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 함께 살았던 친구가 자기 인생에 최고의 책이라며
생일 선물로 주었다. 한동안 읽지 못하고 있다가 생각이 나서
읽기 시작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는 신학자가 회고록의 형식으로 쓴 책이다. 기독교 윤리학자이자, 현시대 최고의 신학자로 이야기되는 사람이다. 아직 신학의 깊이가 얕아 이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을 통해 신학 함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순한 학문적 내용만 기술한 책이 아니라 삶 가운데 신학을 녹여 기술하고 있기에 마음에 더 크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신학에 입문하고, 사역자로서 살아가기 시작한 풋내기에게 생기는 많은 고민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천 신학이라는 부분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게 해준 책이다. 그전까지는 실천 신학의 분야를 등한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실천 신학을 등한시한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읽고 또 읽으면 그때마다 나에게 신학적 의미를 찾게 해 줄 것 같은 책이다.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나는 실천 이성의 한 형태로 신학을 수행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신학적 주장들을 구성하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낫다." -한나의 아이 中-
"한나의 아이" 미국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삶의 이야기이다.
얇지 않은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가 우선 두려움을 들게 만드는 책이다.
사실 스탠리 하우어워스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찾아보니 내 책장에 스탠리의 책이 한권 있었다. 그곳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뭐 이건 나의 무식이 드러나는)
어찌되었건 사전 정보는 없지만 너무나 좋은 서평과 북클럽을 위해 읽었다.
우선 이 책을 향한 유수의 목사님들의 서평과 sns의 글들은 이 책에 대한 기대를 끌여올려놓았다.
사실 책을 읽어나가며 특별히 앞의 몇 챕터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나는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이유 2001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신학자"의 인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솔직하고(당황스러운 정도로), 너무 담담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말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지 않는다.
그의 삶의 어떤 결정들에 대해서 그는 함부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카톨릭신자가 굉장히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카톨릭신자가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내가 카톨릭 신자가 되었을 때 헤어지겠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교수로서 학교를 옮겨야 하는 문제 앞에서 그의 선택의 매우 중요한 부분은 연봉이었다.
스탠리는 자신의 삶을 그렇게 바라본다.
글을 읽으며 수 없이 이곳을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겠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정신질환 아내의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고 적나라해서 보는 이들을 당혹하게 한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가 이야기하는 그의 인생이 진짜 우리네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많은 "은혜"를 이야기한다. 어떤 것만 선택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믿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너무 기독교 문화에 익숙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목사인 내가 "운이 좋아서요"라는 말을 하면 누군가는 분명히 이렇게 지적한다. 목사님이 '운이 좋다는 말이 뭔가요?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야죠.
과거 신학을 하게 되었을 때 나를 아는 많은 이들이 나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신학을 하게 되었냐고?(사실 난 신학을 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훌륭한 성도로 살고 싶은 1인이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냐고?
그런데 솔직히 나는 어떤 특별한 응답을 받은 일이 없다. 물론 나의 앞길을 두고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철저히 침묵하셨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그저 "이제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책이 좋아져서 신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은 기독교 언어를 당연히 생각하며 사는지 모르겠다.
때때로 그 기독교 언어는 우리를 정직하게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하여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그 문화와 언어가 오히려 우리를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기독교 문화와 언어보다는 이 시대에 훨씬 더 솔직함이 많은 이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의 삶과 교회를 더욱 돌아보게 되었다.
나눔교회를 이야기하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내와 첫째딸만 데리고 시작한 교회 개척이 5년 8개월이 지난 지금 놀랍게 2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춘천지역에서는 그리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은 몇가지 분명한 현실적인 것들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개척교회가 갖지 못한 것들..
나는 이중적 목사다. Ngo단체인 해비타트에서 일한다. 그래서 교회 재정에서 내 생활비를 다 받지 않아도 된다. 또한 지금 나눔교회 예배당이 위치한 건물은 나의 부모님의 건물이다.(이 말은 나눔교회를 상가교회지만 월세를 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두가지는 개척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다. 지금의 나눔교회를 이야기할 때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이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기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했더니 지금처럼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왜인가? (굳이 대답은 안하겠다)
또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신학자이지요 매우 실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꽤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다. (사실 이 외에도 인상적이어서 밑줄 쫙 그은 부분이 엄청 많다)
우리가 말하는 바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교회나
세상을 전혀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의 실제 모습을 알면서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변화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분명한 실체를 갖춘 교회가 필요하다
기독교 신앙 속에는 매우 모호한 부분들이 참 많다.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고,
우리는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믿는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으며,
우리는 소망을 이야기하지만 그 소망에 대해서도 모호하거나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그래서 좋다.
사실 이 책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유는 스탠리의 삶이 내 삶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부분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돌아보니 비슷하게 해낼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고. 또 그 사이에서 나는 위대한 신학자의 지혜를 배웠다.
이 책의 부제는 "정답 없는 삶속에서 신학하기"있다.
우리의 삶은 오늘도 정답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안에서 신앙인으로 여전히 신학을 하며 모두 신학자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