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장편소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일상을 배경으로 사랑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전혀 다른 두 사랑 앞에서 방황하는 폴을 중심으로 로제와 시몽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도서 DB 제공: 알라딘
이 책 어때요?
Q&A
이 책의 한줄평
15
게시물
24
이 책이 담긴 책장
오늘 독서, 어떻게 시작해 볼까요?
요약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랑과 외로움을 섬세하게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폴은 39세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오랜 연인 로제와의 관계에 지쳐 있다. 👩💼 로제는 자유로운 삶을 즐기며 폴에게 헌신하지 않는다. 어느 날, 폴은 젊은 남자 시몽을 만난다. 시몽은 25세로, 그녀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고백한다. ❤️
폴은 시몽의 순수함에 끌리지만, 나이 차이와 로제와의 과거 때문에 망설인다. 그녀는 시몽과 함께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잠깐의 행복을 느낀다. 🎶 그러나 로제가 다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제목을 처음 봤을 땐 그냥 취향을 묻는 가벼운 질문인 줄 알았다. 근데 다 읽고 나니 이 질문이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이 지점에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는 행위가 사실 얼마나 드문 애정의 표현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취향을 묻는다는 건 단순히 좋고 싫음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무엇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는지, 그 사람 안에 어떤 세계가 들어 있는지를 궁금해한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그 사람의 일상을 챙기고 그 사람 곁에 머무는 걸로 확인하는데, 취향을 묻는 건 그보다 훨씬 안쪽을 향한 관심이다. 하루를 함께 보내는 건 그 사람의 삶에 참여하는 일이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묻는 건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조차 무엇으로 채워지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일이니까.
폴은 서른아홉 살의 실내장식가로, 로제와 오랫동안 안정적이지만 뜨겁지는 않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로제는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자들과의 외도를 당연하게 여기고, 폴 역시 그런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나는 여기서 이해라는 단어가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체념을 감추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이해한다는 걸 성숙한 사랑의 증거처럼 여기지만, 폴의 이해는 사랑이 성숙해서 나온 게 아니라 사랑이 이미 식어버린 자리를 조용히 견디는 방식에 더 가까웠다. 이해라는 말이 때로는 포기의 가장 우아한 이름일 수도 있다는 것. 진짜 사랑이라면 오히려 이해하지 못해서 다투고, 서운해하고, 그 감정을 계속 표현하며 부딪혀야 하는데, 폴에게는 그 부딪힘조차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게 상대의 어떤 부분도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한다는 뜻이 되어버렸을 때, 그 이해는 관계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관계가 이미 멈춰버렸다는 걸 가장 정중하게 알려주는 신호였다.
그런 그녀에게 스물다섯 살의 시몽이 다가온다. 시몽은 로제처럼 그녀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그녀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까지 하나하나 궁금해한다.
나는 이 두 남자를 나란히 놓고 보면서, 사랑받는다는 것과 익숙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쉽게 자리를 뒤바꾸는지를 생각했다. 로제는 여전히 폴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물을 필요가 없다고, 이미 다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근데 그 확신이야말로 관계를 가장 조용히 죽이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오래 곁에 둘수록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해 덜 궁금해하게 되는데, 그건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시선이 멈춰버렸기 때문일 때가 더 많다. 그러니 그 순간이 어쩌면 사랑이 관계로, 관계가 습관으로 넘어가는 지점이었다.
시몽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가 더 잘생기거나 더 다정해서가 아니라, 폴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 안에서 폴은 로제와의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여전히 궁금해할 만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다시 사랑받고 싶어지는 순간은 대개 그 사람이 나를 아직 다 모른다고 느낄 때라는 걸 깨달았다. 완전히 이해받는다는 것과 완전히 발견된다는 것은 얼핏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전자는 안정을 주지만, 후자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준다.
