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 지성을 대표하는 문인, 새뮤얼 존슨의 1759년 작. '절대적 행복의 환상'을 비판하는 풍자적 산문집이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오랜 주제에 접근하면서도 허구적 이야기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균형감 있는 시선과 이것을 담아내는 허구적 형식 간의 조화가 탁월하다.
라셀라스/새뮤얼 존슨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 이야기는 새뮤엘 존슨이 쓴 계몽적 인생 소설로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과연 인생이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근원적 의문과 해법을 풀기 위해 쓰인 인문 철학서입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부족한 것이 없는 '행복의 골짜기'에 살고 있는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는 자신의 영토 안에서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행복에 의심을 품고 자신의 영토 밖 다른 삶 속에 벌어지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생활을 탐색하기로 하고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여행에 온갖 학문을 섭렵하고 은둔하며 사는 학자 이믈락과 그의 여동생 네카야 공주가 함께하게 되죠.
이 책은 물질적 욕망과 야욕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에게 행복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유토피아적 행복과 낙원을 가꾸기 위한 철학적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다는 것, 아니 나에게 부족한 게 뭔지 모른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내 불만의 원인입니다.
세상 어느 곳에 살던지 인간의 삶은 참고 견뎌야 할 것은 많고 즐겁게 누릴 일은 별로 없는 법입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소망이나 행복의 덧없음을 이국적 동방의 여행기를 통해 우화와 풍자를 가미해 재밌는 이야기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뮤얼 존슨은 '라셀라스'책을 쓰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장례비용과 가족의 채무를 갚기 위해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하니 그의 효행과 인품이 이 책의 주제인 인간의 올바른 가치관과 본성에 충실한 작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더군다나 이 책은 일주일 동안의 저녁에 썼다고 하니 작가로서의 천재성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이 세상에 없소. 자연은 친절하게도 이미 우리가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곳에 행복을 가져다 놓았소. 행복에 이르는 길은 바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 즉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본래부터 새겨져 있는 저 보편적인 불변의 자연법칙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에 있소.
결혼 생활에는 여러 가지 고통이 따르지만, 독신 생활에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답니다.
아마도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절대적 행복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런 기대를 갖거나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국 헛되고 부질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이 공상의 속삭임을 곧이곧대로 듣고 희망의 환영을 열심히 좇아가는 사람들이여 나이를 먹으면 젊은 날의 기대가 채워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여, 이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이 말은 결국 자신의 무한한 야망과 욕망의 갈증 해소를 위해 행복을 찾아가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하므로 행복이란 것은 고요 속에 자연에 몸을 기대고 푸른 창공을 음미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동경을 꿈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49장의 제목은 '결론이 아무것도 없는 결론'입니다. 이 모순적 역설의 화두를 던지고 '라셀라스'소설은 끝이 납니다.
부와 명예 온갖 행복한 삶을 버리고 완전한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라셀라스 왕자와 공주는 결국 자신들이 던진 물음에 답이 없다는 깨달음을 알고 다시 그들의 세계로 되돌아옵니다.
인생무상과 허무로 점철된 '라셀라스', 그러나 우리는 라셀라스를 통해 삶의 궁극적 본질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일상에서 행복의 답이 있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보편적 삶이 모든 행복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 많은 욕심을 위해 뭔가 좇아가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불행한 삶도 절대적 불행이 아니라 멀리서 다시 바라보면 행복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겠습니다.
따뜻한 남쪽나라 통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