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산문의 정수라 할 산문 <자전거여행>이 재출간되었다. 언젠가 그는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라고 말한바 있다. 엄격히 길에 대해서, 풍경에 대해서만 말하는 그의 글 속에는, 그러나 어떤 이의 글보다 더욱 생생하게 우리 삶의 모습들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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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자전거 여행 2 내용 요약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 2』는 작가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마주한 풍경과 그 안에서 길어 올린 깊은 사유를 담아낸 인문학적 기행문입니다. 1권이 우리 국토의 지형과 자연의 물리적 속성에 집중했다면, 2권은 그 자연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과 인간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더욱 내밀하게 관찰합니다. 🚲
작가는 자전거라는 느린 이동 수단을 통해 풍경을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으로 흡수합니다. 페달을 밟으며 마주하는 바람의
한달음에 읽었다. 글과 사진이 함께 있어 수월하게 넘어갔다. 이번에는 인물(이순신)등,장,마을,오랜유물 등에 대하여 적었다. 수원화성을 지을시 노역을 각출하여 강제 시킨것이아니라 한나하나 돈으로 쳐줬고 집을 헐을 시에도 다섯칸짜리 기와집을 약 80냥 쳐준게 우섭다. 정조의 애민 사상이 느껴진다.
자전거 여행 2권 - 김훈
칼의 노래, 현의 노래로 유명한 김훈 작가님의 자전거 여행 에세이집이다. 1권에 이어 2권이 4년 뒤에 나왔다. 이 책은 2000년에 1권에 이어 4년 후인 2004년에 발행된 책이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추천하는 책 중에 하나이다. 2014년에 문학동네로 출판사를 옮기며 새롭게 사진과 일부가 수정되어 다시 책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1권과 마찬가지로 에세이집이기 때문에 책 속의 핵심을 정리하기는 어려워서 책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들을 발췌하여 소개를 해 드리도록 하겠다.
고양 일산 신도시
30년 전의 논바닥을 갈아엎어서 세운 마을은 서대하고 휘황찬란한 세속 도시다. 세속 도시의 교회들은 가정의 순결과 건강을 가장 중요한 현세적 덕목으로 가르친다. 일부일처제는 그 덕목의 풍속적 안전장치다.
작은 근린공원들마다 숲이 우거져 있다. 그 공원에서 아이들이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고 저녁이면 일찍 퇴근한 중산층의 가장들이 유모차를 미는 아내와 산책에 나선다. 그들은 애완견을 알뜰히도 보살피는 자애의 풍속을 일상화시켜서 이 마을의 동물 병원은 성업중이다.
저녁이면 교회의 힙자가 불빛 사이로 러브호텔의 네온 사인이 켜진다. 창궐하는 러브호텔들은 한때 이 마을 주부들의 집단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주부들은 러브호텔 허가 취소와 러브호텔 주차장의 비닐커튼 철거를 요구했고 시장은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아우성도 있었다. 건축 허가나 영업 허가를 규정한 법률에 '러브호텔'이라는 업종은 없다. 러브호텔은 숙박업으로 허가된 접객업소이다. 학교 울타리 밖에서 150밑터 떨어진 장소에 허가된 숙박업소는 허가권자에게나 업자에게나 정당한 시설물이다. 적법하게 허가된 숙박없소에서 성인남녀들이 자유로운 합의하에 러브를 할 때, 시장의 행정력이 이 러브를 단속할 법적 근거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행정력뿐 아니라 경찰력이나 계엄령으로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태처럼 보인다.
러브호텔 주차장 입구는 비닐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대낮에도 주차장은 자동차들로 가득 차 있다. 비닐커튼 밖은 인도다. 그 인도 위로 유모차를 미는 젊은 주부가 지나간다. 비닐커튼은 자동차를 가려서 러브의 익명성을 보호하는 장치다. 구청에 등록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혼내 정사건, 눈먼 치정이건, 다급한 간통이건, 매춘이건 간에 러브의 익명성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간통과 치정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익명성의 존엄을 편든다.
