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펴냄

붕대 감기 :윤이형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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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0.1.14

페이지

200쪽

이럴 때 추천!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 고민이 있을 때 읽으면 좋아요.

상세 정보

제5회, 제6회 젊은작가상, 제5회 문지문학상, 201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윤이형의 신작소설이다. 리얼리즘과 SF·판타지 등을 오가는 개성적인 서사로 주목받은 윤이형은 2007년 첫 번째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를 펴낸 이래,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내는 등 꾸준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붕대 감기』는 ‘우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휘몰아치는 복잡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첨예한 문제의식과 섬세한 문체로 묘파하며 작가가 현재 몰두하는 ‘여성 서사’라는 화두를 가장 적실하게 그려 보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소설에서는 계층, 학력, 나이, 직업 등이 모두 다른 다양한 여성들의 개별적인 서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불법촬영 동영상 피해자였던 친구를 보고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미용사 지현, 영화 홍보기획사에 다니는 워킹맘이자 의식불명에 빠진 아들 서균을 둔 은정, 그런 서균과 한반인 딸 율아의 엄마 진경, 진경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기획자인 세연 등 바톤터치를 하듯 연결되는 이들 각자의 사연은 개인의 상처에서 나아가 사각지대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환부에까지 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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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miriju4k

145. 서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 부분이 발견될 때면 논쟁을 하는 데도, 화해하는 데도 다소 시간이 걸렸다. 채이의 친구들과 형은의 친구들은 같은 자리에 함께할 수 없는 관계였다.

여성주의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관점이 다르고 진영이 달랐다. 몇 번인가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서로 소개하고 세미나 비슷한 것을 열어보려다 실패한 뒤로 채이와 형은은 오랜 적대를 쌓아온 두 국가의 수장들처럼 피로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말하곤 했다. 이건 우리 힘으로 안 되나 봐.

🌱어쩌면 안 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형은은 말했다. 서로 가려는 방향이 전혀 다른데,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닌데, 억지로 함께 가자면서 차이를 뭉개버리는 게 옳아? 우리는 자기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당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하자는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야. 자꾸 머리를 눌러 짜부라뜨리려는 손이 있는데 어떻게 그 손을 잡아?

하지만 ✔️만나서 얘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평행선이잖아, 채이는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말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걸까? 의제 하나에 쌍둥이처럼 집회가 두 개씩, 그것도 동시에 열리는 게 너는 바람직해 보여? 나는 부조리 해 보이는데. ✔️언제까지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살면 어떻게 발전을 하지? 우리는 서로의 대립항이 되기 위해서 이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잖아. 우리가 가진 공통점은 왜 중요하지 않아?

147. 형은의 다름이 채이를 화나게 하고 미움을 솟구치게 했다. 체온이, 함께한 시간이, 열이 내렸는지 보려고 서로의 이마를 짚어보던 밤의 기억이 있어서 그들은 가까스로 영원히 헤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들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렵고 어색하더라도 🌱서로를 마주 보고, 이름을 말하고, 자기소개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것들을 나눠 갖기 시작할 수 있을까, 채이는 생각했다.

그들은 학점 걱정을 해야 했다. 생활비 걱정을 해야 했고,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어야 했고, 언제 다시 걸려올지 모르는 천의 협박 전화에 대비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내야 했다. 공부를 해야 했다. 그들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세상에는 더 많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종종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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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지음
작가정신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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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miriju4k

136. 🌱평범한 곳에서 남들은 찾아내지 못하는 반짝이는 사유를 길어 올리는 능력이 진경에게는 있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언어를 배열하고, 사람들에게서 숨은 장점을 끄집어내고, 어떤 끔찍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사람이라도 웃게 만드는 재능 또한 있었다.

저 아이는 아무래도 작가가 될 것 같네. 소설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시 쪽이 더 어울려. 세연은 부러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렇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버리면 나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견디지 못할 거야, 생각하기도 했다.

