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소유의 문법>보다는 <손수건>이 인상적이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 선택한 책이지만, 의외로 몰랐던 작가의 작품에 더 눈이 가게 되었고,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호사를 누렸다.
<가벼운 점심_장은진>
흑회색의 거친 질감 때문인지 처음 윤주가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아기가 몹시 외로워 보인다고 느꼈다. (중략)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절대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거구나.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윤주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야 만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었다. (중략) 녀석은 거친 바다와 우주를 제 영역으로 만들어 가며 나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고, 그렇게 생겨났던 것이다.
그날, 아버지 말대로 베란다에서 벚꽃을 보려고 했던 거라면 아버지는 해마다 한밤중 남몰래 먼 데서 벚꽃을 훔쳐보는 것으로 봄을 견뎌 어고 있었으리라.
공항의 높고 거대한 유리창을 통해 바깥의 계절이 보였다. 나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아버지의 것이 된 그것을 쳐다봤다. 그날도 아버지는 오늘과 똑같은 표정으로 여기의 봄을 떠났을 것이다. 비장하거나 단단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수한 내 상상 속 어떤 표정도 아닌 아까 그 표정으로.
<동경 너머 하와이_박상영>
나는 그의 칩거를 나의 글쓰기와 비슷한 것으로 인식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일종의 자아도취 상태, 정도로.
<기괴의 탄생_김금희>
언젠가 퇴근하면서 그런 지적하는 것 안 어려우세요? 저는 더구나 막내라 참게 되는데, 하자 리애 씨는 참으면 안 되죠, 라고 했다. 참으면 미워하게 돼, 그러기 전에 말을 하는 거예요.
이런 기분에 벚꽃이며 라일락이며 철쭉이 다 무언가, 그렇게 해살해살 피어나서 꽃가루나 날리며 자기 본능에 열심인 것들에 시비가 일었다.
어떤 종류의 기억은 사람을 영영 망가뜨릴 수밖에 없기에.
리애 싸는 이혼한 뒤 짐을 싸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출국일을 기다렸는데, 스태프를 붙들고 몇 시간을 아무 말이나 떠들어댔다고 말했다.
"왜 그랬어요?"
내가 그렇게 묻자 리애 씨는 좀 씁쓸하게 웃었다. (중략) "두렵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