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E. H. 카의 '제2판 서문'과 R. W. 데이비스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도서 DB 제공: 알라딘
이 책 어때요?
Q&A
이 책의 한줄평
0
게시물
1
이 책이 담긴 책장
오늘 독서, 어떻게 시작해 볼까요?
요약
역사란 무엇인가 내용 요약
『역사란 무엇인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Edward H. Carr)가 저술하고, 이윤영이 번역한 역사철학 입문서로, 2014년 8월 30일 까치에서 출간되었다(ISBN: 9788972915812). 📚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 강연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252쪽에 걸쳐 역사의 본질, 역사학자의 역할, 사실과 해석의 관계를 탐구하며, 역사학의 방법론과 철학적 질문을 명쾌히 풀어낸다. 🕰️ 카는 20세기 국제정치와 소련사를 전문으로 한 학자로, 이 책에서 “역사
'역사란 무엇인가'를 처음 진지하게 읽었던 게 한창 사학과 진학이나 역사학연구원을 꿈꾸던 시기였다. 그때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그 유명한 구절을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인용하고 다녔는데, 이 책을 제대로 읽고 나서야 그 말이 품고 있는 진짜 의미를 알게 됐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역사가 손댈 수 없는 객관적 사실, 신성불가침한 무언가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에드워드 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무수히 많은 사실들이 존재했고, 그중에서 역사가가 의미 있다고 판단해서 골라낸 것들만이 지금 우리가 아는 역사가 됐다는 것. 그러니까 역사는 완전히 객관적인 것도, 완전히 주관적인 것도 아닌, 그 둘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학문이라는 거다.
자신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 없는 존재이고, 자신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하다는 문장이 특히 오래 남았다. 결국 역사를 한다는 건 과거에 대한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과, 그중에서 지금 의미 있는 것들을 골라내는 것,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자연과학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계속 판단하고 선별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그때는 어렴풋이만 알았는데 지금은 훨씬 더 실감한다.
지금 나는 증권시장이랑 금융위원회를 출입하는 경제부 기자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사실들, 공시, 발표, 통계, 발언들 중에서 무엇이 지금 이 순간 의미 있는 사실인지를 골라내는 게 결국 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에드워드 카가 말했던 그 문장이 계속 다시 떠오른다. 어떤 정책 발표나 지표 하나도 그 자체로는 그냥 파편적인 사실일 뿐인데, 그걸 왜 지금 벌어졌는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과거의 어떤 흐름과 이어지는지를 붙여서 봐야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예를 들어 지금의 어떤 금융 정책도 그냥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과거의 위기나 실패, 이전 정부의 판단 같은 것들과 계속 대화하면서 나온 결과다. 결국 시장을 이해한다는 것도,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을 읽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이 문장을 역사학이라는 학문 안에서만 이해했는데, 지금은 매일 아침 뉴스를 읽고 판단해야 하는 이 일 안에서도 똑같이 이 문장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개인은 결국 사회 안에서 정책에 항의하고 투쟁하고, 그 정책을 바꿔나간다는 대목도 다시 보게 됐다. 개인이 아무리 독립적으로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결국 그 목소리는 사회라는 틀 안에서 나오는 거고, 그 사회 역시 개인들의 투쟁으로 계속 바뀌어간다는 것. 지금 시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움직임들도 마찬가지다. 개인 투자자들의 목소리, 기업들의 이해관계, 정책 당국의 판단이 서로 부딪히고 타협하면서 지금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사회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상호작용하면서 지금의 그림을 그려낸다는 걸, 예전엔 역사책 속의 3.1운동이나 5.18 같은 사건으로만 이해했는데, 지금은 매일 다루는 정책과 시장의 움직임 속에서도 똑같이 확인하게 된다.
역사가는 다만 그 행렬의 어느 한 부분에 끼어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돋보이지 않는 존재일 뿐이라는 문장도 다시 곱씹게 된다. 그때는 그게 역사가의 겸손함에 대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지금은 나도 매일 그 행렬 속의 한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의 압력을 받으면서, 동시에 과거의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사실을 골라내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때 이 책을 읽으며 품었던 꿈은 결국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그 문장만큼은 방향을 바꿔서도 여전히 내가 매일 하는 일의 중심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