세연은 진경을 동경하면서 남몰래 미워했다. 너는 정말이지 살만 빼면, 좀 꾸미고 다니기만 하면 인기가 많을 텐데. 남자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진경이 떠올랐다. 남자들에게 세연은 편하게 야구와 축구와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생긴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만한 사람, 똑똑하고 재미있어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지만 '여자'는 아니었다. ✔️그 관계들은 동등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세연은 곰곰이 생각했다.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진경 같은 여자들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었 던게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연 같은 여자 역시 어딘가 하자가 있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그들이 세연을 같은 인간으로 존중했다면 자신들의 섹스 경험을, 여자들에게 했던 악행을, 그렇게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같은 여자로 세연이 느낄 모멸감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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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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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miriju4k

123. 형은은 한참을 더 울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형은의 어깨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친구라는 그 명랑한 인상의 아이는, 저랑 형은이가 항상 나쁜 일로만 만났거든요, 하고 말했다. 기쁜 일이나 축하할 일로 만날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기쁜 일이 생겼네요.

기쁜 일이 왜 없니, 명옥이 말했다. 너희는 기쁜 일 투성이여야 되는데. 🌱우리 인생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너희 인생을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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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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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제6회 젊은작가상, 제5회 문지문학상, 201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윤이형의 신작소설이다. 리얼리즘과 SF·판타지 등을 오가는 개성적인 서사로 주목받은 윤이형은 2007년 첫 번째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를 펴낸 이래,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내는 등 꾸준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붕대 감기』는 ‘우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휘몰아치는 복잡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첨예한 문제의식과 섬세한 문체로 묘파하며 작가가 현재 몰두하는 ‘여성 서사’라는 화두를 가장 적실하게 그려 보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소설에서는 계층, 학력, 나이, 직업 등이 모두 다른 다양한 여성들의 개별적인 서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불법촬영 동영상 피해자였던 친구를 보고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미용사 지현, 영화 홍보기획사에 다니는 워킹맘이자 의식불명에 빠진 아들 서균을 둔 은정, 그런 서균과 한반인 딸 율아의 엄마 진경, 진경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기획자인 세연 등 바톤터치를 하듯 연결되는 이들 각자의 사연은 개인의 상처에서 나아가 사각지대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환부에까지 가 닿는다.

출판사 책 소개

“이해하고 싶었어,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2019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윤이형 신작 소설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는 흰 물결
붕대로 연결된 우리, 들의 이어달리기


제5회, 제6회 젊은작가상, 제5회 문지문학상, 201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윤이형의 신작소설 『붕대 감기』가 <소설, 향>의 두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리얼리즘과 SF·판타지 등을 오가는 개성적인 서사로 주목받은 윤이형은 2007년 첫 번째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를 펴낸 이래,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내는 등 꾸준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소수자의 감각과 서사에 끈기 있게 천착해온 그녀의 작품 세계는 2016년 페미니즘에 대한 각성(“신전들이 무너지고 우상들이 깨져 실려 나간 빈자리에 가치관의 재건작업이 시작되었다”―2019. 9. 19. 《중앙선데이》 작가 인터뷰)을 계기로 더욱 확장되고 구체화되었다. 『붕대 감기』는 이러한 자각과 다짐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로서, ‘우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휘몰아치는 복잡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첨예한 문제의식과 섬세한 문체로 묘파하며 작가가 현재 몰두하는 ‘여성 서사’라는 화두를 가장 적실하게 그려 보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소설에서는 계층, 학력, 나이, 직업 등이 모두 다른 다양한 여성들의 개별적인 서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불법촬영 동영상 피해자였던 친구를 보고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미용사 지현, 영화 홍보기획사에 다니는 워킹맘이자 의식불명에 빠진 아들 서균을 둔 은정, 그런 서균과 한반인 딸 율아의 엄마 진경, 진경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기획자인 세연 등 바톤터치를 하듯 연결되는 이들 각자의 사연은 개인의 상처에서 나아가 사각지대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환부에까지 가 닿는다. 그리고 소설은 우리가 모두 아프다는 자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자신의 고통을 비교하며 위안받는 인물들과 “꿈에도 서로를 사랑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작가의 말」) 인물들의 이어짐을 통해 따듯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마음을 끝까지 열어 보이는 일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무참하고 누추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더 많지만, 실망 뒤에 더 단단해지는 신뢰를 지켜본 일도, 끝까지 헤아리려 애쓰는 마음을 받아본 일도 있는 나는 다름을 알면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꿈을 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 _「작가의 말」

