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융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4달 전
인생은 덧 없지만, 인간은 가엽고 하찮지만, 좋은 것은 흔치 않지만, 때론 무의미하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것. 그러니, 계속 해보겠습니다.
🏷있지 인간이 조그만 덩어리도 되지 못하고 부서지고 흩어진 채로 형체도 없이 다만 한 줌 무더기가 되고 말 때 그럴 때 인간은 어디에 있다고 해야 좋으니? 무엇으로 있다고 해야 좋으니? 어디가 어디라는 구별이 완전히 사라지고 내가 만졌던 목, 내가 매달렸던 어깨, 내가 만졌던 팔꿈치, 내가 들여다봤던 눈, 둥근 턱, 내가 쓰다듬었던, 따듯한 머리, 내 이름을 부르고 너희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내던 몸, 생각하고 기억하고 감각하던, 내 사랑, 그 사랑의 몸, 그 몸이 도저히 몸일 수는 없는 형태로 흘러내렸을 때, 그럴 때 그는 어디에 있니?
🏷나, 나나, 나기, 나, 나나, 나기. 그런데... 하고 나는 물었다. 부족이 되나. 부족민이고 뭐고 없는데? - 니가 있잖아. 나? -족장이고 부족민인 니가. 나 하나 뿐인데? -하나뿐인 부족도 있는 거지 세상엔.
🏷 내가 너를 때렸으니까 너는 아파. 그런데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 전혀 아프지 않은 채로 너를 보고 있어. 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내가 아프지 않으니까 너도 아프지 않은 건가? 같은거야, 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너하고 저것하고, 같은거야. 기억해둬, 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거야.
🏷공룡이 사라졌잖아. 멸종이라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실은 천만년이 걸렸대. 천만년에 걸쳐 서서히 사라진 거야. 그렇게 금방 망하지 않아. 세계는, 하고 덧붙이자 나나가 말했다. 그렇게 길게 망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 단번에 망하는게 좋아? 아니. -그럼 길게 망해가자. 망해야 돼? - 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겠다는 얘기야.
황정은 작가의 문체는 조금 낯설었다. 처음엔 뚝뚝 끊기는 듯 했지만 두번 세번 곱씹어 보고싶은 매력이 있다.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