폴은 결국 시몽에게 잠시 흔들리지만, 소설의 끝에서 다시 로제에게로 돌아간다. 처음 이 결말을 마주했을 땐 솔직히 아쉬웠다. 시몽이 그녀의 세계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궁금해했는데, 그녀는 결국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 곁으로 돌아간다. 근데 다시 곱씹어보니, 이 결말이야말로 사랑에 대해 훨씬 솔직한 결말이었다. 폴이 로제에게 돌아간 건 그를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미 함께 쌓아온 시간의 무게와 그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어떤 관계를 지속하는 이유가 늘 사랑의 크기와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때로 우리는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관계를 버리고 난 뒤에 감당해야 할 낯섦이 두려워서 익숙한 자리에 남는다. 시몽이 준 그 생생한 관심은 분명 폴을 다시 살아있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 관심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미래이기도 했다. 로제와의 삶은 뜨겁지 않아도 예측 가능했고, 그 예측 가능함이 주는 안전함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셌다.
나는 이 대목에서, 사람이 결국 선택하는 건 더 큰 설렘이 아니라 더 견딜 만한 불확실성일 때가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시몽을 택했다면 폴은 다시 궁금해하는 사람 곁에서 살 수 있었겠지만, 동시에 언젠가 그 관심마저 시들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과도 함께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로제에게 돌아간 건 패배가 아니라, 이미 겪어본 상실과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상실 중에서 그나마 익숙한 쪽을 선택한 것에 가까웠다.
시몽이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물었던 그 질문이 소설 끝까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 소설의 제목이 물음표가 아니라 말줄임표로 끝난다는 걸 알고 나니 더 그랬다. 물음표였다면 시몽이 던진 질문 자체였겠지만, 말줄임표는 그 질문 앞에서 선뜻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폴의 목소리였다. 그 질문은 결국 음악 취향에 대한 게 아니라, 그녀 자신이 한때 브람스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조차 잊을 만큼 로제라는 한 사람에게 자신을 통째로 내어주고 살아왔다는 걸 그녀 스스로에게 되비추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덮으면서, 우리가 관계 속에서 서서히 잃어가는 게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어쩌면 스스로에게 무엇을 좋아하냐고 묻는 그 습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상대의 취향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더 익숙해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조차 잊어버린다. 폴이 로제에게 돌아간 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시몽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결국 로제에게 돌아갔다 해도, 한 번 그 질문에 부딪혀본 사람과 한 번도 부딪혀본 적 없는 사람은 같은 익숙함 속에 있어도 전혀 다른 무게로 그 자리를 견딘다. 그 질문이 그녀에게 남긴 건 답이 아니라, 자신이 언젠가 무언가를 스스로 좋아했던 사람이었다는 흐릿한 기억이었다.
시몽이냐 로제냐,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 그 선택을 묻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다 읽고 나면 정작 중요한 건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내가 여전히 나로 남아 있는지, 나만의 취향과 세계를 잃지 않고 있는지였다는 걸 알게 된다. 폴의 비극은 어느 쪽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오랫동안 그 질문 자체를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고 살아왔다는 데 있었다.
누군가를 오래 사랑할수록, 사람은 그 사랑 밖의 자신을 궁금해하는 일에 점점 게을러지는 것 같다. 매일 같은 식탁에서 같은 사람과 밥을 먹고, 같은 계절에 같은 여행지를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내 취향이 그 사람의 취향과 구분이 안 될 만큼 겹쳐진다. 그게 편해서 좋다가도, 문득 그 겹침이 나를 지워가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지금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일까.
해석 덕분에 별점 +1 했다.
읽으면서는 주인공들의 마음이나 행동이나 이해되는게 거의 없었는데, 그렇게 해서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사랑의 덧없음‘이라는 걸 알고나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정서나 문화가 많이 달라 주인공들의 행동에 대한 의미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특히 프랑스인들이 브람스를 안좋아한다는 것, 브람스가 시몽과 폴같은 상황이었음을 )
그리고 왜 자꾸 춤추러 가자는 거야;;
아직 사랑을 해본 적은 없으나 수많은 로맨스물로 다져진 나의 견해로 오래된 연인관계는 사랑 자체보다 믿음과 익숙함이 두드러지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권태도 오고 소홀해지고 다른데로 눈길도 가고 하는 거지.
근데 일단 로제는 쓰레기가 맞다~^^..폴 개답답함..고독하다며!! 시몽과 있으면 너무 열정적이고 다른 세계같아서 힘들었나?…불안했을 것 같긴해
어쨌든 이 책을 읽음으로써 오늘도 사랑에 대한 환상은 한 겹 벗겨져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