고려나 조선 시대에 물론 러브호텔은 없었겠지만 러브외양간이나 러브마굿간, 러브물레방앗간, 러브밀밭, 러브보리밭이 있었다. 그 시대에는 밀밭과 보리밭이 러브의 익명성을 보호하는 장치였을 테지만 이 신도시에서는 비닐커튼이 보리밭을 대신해 주고 있다. 밀밭과 보리밭은 자연풍경의 일부로 주거지 옆에 펼쳐져 있었지만 이 신도시의 러브호텔은 휘황찬란한 불야성의 풍경으로 주거지 옆에 들어서 있다. 그러지 천지개벽이라 해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수평의 삶이 수직의 삶으로 바뀌어도 달라질 수 없는 것들은 결국은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비닐커튼은 여전히 주차장을 숨겨주고 있다. 신도시에 날이 저물면 짙게 선팅한 자동차들이 비닐커튼을 젖히면서 주차장 안으로 들어간다.핸드마이크를 둘러멘 교인이 러브호텔 앞에서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남녀의 등 뒤에 대고 외친다.
"회개하라, 종말이 가까이 왔다!"
나는 길 건너편 카페에 앉아 술을 마시면서 그 광경을 보았다. 내가 사는 신도시에서는 혼자서 웃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다. 나는 혼자서 낄낄낄낄 웃는다.
도산서원과 안동 하회마을
퇴계 이황의 존영과 도산서원은 지금 천원짜리 지폐에 인쇄되어 퇴계의 삶이나 체취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어 보이는 세상 속을 유통하고 있다. 경북 안동 지역을 여행하는 일은 퇴계의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 편린이나마 더듬어내는 일이라야 옳을 터이다.
해마다 관광객 40~50만 명이 하회마을로 몰리고 있고 하회를 한 바퀴 돌아본 이들의 발길은 어깁없이 인근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으로 이어진다. 퇴계와 도선서원은 그 관광객들에게 도대체 어떤 내용의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일까?
도선서당의 구도의 단순성은 퇴계 자신의 마음 빛깔과 그것을 실천하는 삶의 태도를 물리적 공간에 응축해 놓은 구도라고 말해도 무방할 터이다. 절제의 극에 닿은 그 구도 안에서 억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작은 공부방과 마루는 서원의 언덕 아래로 커다랗게 굽이치는 낙동강과 그 언저리 인간의 마을을 향해 열려 있다.
도선서당의 위치는 인간세와 차단된 격졀의 공간도 아니고 인간세에 매몰된 오탁의 공간도 아니다. 그 자리는 인간의 세상과 연결도어 있으면서도 한 굽이를 돌아서 있는 위치이며, 세상과 아름다운 거리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인간의 세상과 쉴새없이 통로를 개설하는 위치이다.
도산서당은 폐쇄된 자아의 밀실이 아니다. 그 서당의 물리적 위치는 인간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거기에 함몰하지 않는 위치이다. 그렇게 해서 책과 세상은 서로 적당히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역동적인 메시지를 상호 교환할 수 있었다.
퇴계는자리에 앉을 때 벽에 기대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단정히 앉았고 날마다 소학의 글대로 살았다. 집신에 대나무지팡이를 잪었으며 세숫대야로는 도기를 썼고 앉을 때는 부들자리 위에 앉았다. 음식을 먹을 때는 수저 비딪는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반찬은 끼니마다 세가지를 넘지 않았고 다만 가지와 무와 미역만으로 찬을 삼을 때도 있었다. 손님을 모실 때가 아니면 특별한 반찬을 놓지 않았고 어린이나 아랫사람에게 식사를 내일 때도 반찬을 차별하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얻으면 반드시 종가로 보내 제상에 올리게 했다. 언제나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갓을 쓰고 서재로 나가 정좌하였고 제자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할 때는 마치 귀한 손님을 대하듯 했다. 그 가르침은 자상하고 다정하였으나 제자들은 감히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퇴계는 70세에 이르러 병이 깊어지자 머르르던 제자들을 돌려보냈다. 아들을 불러 장례를 검소히 치를 것과 장례에 대한 국가의 배려와 의전을 사양하라고 엄히 당부하였다. 남에게서는 빌려온 책들을 모두 돌려보냈고 가족에게 명하여 염습에 필요한 물건을 미리 준비케 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저녁에 눈이 내렸다. 제자들을 시켜 당신이 아끼던 매화 나무에 물을 주게 하고 임종의 자리를 정돈시킨 다음 몸을 일으켜달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여 한편생을 지켜온 정좌의 자세로 앉아서 세상을 떠났다.
