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등을 통해,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주저가 번역가 김석희의 정확하고 유려한 번역으로 새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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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자유로부터의 도피 내용 요약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1941년 출간된 심리학적, 사회학적 분석서로, 인간이 왜 자유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자유를 포기하고 권위주의적 체제에 복종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이 책은 특히 1930년대 나치즘의 대두와 파시즘의 확산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집필되었지만,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
프롬은 먼저 중세 시대에서 근대로의 전환 과정을 분석합니다. 중세 시대 인간은 엄격한 신분 체계와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 안정감을 느꼈지만, 개인의 자유
[온전한 자신이 된다는 것]
📖
개인의 자아를 제거하여 참을 수 없는 허무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피학적 충동의 일면일 뿐이다. 또 다른 일면은 자기 밖에 있는 더 크고 더 강력한 전체의 일부가 되어 그 속에 빠져들고 거기에 참여하려는 시도다.
이 외부의 힘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제도나 신, 국가, 양심, 또는 정신적 충동일 수도 있다. (중략) 그러기 위해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고, 자아와 결부된 힘과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개인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잃고 자유를 포기한다.
하지만 그 대신 강한 힘 속에 빠져들고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안전과 새로운 자부심을 얻고 또한 회의의 고통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 (중략)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에서도 해방되고, 그리하여 내려진 결정에 대한 회의에서도 해방된다. 그는 또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에서도 해방된다.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그가 달라붙은 강력한 힘과의 관계가 대답해준다. 삶의 의미와 그 자신의 정체성은 그의 자아가 빠져든 보다 큰 전체가 결정해준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中
1.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천착한 주제는 바로 ‘나치즘’이었다. 나치가 왜 발호했는지, 그리고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왜 사람들이 매료되었는지를 평생 연구했다.
그 원인이란 바로 ‘무력감’이었다. 애초부터 지위와 한계가 정해져 있었던 중세는 개인의 발전을 가로막았지만 그만큼의 안정감을 줬다. 태어난 마을에서 평생을 살고 한 번 소속된 길드에서만 내내 일했다. 개인의 삶의 모습은 명확했고 기성세대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쉬웠다. 그 속에서 인적 유대가 생겼고 이런 틀 안에서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오히려 평온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중세 체제가 붕괴하면서 개인에게는 낯선 자유가 찾아왔다.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대신에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에 내몰렸고 곧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벌어졌다.
그 속에서 낙오된 사람들은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시민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삶과 개인으로서는 극복하기 힘든 사회 모순 속에서 만성적인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 의식적/무의식적 무력감은 현대인의 질병이 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무력감 채워줄 것들을 찾아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달콤했던 것이 바로 ‘권위에 대한 복종’이었다. 국가나 종교, 이데올로기 같은 크고 위대한 것들을 수용하고 그들이 지시하는 방향대로만 나아가면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주입된 것을 내 생각인양 외치며 지도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분주하게 내달리면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같은 권위에 속한 타인과 하나가 되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2.
여기까지가 100년 전 나치가 발호하던 시기에 관한 분석인데 요즘 상황에도 굉장히 부합하는 설명이라 조금은 씁쓸하다. 사이비 종교, 무당부터 시작해서 극우 세력은 물론, 일상적으로는 특정 브랜드나 개인에 관한 맹목적인 팬덤까지 말이다.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롯한 자기세계’를 구축하는 일일 게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무작정 감각적으로 매료될 것이 아니라 생각이 필요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왜 좋아하는지/싫어하는지, 나와 맞는/안맞는 부분은 무엇인지, 앞뒤 맥락은 무엇인지, 그 대상의 말과 실제 행동은 어떠한지. 한 걸음 떨어져서 관조하며 끊임없이 생각하자.
그리고 돌아보자. 주변을 살펴보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밀자. 온전한 개인이 모여 서로를 감쌀 수 있다면 조금 더 평안해지지 않을까.
모두 자신을 들여다보고 발견하는 시간 보내시길☺️🌿
𝗣.𝗦. 이와 관련해서는 1)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2)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을 추천한다. 시기도 다르고 저자도 다르지만 두 책이 논하는 주제는 동일하다.
예전에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에서 시련(?)의 여주인공이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말에 공감한 적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 크게 변화한 생활이 혼란스러웠던 와중에 나와 비슷한 상황인 친한 선배의 소식을 듣고 반가워했던 기억을 생각하면 나 혼자만이 아닌 나와 같은 운명에 놓인 동료를 갖는다는 것을 소속감을 통해 안도감을 가지는 심리로 위로를 느꼈던 것 같다.
그 소속감으로 인해 소외감과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러기 위해 자유를 피하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당연히 사람이라면 자유를 추구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나조차도 적당한 규제와 테두리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편했던 것 같다.
인간이 개체화 과정을 거치고 자유를 가지게 된 계기와 그 역사적 배경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로 인해 경제, 사회 흐름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흥미로웠다. 그리고 자유로운 현대인이 자유로 인해 개인의 무력감이 점점 커지고 경제와 정치는 전보다 더 커져 복잡해진 반면 개인이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줄었다는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에 공감이 되면서 좀 멀리 갔지만 앞으로 미래의 자유는 지금처럼 유지될 것인지 더더욱 거부하게 될지 아니면 없어진 자유(극단적일 수 있으나 계급사회나 사회주의가 다시 올지도 모를 테니)를 다시 찾으려고 할지 궁금해진다.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를 원하지 않다는 아이러니에 혼란스러워하며 내가 생각했던 자유를 다시 돌이켜볼 수 있었다. 첫 에리히 프롬 책인데 어려웠지만 몰랐던 사회 심리학의 재미가 느껴졌다. 좀 더 내용을 소화해낼 수 있는 내공을 가지고 읽었으면 프롬의 생각을 더 흡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