서로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바톤터치 하듯 이어지는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영화 홍보기획사에서 일하는 은정은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은정은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리고 ‘무식한 아이 엄마’로만 남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며 타인과의 감정 섞인 교류 없이 강퍅하고 완고하게 스스로를 가둬왔다. 그러나 8개월 전 그녀의 고성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된다. 아들 서균이 교회 수련회에서 눈썰매를 타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이다. 8개월이라는 시간은 온화한 성정의 남편을 비롯해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주변의 모든 것들을 무너져 내리게 만들었고, 이제 그녀는 무참한 현실에 맞닥뜨린 자신에게 누구도 안부를 묻지 않는다는 사실에 “초점 없는 혼잣말과 욕설”을 “방언처럼 줄줄” 내뱉는다.

“하지만 누구라도, 누구 한 아이의 엄마라도, 인사치레로라도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 많이 힘드시지요? 서균이는 좀 어떤가요? 하고 말을 걸어준다면 좋을 텐데. 우정이라는 적금을 필요할 때 찾아 쓰려면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적립을 해뒀어야 했다.”_본문 23쪽

그러나 은정이 눈치채지 못한 따스한 응원과 위안의 기미가, 실은 존재했다. 그가 다니는 미용실의 헤어 디자이너인 두 사람. 미용실 실장인 해미는 “지독하게 말수가 없”고, “언제나 온몸과 마음이 잔뜩 긴장”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은정에게, 자신의 ‘인생 책’인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선물하고는 8개월 전 마지막 염색 이후로 발길을 끊은 그녀를 걱정한다. 같은 미용실의 지현 또한 내내 마음이 무겁다. 8개월 전, 지현은 은정의 아이 서균이 너무 얄미웠다. 미용실 안을 헤집고 난리를 피우는데도 엄마는 피로한 표정으로 아이를 말리는 시늉만 할 뿐이었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엉덩이를 때렸을 땐 염색약을 엎지른 후였다. 은정은 그 순간 트위터 앱을 켜고 “화가 나서 폭발할 것 같은 상태”로 ‘속이 터진다 ㅅㅂㅅㅂ’ 같은 글을 썼고, 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전해 듣고 죄책감에 빠진 것이다. 은정의 죄책감은 사실 그보다 더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대학 동기 미진이 불법촬영 동영상의 피해자였는데, 지현은 친구의 불행을 위로하다 그녀가 감당하고 있는 정신적 무게가 버거워 그만 손을 놓아버렸다. 그녀는 친구 미진과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악의적인 감정을 품었던 아이 서균의 안위와 평안을 간절하게 빌어본다.

‘우정’에 바라는 기대와 허상, 실망과 환멸
그리고 그것을 다시 회복해가려는 마음


이어 서균과 한반인 딸 율아를 둔 진경과, 그의 친구인 세연의 사연이 시작된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단짝이었던 진경과 세연은 각자 다른 대학에 진학해서도 살가운 관계를 유지했다. 진경이 직장에 들어가면서 연락이 끊어졌지만, 진경은 아이 엄마이자 방과후독서 지도교사가, 세연은 출판기획자가 되어 페이스북에서 다시 만난다. 처음 두 사람이 친해지게 된 계기는 특별했다. 교련 시간에 2인 1조로 붕대 감기 실기시험을 치르다 세연이 실수로 진경의 머리를 잡아당기면서였는데 두 사람에게 친해질 만한 공통분모라곤 없었다. 그러나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아이” 진경과 “고립된 문제아” 세연은 서로가 간절히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오래도록 곁을 지켜주었다.

둘은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네트워크로 언제나 이어져 있었고, 서로에게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아주는 사이였다. 서로가 지닌 빛에, 어둠에, 즐거움에, 슬픔에, 한심함에._본문 60쪽

하지만 3년 전쯤부터 세연은 점차 진경과 멀어진다. 세연은 더 이상 페이스북에 일상 포스팅을 하지 않았고, 글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도 극히 드물었을 뿐 아니라 진경이 셀피를 올리면 ‘좋아요’만 누를 뿐 댓글은 달지 않는다. 세연은 짧고 정확한 성격의 글만 적어 올린다. 자신이 현재 기획하고 있는 책이나 앞으로 나올 책의 출간 소식 또는 여성주의 관련 글과 이슈들에 대해서만. 그들은 어디서부터 이렇게 멀어진 걸까. 그리고 그렇게 멀어진 뒤에도 왜 계속 서로의 움직임에, 마음 상태에, 변화에 신경이 곤두서는 것일까.