옛집과 아파트
아파트에는 지붕이 없다. 남의 방바닥이 나의 천장이고 나의 방바닥이 남의 천장이다.아무리 고층이라 하더라도 아파트는 기복을 포함한 입체가 아니다. 아파트는 평면의 누적일 뿐이다. 천정이고 방바닥이고 부엌 바닥이고 현관이고 간에 그저 동일한 평면을 연장한 민짜일 뿐이다. 얇고 납작하다. 그 민짜 평면은 공간에 대한 인간의 꿈이나 생활의 두께와 깊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생애의 수고를 다 바치지 않으면 이런 집에서조차 살 수가 없다. 공간의 의미를 모두 박탈당한 이 밋밋한 평면 위에 누워서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안면 낮은 산자락 아래의 오래된 살림집들을 생각하는 일은 즐겁고 또 서글프다.
수원 화성
수원 화성의 이념적 지향성을 지상의 구조물로 이룩해내는 그 실무적 꼼꼼한은 [화성성역의궤] 안에 모조리 적혀 있다. [화성성역의궤] 는 수원 화성의 기획과 시공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항을 총망라한다. 이 의궤는 조선 왕조가 편찬한 책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기록문서이다. 화성 축조를 기획하고 지시하는 임금은 실무적인 치밀함을 끝까지 유지한다. 화성 축조에 있어서 임금의 지휘 방침은 서두르지 말 것, 기초에 튼튼히 할 것, 사치스런 치장을 하지 말 것, 일을 합리적이고 능률적으로 조직하고 관리할 것, 첨단 과학기술을 총동원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성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의궤는 수용된 농가들의 주인 이름, 위치, 수용가격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북리에 살던 김용강의 집은 흙방 1칸으로 수용가는 7전이며 5전을 추가로 지급했다. 남리에 살던 김금공은 매우 재력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집은 초가 32칸이었는데 수용가격으로 80냥을 받았고 110냥을 추가로 지급받았다. 남리에 있던 5칸짜리 지와집의 수용 가격은 75냥이었다. 초가집과 기와집의 가격 차이는 현격했음을 알 수 있다. 의궤는 수로와 도로로 편입된 구간에서 국비로 수용한 논과 밭의 일련번호와 그 값을 빠짐없이 기록해놓았고 축성공사에 동원된 모든 장인들의 명단과 그들의 전문분야, 노임, 출신지와 소속을 기록했고 못1개, 벽돌 1장의 수급사항을 세밀히 적어 놓았다.
석수, 목수, 기와장이, 대장장이, 화공 등 22개 전문분야의 장인 1,800여 명이 공사에 기술직으로 참여했고 그 밖에 자재운반이나 땅 다지기 등의 노역에 수 많은 백성들잉 참여했다. 그들은 물론 국가의 명령에 따라 동원된 인력들이었지만 기술 숙련도와 노동의 강도, 노동 시간에 따라 정확하고도 차등 있는 노임을 지급받았고 축성에 필요한 모든 자재는 백성의 것을 징발하지 않고 모두 정확한 값을 쳐주고 사들였다.
장막쇠, 고돌쇠, 차언노미, 임작은노미, 김순노미, 홍귀노미, 박삼쇠, 김쇠고치, 정큰노미, 최큰노미 같은 하층민들의 이름이 장인 명단에 등재되어 있다.
망월동의 봄
광주
광주에서 피해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상처를 자신의 혀로 핥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젊은 어머니 뱃속에 들어앉아 있다가 군홧발에 차였던 태아들이 죽지 않고 이 세상에 나와 지금은 20살이 되었다.
이추자씨는 그때 임신 3개월의 신부였다. 집 안에서 총을 맞았다. 오른쪽 눈 밑을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 병원에서 수술받던 도중에 폭도로 몰려 병원 지하실에 끌려가 군인들한테 매를 맞았다. 이추자씨는 그때 아무런 정치의식이 없었고 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다만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동그랗게 꼬부리고 매를 맞았다. 기형아를 낳으면 안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군인들이 임신한 배를 구둣발로 찼고 이씨는 여러번 실신했다. 이 아이가 최효경이다. 광주여자대학교 무용과 2학년이다. 핸드폰에 코알라 인형을 씌워서 들고 다닌다. 이추자씨는 보험회사 외판원이지만 성격이 수줍어서 별 실적은 없다. 최효경양이 엄마보다 더 잘 번다. 최양은 학교가 끝나면 고속도로 광주 톨게이트 매표원으로 일한다. 최양은 한 달에 팔십만원쯤 벌어서 남동생 용돈까지 준다. 이추자씨는 효경이를 낳고 나서 얼굴에 기미가 심하게 씨었다. 임신중에 여러번 총상 수술을 했고 그때마다 항생제를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씨늬 얼굴은 기미로 덮여 있다. 그래서 이씨는 화장을 두껍게 한다. 5-18피해자라고 해서 남한테 초라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이씨는 말했다. "늘 단정하고 아름다운 여자로 보이고 싶다"면서 이씨는 딸을 끌어안고 웃었다.
