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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
출간일
2014.9.30
페이지
145쪽
상세 정보
이반 일리치의 방대한 사상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구상.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이자 '사상의 저격수'로서 평가받는 이반 일리치는 사회, 경제, 역사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인간 위에 제도가 군림하는 현대 사회를 전방위에서 공략하며 그 근본전제를 허물었다.
70년대 『학교 없는 사회』와 『병원이 병을 만든다』의 세계적 사상가로 전 세계를 돌며 토론의 의제를 이끌던 그는 돌연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다. 시스템이 인간을 필요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현대'라는 세기를 목격하면서 절망에 빠진 나머지 현대 관념의 기원이 되는 12세기 중세 사상을 연구하는데 남은 삶을 바쳤다.
일리치가 현실 변화의 가능성을 열정적으로 모색하던 격변의 사상 전환기에 쓴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그의 저서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구체적 전략을 분명히 제시하는 저서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세기의 사상가가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희망이 어둠 속에 별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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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seulgi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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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gyulih7r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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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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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이반 일리치의 방대한 사상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구상.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이자 '사상의 저격수'로서 평가받는 이반 일리치는 사회, 경제, 역사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인간 위에 제도가 군림하는 현대 사회를 전방위에서 공략하며 그 근본전제를 허물었다.
70년대 『학교 없는 사회』와 『병원이 병을 만든다』의 세계적 사상가로 전 세계를 돌며 토론의 의제를 이끌던 그는 돌연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다. 시스템이 인간을 필요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현대'라는 세기를 목격하면서 절망에 빠진 나머지 현대 관념의 기원이 되는 12세기 중세 사상을 연구하는데 남은 삶을 바쳤다.
일리치가 현실 변화의 가능성을 열정적으로 모색하던 격변의 사상 전환기에 쓴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그의 저서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구체적 전략을 분명히 제시하는 저서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세기의 사상가가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희망이 어둠 속에 별처럼 빛난다.
출판사 책 소개
1. 이 시대에 던지는 우리의 근본 물음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소비를 하지 않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인가"
"직장에 고용되지 않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인가"
복잡하고 방대한 데이터와 이론으로 현실을 분석하는 두꺼운 사회이론서들이
이 세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선명히 보여주는 듯 하지만,
그럴수록 정작 내게 절실한 삶의 좌표는 실종된다.
이반 일리치는 우리의 삶과 이 시대의 근본 문제로 곧바로 들어간다.
'누가' '어떻게'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지 명쾌하게 밝혀내며,
빼앗기고 잃어버린 인간 능력과 창조적 삶을 회복하기 위한 길을 제시한다.
2.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현대의 금기어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경제 불황, 사상 초유의 취업난, 대량 실업, 비정규직 문제.
이런 키워드로 점철되는 시대에 일리치가 제안하는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는 위험하면서도 이상적으로 들린다.
지금 우리에게는 모두가 알지만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말이 있다.
취업은 점점 불가능해질 것이며
설사 취업이 된다 해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모두가 직장을 구하는 게 꿈이지만,
한편에서는 모두가 직장을 그만두는 게 꿈이다.
"지금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은
직장에 다니지 않고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자유이다.
이런 자유는 보통 사람에겐 점점 더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이 사회는 '언제든 내 일을 할 수 있는 극소수'와
'어디서도 내 일을 할 수 없는 대다수'로 양극화되었다.
3. 풍요 속의 가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내게 용기가 없어서도, 여유가 없어서도 아니다.
"생산에 필요한 도구가 직장에서만 얻도록
사회의 기반시설이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대인은 어디서나 감옥에 갇힌 수인"이 되었다.
꼬박꼬박 끼니를 갖다 주는 안락한 감옥인 직장 문을 나가는 순간
"플러그처럼 시장에 꽂혀져 평생을 생존이라는 감옥"에 살아야 한다.
지금은 삶 자체가 상품 소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되었고,
"직업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 고용되지 않은 상태로 할 수 있는 일은
노동시장이 확장되면서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다.
일리치가 말하는 '가난의 현대화'는 경제 성장으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는 무력감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모두가 겪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
이제 나는 돈이 없어 가난한 것이 아니다.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겨 가난한 것이다.
