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연애 - 주형원
파리에서 사는 작가는 한국인 여성으로 서른을 맞이하게 된다. 그 동안 한국 공영방송국 파리 지국의 해외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지내던 그녀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10년 정도 산 파리에서 집에 도둑이 들어 모든걸 털리고 또 남자친구 장뤽과 헤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스물아홉을 맞은 그녀의 몸과 영혼은 그야말로 탈진 상태가 되었다. 그제야 늘 꿈꾸던 ‘서른 맞이 여행’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일을 정리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서른 맞이 여행을 계획했다. 자연스럽게 스페인 산티아고와 쿠바 산티아고가 떠올랐다. 지난해 잠깐의 휴가를 얻어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고 싶었고, 쿠바에서 춤을 배워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며 서른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두려움이 도대체 뭐야?’라고 묻는 사람처럼 용감하게 떠나보기로 했다.
그렇게 그녀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서른 맞이 여행을 떠난다. 첫 번째 여행지는 스페인 산티아고였고 파리에서 스페인 산티아고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녀가 이번에 산티아고를 여행하려는 이유는 1년전에 휴가 차 갔던 산티아고의 북쪽길의 경험때문이었다. 1년 전에 그녀는 파리 특파원에게 휴가를 신청하고 산티아고로 휴가를 갔었는데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떠난 여행이라 참담한 결과를 맞게 된 여행이었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은 알베르게(순례자의 숙소)가 10키로 이상 떨어져 있어서 하루안에는 그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준비가 미흡하여 신발도 불편하고 가방도 무거운 상태로 순례자의 길을 나섰던 것이다. 그녀는 알베르게에 묵으려면 여행자 전용 여권(크레덴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반드시 산티아고에 갈 것이라는 '북쪽 길의 선서'를 하고서 겨우 알베르게에 묵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기억으로 1년 후에 그녀가 다시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선 것이다. 그녀는 우체국을 찾아서 무거운 짐을 파리로 보내버리고 홀가분한 차림으로 다시 순례길에 나섰다. 그리고 어느 비가 오는날에 다음 알베르게까지 걸어갈 수 없어서 차를 얻어타고 도착해서 사람들로부터 '차를 타고 오면 순례자가 아니지'라는 비아냥거리는 말도 들었다. 휴가로 얻은 3일 동안 그녀는 그렇게 걸어서 빌바오에 당도했다. 그리고 휴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에게는 반드시 걸어서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보겠다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
이번 순례에서 그녀는 빌 아저씨를 만나게 되고 그가 까미노(순례길)에 대한 소설을 쓴다는 것을 들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다양한 자신만의 생각을 적고 있다.
왜 저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이렇게 먼 곳까지 걸으러 오는걸까? 그녀는 그만큼 길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답한다. 까미노에서 그녀가 만난 서른 즈음의 혹은 서른을 막 넘어선 그와 그녀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거나 하고픈 일을 찾아내서 막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 이들이었다.
모두가 미혼이었고 미해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갖기에는 조금 늦은, 그렇다고 완전히 체념하기에는 아직 이른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앞으로의 긴 삶에 있어 잠시 길을 잃었을지언정 누구보다도 자기 인생에 충실했다. 아마도 그들에게 이번 여행은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아니면 은퇴하기 전에는 찾아오지 않을 긴 휴가일지도 몰랐다.
저자는 한국어와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어설픈 스페인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그녀의 이런 언어적 재능으로 그녀가 만난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서 그녀가 깨닫고 생각한 것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누군가의 비밀스런 고통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녀는 까미노에서 이런 경험도 있었다. 하루는 저자가 까미노에서 친해진 제시카와 어느 알베르게에서 와인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녀의 비밀을 듣게 된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했었다고 고백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자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제시카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었다. 평소에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법은 위로의 말과 안아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도 막상 그런 순간이 오면 당황하게 되는 법이다.
까미노에는 무릎이나 발목을 다쳐서 절뚝이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가 느리게 걷는 마리아를 보고 걸을때 그렇게 다리를 절면서 힘들어 하면서도 계속 까미노를 걷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리아를 계속 보게 되었고 얼굴이 익은 마리아는 저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그날이 자신에게 너무 의미있는 날이라며 축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이 사고가 난지 딱 6년째 되던 날이라는 것이다.
콜롬비아 출신의 건축가인 마리아는 6년전에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3년간의 재활치료를 한 후 절뚝거리면서도 걷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걸을 수 없다고 의사의 진단을 받은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으로 까미노를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자신만의 리듬으로 감사하며 걸었을텐데 저자는 그녀를 게으르다고 판단하며 친구가 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미안해졌다.
저자에게 까미노는 정말 이상했다. 누군가를 만나서 무언가를 뉘우치거나 진정으로 깨달으면 그 인연은 거기서 멈추었다. 마리아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는 마리아를 만나지 못했다.
산티아고의 순례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그녀는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쿠바로의 여행을 준비하고 떠난다. 쿠바에서도 스페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가지 생각들을 들려준다.
여행 관련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여행관련 책이라기 보다는 에세이류의 책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중간 중간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여러 곳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