유복난 할머니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5시에 안방에서 총을 맞았다. 그때 대학생이던 셋째 아들이 금남로에 나가서 쫓기던 청년 7명을 데리고 집으로 도망쳐 왔다. 할머니는 군인들이 정권을 잡으려고 이 난리를 치는 것인 줄을 처음부터 알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청년들을 골방에 숨겨놓고 먹이고 재웠는데 군인들이 이 청년들을 앚으러 들어와서 총을 난사했다. 유복난 할머니는 광주 대인시장에서 반찬장사를 하고 있었다. 왼쪽 유방 밑으로 총알이 박혔다. 할머니는 그 후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지금까지 병석에 누워 있다. 할머니의 왼쪽 유방 밑에는 아직도 총알이 그대로 박혀 있다. 그 합병증으로 다른 여러 증세들이 도졌다. 총알을 빼려고 서울 대학병원까지 갔었으나 빼지 못했다. 워낙 민감한 부위에 총알이 박혀 있어서 외과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전문의 7~8명이 함께 수술에 참가해야 하는데 병원에서는 이걸 못하겠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할머니는 네 아들을 젖 먹여 키운 유방 속에 총알을 지니고 산다. 그러니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할머니는 총알을 품고 죽어야 할 모양이다. 의사는 어디에 있고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
모란시장
성남 모란시장은 대도시 한복판의 민속 5일장이다. 모란시장이 보여주는 유통의 풍경은 권력화되지 않은 교역의 모습이다. 모란시장의 유통은 생산과 소비 양쪽에 대해서 대등하고 그 대등함으로 유통의 활력을 삼는다.
여름에 모란시장으로 몰려드는 식용견들과 그 거래의 모습은 한국사회에서 개와 인간이 밎어내는 풍경의 장관이다. 모란시장은 날짜의 끝자리수가 4와 9로 끝나는 날 열리는 5일장인데 식용견은 도매물량이 많아서 정규 장날에 판을 벌이지 못하고 하루 전날에 따로 열린다. 개만을 도매하는 이 판을 상인들은 '개판'이라고 부른다. 개판날이 되면 전국의 개 목장에서 사육된 식용견들은 모란시장으로 끌려온다. 식용견들은 모두 누렁이라고 불리는 잡종견인데 살찌고 동작은 굼떠보인다. 개들은 개별적 표정으로 식별되지 않고 식용견이라는 종자 전체의 일반적 특징으로 다가온다. 눈이 크고 귀가 늘어졌고 수놈들도 엉덩이가 발달해있다. 식용견의 눈빛은 순하고 추점이 분명치 않아서 개가 어느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따금씩 동물애호가협회 사람들이 "동물을 학대 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장 입구에 몰려와 확성기로 구호를 외쳐대기도 하지만 철망 안에서 짖어대는 개의 비명과 확성기의 구호 소리가 뒤섞이면서 모란시장의 풍경은 절정을 이룬다.
식용견들은 다 자란 성견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애완견은 젖을 막 뗀 새끼들이 나와 있다. 어린 시절에 개들은 종자에 관계없이 모두 동작이 가볍고 장난을 좋아한다. 어린 개들은 잠시도 가만히 좌정하지 못한다. 애완견 철망 밖을 향해 앞발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교태를 보낸다. 애완견상가와 식용견상가가 마주 보면서 모란시장 개의 풍경을 이루고 식용견의 생로병사와 애완견의 생로병사와 인간의 생로병사가 공존하면서 한국사회의 개 팔자의 풍경을 완성해낸다.
이렇게 다양한 곳을 자전거로 여행하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과 동물과 역사를 이야기한다. 에세이를 좋아하고 여행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