“너는 나를 알고 싶은 거였구나!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어”
서로 기대고, 덧대어지고, 때론 교차하면서 펼치는
아름답고 정교한 태피스트리


이처럼 『붕대 감기』는 친구에게 거는 기대와 허상, 그 허상이 깨졌을 때의 실망과 환멸, 그리고 이를 다시 회복해가려는 마음과 미묘한 갈등을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핍진한 현실 위에서 펼쳐 보인다. 그것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제한된 공간 밖에서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새로운 친밀감의 영역”이자 “순수하게 관계 내적인 속성에 따라 형성되고 지속되는”(심진경, 「작품 해설」) 관계다.
동료이거나 동지이거나 친구인, 이해관계 너머에 있는 ‘순수한’ 관계들의 유형은 진경과 세연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다른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제시된다. 세연이 ‘여성들의 우정’이라는 출간물을 기획하며 취재를 요청한 대학 교수 경혜는 제자에게 ‘페미니스트 투사’라는 영광을 얻으려는 ‘꼰대’로 비춰진다. 채이는 경혜에게 친구가 되자고 먼저 손을 내민 당찬 학생이었지만, A교수의 추행 사실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쓴 뒤 보복을 당할까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그런 채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친구 형은, 형은의 엄마인 명옥, 그녀의 동반자인 효령까지 많은 인물들의 사연은 서로 기대고, 간극을 벌렸다가, 다시금 교차하면서 태피스트리처럼 아름답고 정교하게 직조되어 간다.
여성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 즉 가부장제,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미러링, 탈코르셋 등 페미니즘 이슈는 물론, 우리 사회를 둘러싼 온갖 억압과 폭력의 문제들은 자연스레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이 많은, 나이 어린, 대학교수인, 고등학생인, 워킹맘인 그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과 “어떤 연유로 서로 멀어지고 또 그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혹은 극복이 안 되었는지”, 그리고 관계의 속성과 본질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소설에 따르면 이들은 저마다 삶의 무게와 피로를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같은 버스”를 탄 사람들이다. 운전자는 수시로 바뀌지만 버스에 탄 일원들은 버스가 잘 운행되도록 독려와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경쟁자이자 적이 아니다. “돌려받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도 않고” 열심히 책을 소개하고 빌려주면서 함께 읽거나, “오직 서로에게만 지어 보일 수 있던” 미소를 지닌 존재, 즉 친구인 것이다.

우정의 전제 조건은 같아지는 게 아니라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작가는 “여성들이 같이 억압받고 있는데도 동지로 보기보다는 서로의 고통과 억압을 비교”하는데 우리가 “서로 미워할 필요가 없고 힘을 합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2019.01.22. 《경향신문》 인터뷰)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 ‘친구’라는 이름의 전통춤처럼, 때론 앞 사람의 등만 보는 춤을 주게 될지라도, 그가 준비가 될 때까지 단절의 휴지를 감내하고 기다려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라는 진단은(심진경, 「작품 해설」) 의미심장하다.
이야기의 릴레이는 소설이 끝나고 난 뒤에도 독자의 마음 깊숙한 곳에 환한 빛을 비추며 다시금 말을 걸어올 것이다.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존재가 어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그것만으로도 삶은 앞으로 나아가볼 만한 것이라고 작가가 힘주어 이야기하는 이유다.

작가정신 <소설, 향>
소설, 향香을 담다 : 소설, 반향響을 일으키다 : 소설, 향向하다

작가정신 〈소설, 향〉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소설향’을 리뉴얼해 선보이는 중편소설 시리즈로,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 ‘향’이 가진 다양한 의미처럼 소설 한 편 한 편이 누군가에는 즐거움이자 위로로, 때로는 성찰이자 반성으로 서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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