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소설. 첫 소설집 출간 이후 꾸준히 발표한 단편 여덟 편을 모아 두번째 소설집을 펴낸다. 그사이 펴내고 호평받은 중.장편들의 씨앗이 된 인물과 모티브가 편편에 핍진하게 담겨, 지난 4년 작가가 관심 갖고 귀기울인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 시대/세대가 마주한 문제가 무엇인지 거울처럼 비춘다.
김혜진 소설을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뭔가 가슴께가 답답해지면서 더는 못 읽겠다고 생각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김혜진이 핍진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서도, 애초에 현실이라는 것이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무엇이기에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큰맘 먹고 그의 두 번째 소설집을 읽었다. 이 소설집은 연작소설집이 아니지만, 여덟 편의 단편 모두 화자는 '나'고 중심인물은 '너'다. 대단하다, 이 작가. 내가 이렇게 한 권으로 묶이는 소설집 좋아하는 거 어찌 아시고! 물론 내 취향과 전혀 상관없는 창작이었겠지만. 인물들이 줄곧 '너'와 '나'로만 호명되기에 이들의 성별과 개인성은 무화된다. 끊임없이 그들을 상상하면서 읽어야 하는 것이 제법 힘이 들었다.
여덟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너'와 '나'는 분명히 다르지만, 꼭 같은 지점이 있다. 이를테면, '나'를 통해서만 말해지는 '너'의 특성. '너'는 "내가 다 알 수 없는 사람"이고,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하든지" "어김없이 비껴가고 어긋나고 말"(35쪽) 사람이다. 화자인 '나'는 '너'의 본인만 모르는 단점을, 치부를, 천성을 낱낱이 고발한다. '너'는 독자인 내가 봐도 너무 답답하고 무능하고 제 생각만 한다. 그렇지만 '나'는 꼭 한 번 이렇게 말하고야 만다. "그러나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었을까." (78쪽) (이래서 김혜진의 소설이 답답하다는 거다.)
한때 수업을 들을 뻔도 했던 소영현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날카롭다. 그러니까 쉴 새 없이 '너'를 폭로하는 '나'의 어떤 권위에 대한 의문. 김혜진은 '너'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다. '너'에 대한 말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어떤 '나'의 모습에 관해 폭로하는 것이다. '너'와 '나'밖에 없는 세계에서 '너'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으니까.
읽으면서 가만가만 드는 생각을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음, 이 책은 어떤 끈기의 결실이구나, 끝까지 밀어붙이고 치열하게 전투하여 얻어낸 무엇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야만 할 것 같고, 그럴만한 책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김혜진을 더, 더 읽어봐야지.
어떻게 해도 너라는 사람을 다 알 수는 없겠구나. 너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하든 그것은 어김없이 비껴나고 어긋나고 말겠구나. - ‘3구역, 1구역’ - p. 35
너는 내 의견을 먼저 물었고 뭐든 내가 좋은 대로 하라고 했다. 말하자면 너의 그런 태도가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쪽으로 이끌었다. 멀리서 보면 나무랄 데 없이 선하고 이타적인 모습이었지만 내겐 한없이 무책임하고 비겁하고 나약하게 느껴졌다. - ‘팔복광장’ - p. 228
3구역 1구역이나 팔복광장 등 몇편은 이전에 읽은 소설이었다.
딸에 대하여도 불과 나의 자서전도 놀랍지만 이번 단편집은 간만에 욕심나도록 좋은 문장이 많아서 내내 밑줄을 그었다.
모든 소설이 너라는 이인칭으로 서술된다.
젠더 사회적약자 성소수자 등 세계의 변방에 머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게 이인칭으로 서술해서인지 구구절절하지 않으면서도 명백해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졸음을 원망하며 느리게 마음에 새기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