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어린 딸 우로가 화가가 되었으면 했다. 아빠가 보기에 우로는 천재가 틀림없었다. 우로는 아빠가 바라는 대로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룻밤이 지나자 자화상은 물감이 흘러내려 엉망이 되어 있었다. 몇 번을 다시 그려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로는 자화상을 완성할 수 있을까?
주인공 이름이 우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녀입니다. 아빠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포목점을 운영하고 있고, 대신 딸에게 자신의 꿈을 투영합니다.
어느날 아빠는 딸에게 멋진 캔버스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천을 사러 갑니다. 거기에서 마음에 꼭 드는 캔버스 천을 사게 되는데요, 소녀의 이름과 똑같이 '우로마'입니다. 비 우, 이슬 로.
우로는 우로마에 자화상을 몇 번이나 그려 보지만 자꾸 물감이 흘러내려 망가져 버리다가 여덟 번째 그림을 그렸을 때 비로소 만족하는 그림을 완성합니다.
'우로'의 뜻을 생각해 봅니다.
비와 이슬.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비는 흘러내리고 이슬은 맺히죠. 어떤 자화상은 물감이 흘러내렸고 어떤 자화상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흘러내린 그림과 맺힌 그림은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앞서 그린 자화상들은 진짜 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시행착오들이 아니었을까요? 망치고, 망치고, 망치고.... 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아빠는 미치도록 힘들어합니다. 사춘기 방황하는 자녀를 마주하는 모든 부모의 심정이 그와 같지 않을까요? 그러나 아빠는 우로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어요. 자아를 찾아가는 일은 오롯이 본인의 일인 걸요.
우로의 아빠는 우로를 사랑하기에 편하고 쉬운 길을 걷게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다 해 줄 수는 없어요.
캔버스 천을 사줄 수는 있어도,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나를 찬찬히 뜯어보고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고 흠뻑 빠져도 보면 좋겠습니다. 그 시선이 보다 좋은 것을 찾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