"이제 내가 가난한 이유는 35층 고층 빌딩에서 일하느라
내 두 발의 사용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4. 140쪽에 응축된 일리치의 방대한 사상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구상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타임스)이자 '사상의 저격수'(뉴욕타임스)로서
이반 일리치는 사회, 경제, 역사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인간 위에 제도가 군림하는
현대 사회를 전방위에서 공략하며 그 근본전제를 허물었다.
70년대 『학교 없는 사회』와 『병원이 병을 만든다』의 세계적 사상가로
전 세계를 돌며 토론의 의제를 이끌던 그는 돌연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다.
시스템이 인간을 필요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현대'라는 세기를 목격하면서
절망에 빠진 나머지 현대 관념의 기원이 되는 12세기 중세 사상을 연구하는데 남은 삶을 바쳤다.
일리치가 현실 변화의 가능성을 열정적으로 모색하던 격변의 사상 전환기에 쓴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그의 저서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구체적 전략을 분명히 제시하는 저서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세기의 사상가가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희망이 어둠 속에 별처럼 빛난다.
5. 일리치를 읽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할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입을 모아 위기의 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리치에게 위기는 전혀 다른 의미다.
그는 원래 그리스어로 전환점을 의미했던 위기crisis는 우리에게 선택의 순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위기는 어느날 문득 자신이 스스로 만든 새장에 갇혀 살았다는 걸 깨닫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적의 순간이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이 거대한 새장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삶의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점점 더 의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군중 속에 익명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이 두려움의 끝에 매달린 한 줌의 용기를 찾아 나설 것인가?
상품에 더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덜 의존할 것인가?"
이 두 갈래의 길에서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이 세계의 어떤 사람도 이 선택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리치가 던지는 이 극단의 질문은 분명 우리가 갈 길을 비춰줄 것이다.
마치 사상의 예언가처럼 일리치가 그리는 현실의 모습은 지금의 현실보다 더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더 가혹해질 것이다. 인간이 더 무력해질 때 일리치를 읽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추천의 글
논쟁적으로 가장 첨예했던 일리치의 테제들은 1970~1980년대 전 세계 사회참여적인 그룹들의 일상적인 토론에 단골 주제로 등장하곤 했다. 샌프란시스코와 파리, 도쿄 등 산업화한 여러 도시들에서는 광범위한 독자층이 형성되었다.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된 사람은-전기 작가인 마르티나 칼러가 강조한 것처럼-"빛나는 생기발랄함과 전설적인 카리스마", 그리고 그의 명성에도 상당 부분 기여한 그의 성격 등에 단숨에 매료되는 제물이 되곤 했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카리스마도 그의 절망을 은폐하지는 못했다. 그는 사고에 있어서는 지난 세기 비극과 승리의 역사에 자극받았지만 태도와 행동에 있어서는 숨길 수 없는 혼란과 암담함이라는 측면에서 21세기적인 사람이었다. 나치 독일 치하의 빈에서 태어난 절반의 유대인으로서 적대감을 경험하고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스콜라 철학의 사상 훈련을 받았던, 또한 푸에르토리코와 멕시코 토착민들의 삶의 세계에 매료된 동시에 산업경제에 기여하는 미국식 해외 선교활동에 경악하며 남아메리카의 해방운동에 고무되었던, 아울러 포스트모던의 부도덕에 분노하다가 결국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건강한 생태국가를 지향한다는 의료시스템에 저항한 이반 일리치는, 기꺼이 '현대'라고 불리기 원하는 이 사회의 목격자인 동시에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교관 같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왜 일리치를 읽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매우 간단한 대답과 복잡한 대답이 모두 가능하다. 우선 간단한 답을 하자면, 일리치는 농경문화에서 산업사회로의 전 지구적 변화를 성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122P)
중국이나 인도 같은 거대 국가들이, 세계와 지구에 심각한 소용돌이를 몰고 올 가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면, 21세기라는 보다 가혹한 시대로의 진입을 함께해줄 여행의 동반자로 일리치를 추천한다. 그는 녹색 기술과 녹색 경제학만이 문제가 아니라, 인류 상호간의 연대와 개인 차원에서는 절제와 중용을 등한히 하지 않는,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함을 상기시킨다. (1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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