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기 작가님은 경력이 화려합니다. 판사, 변호사 다 해보셨으니까요. 다른 작가님들이 그저 머리 속으로 그려볼 수 밖에 없던 상황을 현실에서 몇번이나 직접 접하셨습니다. 추리 소설을 쓸 때 다소 유리한 부분입니다. 그런 배경이 이 작품의 기대감을 올립니다. 그리고 그 경험과 지식들을 작품에 잘 녹여내셨습니다.
이 작품은 데뷔작입니다. 다른 데뷔작들처럼 힘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진짜 내가 제대로 한번 써봐야지”라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충분히 고심해서 만들었다는게 느껴지는 정성스러운 트릭들이었습니다. 알리바이 위장 트릭이 특히 좋았어요. 다만 트릭 중 하나가 <명탐정 코난>에서 나왔던 것과 아주 비슷한게 흠입니다. 저는 세상 추리물이란 추리물은 다 보는 추리 오타쿠라서 눈에 밟히더라구요.
아쉽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범죄 형질의 유전 컨셉은 너무 나갔습니다. 롬브로소가 범죄자가 될 얼굴이란걸 주장한 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았습니까. 현재는 유사 과학으로 판명 됐구요. 공격 성향이 유전 될 순 있지만 범죄는 순전히 개인의 자유 의지입니다. 저주 받은 핏줄 같은 건 드루리 레인이 현역으로 활동 할 때나 쓰이던 컨셉이에요.
종합하자면 이렇습니다. 작가님의 법 지식이 잘 녹아있습니다. 트릭들은 좋습니다. 본격 추리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주 받은 핏줄 컨셉은 아쉬워요. 너무 낡은 컨셉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 단점은 데뷔작이란걸 생각하면 사소한 수준이지요. 결론적으로 전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붉은 집 살인사건 - 도진기
판사출신 변호사 겸 추리소설 작가인 도진기님의 2016년 작품이다.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 이번에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역시 재미있고 마지막은 약간 예상치 못한 반전이 포함된 이야기다.
도진기님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시리즈가 있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과 백수탐정 진구 시리즈이다. 이 책은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이다. 어느날 고진에게 남광자라는 여인이 사건을 의뢰한다. 평생을 수발하며 지내온 오빠가 암에 걸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유언을 녹음하는 것을 얼핏 들은 그 남광자가 오빠의 재산을 일부 상속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기 위해 고진을 부른 것이었다.
오빠는 서울대학교의 교수인 63세의 남성룡 교수이고 남광자는 그녀보다 1살 어린 62세였다. 오빠의 곁에서 시중을 들며 살아온 남광자는 하나뿐인 동생으로서 어느 정도의 유산 상속을 원하는 것이었다. 남광자가 사는 붉은 집엔 두 집이 살고 있었는데 서씨와 남씨의 악연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층에는 서태황이라는 군인 출신의 배다른 형제가 살고 있었다. 서태황의 아버지와 남광희의 어머니는 자식들이 있는 상태에서 재혼을 해서 1층의 서태황과 2층의 남성룡, 남광자는 형제가 되었다. 그런데 서태황의 아버지 서판곤씨가 남광자의 어머니 이분희씨를 잔인하게 살해한 일이 발생한다. 그래도 자식들은 서로 같은 집에서 1층과 2층에 살면서 지낸다.
문제는 남성룡이 유언으로 녹음한 내용에 따르면 1순위는 자신의 딸인 남진희로 하고 2순위가 서...로 한다는 것이었다. 서 다음은 듣지 못했지만 서씨를 2순위로 한다는 것 때문에 남광자는 고진에게 자신이 어느 정도 상속을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복잡한 두 가족의 이야기에 대해서 자세히 들려준다.
1층에 사는 서태황에게는 3명의 자식이 있었다. 서형일, 서두리, 서해리의 3남매였다. 그리고 남성룡에게는 남진희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두 가족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로 부르며 자식들도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서태황씨의 부인 박은순이 2년 전쯤에 살해당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이 얘기를 들은 고진은 한 집안에서 두 번의 살인사건은 흔치 않은 일이라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고진은 남광자가 상속을 받을 수 있도록 일을 추진하는데 남성룡의 딸 남진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남진희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던 고진은 그녀의 죽음이 범인이 자신에게 하는 선전포고라고 생각하고 사건을 조사한다. 고진은 변호사 신분이라 서초 경찰서 강력팀장 이유현과 함께 다니며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두 집안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다. 의뢰인의 편에서 모든 상황을 의뢰인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일을 조종하고 진행시키는 고진의 큰 그림을 마지막에 알게 된다.
끝까지 읽다보면 어둠의 변호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빠져들게 된다. 도진기님의 다른 작품과 단편 소설들도 읽어보길 권한다.
20211009 등장인물을 제한하고 범인과 트릭에 집중하는 올드 스쿨 스타일의 추리 소설. 요즘 소설과 달리 특별한 사족이 없어서 되려 신선한 감이 있었고 신박한 트릭과 심리전이 일품이었음. 한국에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게 놀라웠음. 포멧은 19세기 내용은 21세기인 멋진 작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