자의 무서운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질문을 하지 않고 대답을 하면 내가 과연 정답을 맞힐 수 있을까요? 그날 밤 그, 그것은 나의 입김이었다고 말하면 안, 안 될까요? 추운 겨울밤에 어떤 사람들은 그런 허연 유령들을 쫓아 지그재그로 보도를 걸어가지 않습니까?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스르륵 사라지는 유령은 텅 빈 서랍입니다. 그 안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이 걸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세상, 그리고 세상이란 서로의 입술을 깨물며 노는 즐거운 이야기 지옥, 그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지 않을래? 나는 당신을 데려••••••가 완전히 묻어버리고 싶습니다. 내 무서운 사랑을 바로 당신이 받아야 합니다.
- ‘공범자들’, 김행숙
전생에 읽었고•••••• 그리고 두 번째 읽는 책 같군,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을 하네
자신한텐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고 누군가 주고 간 두 번째 심장을 닮았네
당신을 다 잊은 후에•••••• 이것이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모를 사랑을 하네
- ‘에코의 중얼거림’, 김행숙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벌이라면
기다림은 괴로워야 한다
잠을 기다리는 나의 자세를 바꿔야 할 것 같다
나귀처럼
언제든 잠이 와서 끌고 갈 수 있게 목에 포승줄을 걸어야겠다
침대 옆에
줄을 매어둘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겠다
잠을 기다리며
구덩이를 파야겠다
깊어지는데••••••
점점 깊어지는 것은 구덩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늘 밤엔 잠이 오는 것이 벌일지도 모른다
내가 판 구덩이에서
어수선하게, 죽은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 ‘잠을 기다리며’, 김행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